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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을 떠나며....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7편 HK, Macau-38)

by SALT

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Hong Kong, Macau



38. 홍콩을 떠나며....


홍콩을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온 지 벌써 7년이 다 돼 간다. 2008년 12월 대만 법인 근무 중 갑작스럽게 홍콩 법인에 발령받아 얼떨결에 홍콩으로 부임해서 5년 반 기간 근무한 후 2014년 6월 홍콩을 떠났다.


그렇게 홍콩을 떠났던 그 기억이 정말 바로 엊그제 같은데, 홍콩에서 보냈던 그 시간보다 더 긴 7년이라는 시간을 벌써 한국에서 보내버렸다. 어쩌면 마치 영원하게 이어질 것처럼 착각하기도 했던 홍콩에서의 시간은 지나고 보니 너무나도 짧았는데, 서울로 돌아온 이후 시간도 홍콩에서의 시간만큼 그렇게 짧고 빠르게 지나가버린 이다.


그래도 서울에서의 시간은 아직 진행형이지만 홍콩에서의 시간은 이제는 과거라는 블랙홀 속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가 버렸다. 하지만 서울 내 책상 서랍 어두운 한 구석에는 햇살 가득한 봄날 아지랑이 같았던 홍콩에서의 아련한 5년 반의 향수를 자극하는 것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바로 홍콩에 거주하던 시절에 나의 분신처럼 항상 지참하고 다녔던 카드들이다. 교통 카드 Octopus, 홍콩의 ID Card, 은행 카드, 그리고 아파트 출입 카드 등인데, 홍콩을 떠나서 서울로 돌아온 이후에는 완전히 다른 카드들로 바뀌었지만 홍콩에 거주하던 시절에는 이 카드들이 내 분신과도 같아서 지갑은 항상 이 카드들로 채워져 있었다.

사진) 홍콩에서 늘 갖고 다녔던 카드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1) Octopus, 2) 아파트 카드, 3) 은행 카드, 4) 홍콩 ID Card


어디를 가던 항상 나와 함께 했던 이 카드들을 다시 보니, 이 카드들과 함께 홍콩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이런 카드들에는 분명히 홍콩에서의 지나간 나의 모든 행적과 기록이 담겨 있을 것이다.


Octopus 카드에는 수도 없이 타고 다녔던 홍콩 전철과 Tram의 기억이 남아 있을 것이다. 게다가 편의점에서도 이 카드는 사용이 가능했던 바 회사 앞과 집 근처 편의점에서 그토록 자주 사 먹곤 했던 호주 와인, 페레로 초콜릿, 생수 같은 상품들의 기억도 남아 있을 것이다.


사진) 출퇴근 시 다녔던 홍콩 지하철 길 (좌측 2010. 1월, 우측 2010. 6월)

사진) 법인 근처 Wan Chai와 Causeway Bay 인근 홍콩 Tram (2009. 5월)


한국 주민등록증과 유사한 홍콩 ID Card는 주로 공항에서 출국하거나 입국할 때 사용했다. 카드에 IC 칩이 내장되어 있어 여권 없이도 이 카드만으로 출입국 수속이 가능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카드에는 수많은 출장들로 점철된 홍콩 공항에서의 모든 출입국 기억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사진) 홍콩 공항 (2008. 9월)


법인 건물 옆의 현금 인출기에서는 매주 적어도 1회 이상은 현금을 인출했다. 공적인 일에는 당연히 법인 신용 카드를 사용했지만, 개인적인 일에는 주로 현금을 사용했기에 자주 현금을 인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이 은행 카드는 5년 반 동안에 수도 없이 인출했던 그 모든 현금의 기록들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사진) 사무실에서 현금 인출기 있는 곳으로 갈 때 걸어가던 길 (좌측 2012. 4월, 우측 2013. 10월)


홍콩 부임 초기 3년여간 거주했던 아파트의 출입 카드도 그 아파트에 거주하던 시절에는 언제나 지참하고 다녔다. 물론 경비원이 입주민 얼굴을 기억하고 있어 카드가 없어도 문을 열어 주기도 했지만, 혹 경비원이 자리를 비웠거나, 경비가 없는 통로로 다닐 때는 이 카드가 반드시 필요했다. 따라서 이 아파트 카드에는 Harbourside라는 아파트에서의 나의 모든 출입 기록들이 담겨 있을 것이다.


사진) 아파트 1층 출입구와 출입 카드 리더기 (2009. 2월)

사진) 아파트 외관 (좌측 2010. 11월, 우측 2009. 7월)

사진) 아파트에서 보이던 햇살 찬란한 Victoria 만 모습. 아직 입주하기 전에 찍은 사진이라 가구가 전혀 없는 텅 빈 모습이다. (2009. 2월)


과거 한때 너무나도 빈번하게 사용되었던 이 모든 카드들은 새로운 땅 한국에서는 이제 모두 그 기능을 잃어버렸고 더 이상 사용되지 않은 채 지난 7년 여간 컴컴한 내 책상 서랍 한 구석에 퇴색기념물처럼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내 인생 중 홍콩이라는 공간에서 보냈던 한 다발의 시간도 어두컴컴한 과거로 잠겨버렸다.


