베이징 주재발령받아 희망과 기대를 가득 품고 백팩 1개와 손가방 2개 들고 베이징에 도착했던 날은 2005년 9월 6일 화요일이었다. 그날 베이징 공항 분위기가 어땠는지는 이제 아무런 기억이 없지만, 어쨌든 그해 여름 그렇게 베이징에 도착했고, 이후 몇 달간은 앞으로몇 년 거주해야 할 새로운 땅에서의 생활에 필요한 비자, 주택, 운전면허, 차량 구입 등 많은 것들을 준비하느라 분주하게 보냈다.
그렇게 분주한 시간을 보낼 때만 해도 불과 2년도 못 채우고 갑자기 그 베이징을 다시 떠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고, 베이징에서 주어진 그 시간이 마냥 이어질 것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모두가 유한한 생명을 살수 밖에 없어서 언젠가는 그 끝에 다다르지만, 누구도 그 끝이 매일매일 조금씩 더 다가오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지는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당연히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Paris, Toronto에 그렇게 도착했다 그렇게 떠나야 했던 것처럼, 내가 선택한 베이징에서의 시간도 결코 무한하지 않았으며, 2년도 안돼나는 그곳을 떠나 또 다른 타지 타이베이로 가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사장님 비서로부터 전화가 왔다. 사장님이 통화를 원하신다는 것이었다. 매년 연말 연초는 인사철로서 자리 변동이 많은 시기였고, 당시 내가 임원 진급을 앞두고 있는 고참 부장이기도 해서, 그 전화의 내용이 혹시 인사와 관련이 있는 것이 아닌가잠시 긴장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베이징에 부임한 지 아직 채 2년도 안된 상황이라서 인사 변동 관련 사항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전화를 받아보니 역시 인사 관련 사항이었다. 사장님은 내게 대만 법인장으로 가라고 말씀하셨다.
대만 법인장은 법인장 자리이니 그런 자리로 발령받는 것은 분명히 영전으로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베이징에서 근무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이제 막 베이징 생활에 좀 정이 들기 시작하는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바다 건너 저 먼 외로운 대만섬으로 가는 것이 다소 서운했고 또 내가 택했고 내가 원했던 베이징 생활을 갑자기 접어야만 했었던 것이 꽤 아쉬웠다. 법인장 자리라는 것이 승진을 위해서는 너무나도 좋은 기회였고 분수에 넘치는 일로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당시 내 심정은 그런 논리적 판단과는 거리가 멀었던 셈이다.
하지만 어쨌든 직장 생활을 내 감정에 따라서 할 수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고, 바로 정신을 가다듬고 언제까지 가야 하냐고 문의드렸더니 매우 간단하고 명료한 사장님의 답이 돌아왔다. "네가 마누라가 있냐 애가 있냐? 장가도 못 가고 혼자 사는 놈이 베이징 올 때 그랬던 것처럼 괴나리봇짐 몇 개 싸가지고 바로 가면 되는 거 아냐? 다음 주까지 가!"라고 말씀하셨다.
Paris나 Toronto를 떠날 때도 그랬지만, 국가 간 이동할 때 항상 별도의 이삿짐 없이 손가방 몇 개만 들고 이동해왔던 나로서는 베이징에 올 때처럼 베이징을 떠나 타이베이로 갈 때도 사실 가져갈 짐이 거의 없었다. 미혼으로 혼자 살아서 그런 이유도 있었겠지만 집이나 주변에 이것저것 많은 것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을 좀 부담스러워해서 짐 자체가 애당초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서둘러서 베이징을 떠나게 되었는데, 막상 항공권을 예매하고 이제 정말 베이징을 떠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베이징 생활을 막 시작할 때의 기억들이 새삼 떠올랐다.
베이징에 도착한 지 한 달도 안돼 새 차를 샀을 때는 그 차를 타고서 돌아다닐 베이징에서의 새 삶에 대한 설렘과 기대가 가득했었다. 생애 처음 중국어로 쓰인 급여 통장을 받았을 때도 그랬다. 또 내가 근무할 부서가 신설 부서라서 사무실 공간부터 직접 만들고 준비해야 했던 기억도 새삼 떠올랐다 베이징에 도착해서생애 처음으로 받았던 너무도 시원했던 발 안마의 기억도 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제 시간이 흘러 이 모든 것들을 뒤로하고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사진) 베이징 부임 한 달 뒤, 막 인도받은 새 차를 회사 옆에 세워 두고 찍은 사진. 베이징에서의 시간이 무한할 것처럼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2005년 10월 2일 일요일)
사진) 중국어로쓰인 급여 통장. 급여는 미국 달러와 중국 인민폐 두 가지 화폐로 나누어 받았는데, 왼쪽은 미국 달러 계좌, 오른쪽은 중국 인민폐 계좌다.
사진) 신용카드와 현금카드. 중국에선 파피아오(發票)라고 영수증을 불렀는데, 한국과 다르게 회사에 경비 처리용으로 파피아오를 제출할 때는 회사 이름이 파피아오에 기재되어 있어야 했기 때문에, 신용카드 뒷면에 회사명을 적어 붙여 놓고영수증 받을 때 그것을 보여주면서그대로 적어달라고 요청하곤 했었다.
베이징을 떠나기 전날 밤, 이것저것 짐을 모두 정리해보니 대만으로 가져갈 짐은 역시 베이징에 올 때처럼 달랑 가방 3개뿐이었다. 사장님 예측대로 정확히 괴나리봇짐 3개....
하지만 그 3개도 결코 적은 것이 아닌 것 같았다.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야 할 때는 그러한 괴나리봇짐 3개마저도 없을 것이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했듯이, 그저 텅 빈손으로 이 세상에 왔던 것처럼, 잠시 이 세상에서 꿈꾸듯 살다가 또 텅 빈손으로 그렇게 어디론가 떠나야 할 것이다.
사진) 대만으로 가져갈 이삿짐이 담긴 가방 3개가아파트의 현관 앞에 놓여있는 모습.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밤, 짐을 다싸고 거실에 앉아 홀로 한잔 하면서 찍은 사진이다. 다음날 저 가방 들고 미지의 땅 타이베이로 향했다.(2007년 1월)
매일 아침 걷던 베이징의 거리,
그렇게 걸으면서 마주치던 사람들,
너무도 크고 화려한 대륙의 술집,
생애 처음 그 맛을 알게 된 시원한 안마,
길을 가득 채운 수많은 자전거,
후통의 오래된 골목길,
처음 가본 북한 식당과 처음 본 북한 사람들,
한겨울 컴컴한 새벽 출근길과 길 주변 판잣집,
항상 체육복 입고 등하교하는 아이들,
한국 냄새 가득한 코리아 타운 왕징,
낡은 군복 뒤집어쓴 왕징의 엘리베이터걸,
너무나도 건조한 베이징 날씨,
도시 가득한 먼지와 뿌연 하늘,
얼화인 심한 베이징 사투리,
점심 식사 후 산책하며 봄날을 즐기던 직장인들,
1층 은행 창구 푸른 제복의 안경 쓴 새침한 여직원,
천진 가는 고속도로 아침 안개,
실패한 라비앙로즈의 기억,
오고 가며 마주친 아름다운 여인들....
베이징에서의 마지막 날, 텅 빈 집에서독한 백주(白酒) 몇 잔과 함께 취기 속에 떠올랐던 기억들이다. 벌써 13년이나 지난 오래된 기억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