그런데 우연히 은행 카드를 들여다보니 의외로 유효 기간이 2022년 7월로써 아직도 1년 이상이나 남아 있었다. HSBC 통장에도 잔고가 몇만 원 정도는 남아있는 것으로 기억하니 결국 지금도 이 카드를 사용해 현금을 인출할 수도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도 사용할 수 있는 카드를 보게 되니 홍콩에서의 내 시간과 추억들도 모두가 완전하게 과거라는 블랙홀로 잠겨버린 것은 결코 아니며, 그 일부는 여전히 살아서 현재로까지 연결되어 숨 쉬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다.




돌이켜 보면 28년여간의 직장 생활 중 약 반에 해당하는 14년간을 해외에서 주재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렇게 짧지 않은 시간을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주재하면서 꽤 많은 해외 도시들을 떠나야 하는 경험도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했었다. 1996년에는 Paris를 떠나야 고, 2003년에는 Toronto, 2006년에는 Guangzhou, 이후 2007년에는 Beijing을 떠나야 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Taipei를 떠나야 했으며, 마지막으로 2014년 6월 꽤 무더웠던 한 여름에는 홍콩을 떠나야 했었다.


사진) 직장 생활하면서 주재 근무했던 도시들....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거주했던 정든 공간들을 떠나야만 할 때는 예외 없이 항상 아쉽고 서운하고 또 적지 않은 미련의 감정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것 역시 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특히 홍콩을 떠날 때는 그런 회한의 감정이 전보다 훨씬 더 깊을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번에는 5년 반 거주했던 홍콩이라는 그 도시를 떠날 뿐만 아니라, 무려 28년이나 머물렀던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서 그 회사마저 함께 떠나는 처지였기 때문이었다. 거주했던 도시와 근무했던 직장 모두를 한꺼번에 떠나야만 하는 상황이었으니 아쉬움과 회한이 더더욱 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진해서 사표를 제출했던 것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대의 새파란 청춘 시절부터 흰머리들이 듬성듬성 보이는 50대에 들어설 때까지 그 긴 시간을 함께해 왔던 회사라는 너무도 익숙하고 오래된 둥지를 떠나는 마음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매년 말 회사로부터 계약 해지 통보를 받는 수많은 임원들이 그 통보를 받은 후 그토록 심하게 마음의 상처를 받고 이후에도 오랜 기간 후유증을 앓게 되는 것일 것이다. 자의에 의해서 떠날 때조차 이렇게 회한이 깊은데,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태에서 타의에 의해 갑자기 떠나야만 할 때의 그 심정은 정말 어떠했을지....


오죽하면 그런 통보를 받는 것이 두려워 임원들이 연말에는 웬만하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우스개 소리 같은 말까지도 생겼겠는가....




지나간 일이지만 사실 개인적으로는 홍콩으로 부임하기가 정말 싫었다. 직전에 근무했던 Taipei에 대한 애정이 워낙 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또 홍콩의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이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홍콩에서도 5년 반이라는 기간을 근무하다 보니 예상과는 달랐던 홍콩의 정겨운 모습들도 알게 되었고 또 홍콩에 많은 정이 들기도 했었다.


전 세계 어는 도시나 모두 자신만의 매력이 있겠지만 정말 홍콩에도 결코 다른 도시가 가질 수 없는 홍콩만의 너무도 독특한 매력이 있었는데 그 매력에 푹 빠졌던 것이다. 결국 부정적 시각에서 시작된 홍콩 생활이었지만 홍콩을 떠나야 할 즈음에는 그것들이 깊은 관심과 애정으로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그렇게 마음이 변하고 나니 이제는 그 홍콩을 떠나야 했다.


홍콩에 근무하던 기간 약 4명의 주재원이 주재 기간 종료와 함께 본사로 귀임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했다. 그런 당시 주재원이 귀임할 때는 남아있는 주재원 모두가 공항에까지 가서 그곳에서 마지막 배웅을 하는 것이 법인 관행이었다. 따라서 나 역시 그 4명이 귀국할 때는 항상 공항에까지 가서 그곳에서 배웅을 했다.


그런데 이제 역으로 배웅받을 사람이 드디어 내 차례가 된 것이었다. 그러나 홍콩을 떠날 뿐 아니라 아예 직장까지 떠나는 상황에서 출국하기 직전 공항에서 주재원들을 보면 내 감정이 너무나도 흔들릴 것 같아, 주재원들에게는 절대 공항에 나오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나 혼자 공항으로 향했다. 하지만 마침 뭔가 잊은 물건이 있어 잠시 사무실에 들러야 할 일이 있었는데, 홍콩을 마지막으로 떠나는 바로 그날 사무실에 다시 들어가면 서글픈 감정들추스리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 주재원 중 한 명에게 부탁해서 건물 1층 로비에서 그 물건을 전달받았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그 주재원을 보면서 내 눈가에 눈물이 어른거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출국하는 그날 단 한 명의 주재원을 만나고도 그 정도였으니 만일 주재원 모두와 홍콩 공항에서 헤어져야 했다면 어쩌면 정말로 펑펑 울었을지도 몰랐을 것 같다.


5년 반 근무했던 정든 홍콩을 떠나는 것에, 대학 졸업 이후 성인이 된 이후의 거의 모든 시간인 28년이라는 길고도 긴 시간을 머물렀던 회사까지도 떠나는 심정이 겹쳐지다 보니 그토록 마음이 심란하고 애틋했던 것 같다.


사진) 법인 사무실이 있었던 건물 1층. 출국 당일 사무실에 두고 온 물건을 전달받은 장소다. 약 7년 전 그날 이 공간에 잠시 머물렀던 것이 홍콩 법인에서의 마지막이었다.




홍콩 출국 전 출입국 관리소 같은 곳에 가서 간단한 면담을 해야 한다고 해서 인사과 직원과 함께 간 적이 있었다. 그때 홍콩인 공무원이 매우 간단한 질문을 하나 했는데, 바로 "왜 홍콩을 떠나느냐?"였다. 그런데 그러한 질문에 답을 하려다 보니 마땅히 답할 것이 애매했다.


과거에 근무했던 국가에서 그러한 질문을 받았다면 당연히 "회사 주재원인데 이번에 본사로 귀임 발령받아서 출국해야 한다"라고 너무도 쉽게 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이미 사표를 제출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러한 답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더 이상 그 회사 소속도 아니고 다음 근무지가 정해져 있는 것도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 보니 홍콩 영주권을 받기 위해 일부러 노력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기도 했었다. 사실 홍콩에 7년간 거주하면 영주권 신청할 자격이 주어진다는데, 내 경우 5년 반 거주했으므로 1년 반 정도만 더 있으면 홍콩 영주권을 받을 수도 있었다.


실제 그렇게 홍콩 영주권을 받은 여유 있는 유럽인들이 년 내내 춥지 않고 사회적 인프라 역시 비교적 잘 구축되어 있는 홍콩에서 노후 생활을 즐기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나 역시도 기후 좋은 홍콩 어딘가에 집을 얻어 서울과 홍콩을 오가며 퇴직 이후의 삶을 두 곳 모두에서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무원으로부터 그 질문을 받기 전에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항상 회사의 인사 명령에 따라서 28년간 움직여 왔는데, 이제 더 이상 어딘가로 가라는 인사 명령이 없으니 그저 단순히 집이 있는 서울로 간다고만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만큼 나 스스로 내 앞길을 고민해 보고 만들어 갔다기보다는 그저 회사의 인사 명령에 의해서만 내 거처를 정하는 것에 너무도 길들여져 있었던 셈이다.


당시 그 공무원의 질문에 뭐라고 답변을 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어쨌든 그 질문은 나 자신의 과거 삶을 되돌아볼 수도 있었던 꽤 참신한 질문이었던 것 같다.


"왜 홍콩을 떠나느냐...."




홍콩에서는 큰 일을 정말 많이 치루기도 했었다. 법인 부임 자체가 파격적이었다. 대만 법인 근무 중에 베이징 출장을 갔다가 홍콩에 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갑자기 홍콩 법인으로 발령받았다. 결국 대만으로 돌아가는 항공권은 취소를 하고 베이징에서 바로 홍콩으로 가는 항공기에 탑승해야 했었다. 홍콩에서의 5년 반이라는 그 긴 시간이 사실 이렇게 갑자기 얼떨결에 시작되었던 것이다.


또 부임 초기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정말 신변의 위험을 느껴가면서까지도 해결해 보려고 온갖 발악을 했던 기억도 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그런 문제들이 해결이 되고 나니 이후에는 다행히도 법인의 매출과 이익이 급성장해 판매법인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그런 기분 좋은 경험을 하기도 했었다.


국가적으로는 정말 중요한 행사와 관련되는 일을 홍콩에서 지원하는 역할을 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일 관련 홍콩에 출장 오셨던 그 당시 우리 회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손님과 그의 가족 모두를 홍콩에서 두 번씩이나 뵙게 되는 경험을 하기도 했었다. 당연히 힘들었지만 그래도 작게나마 조국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 나름 자긍심도 있었던 일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일도 홍콩 근무 시절 겪었다. 친동생이 갑자기 뇌출혈로 사망하는 사건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내 건강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덕분에 그렇게 끊기가 어려웠던 담배를 한 방에 끊어 버릴 수도 있었다. 그때 담배를 끊은 이후에 벌써 12년째로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요즘은 오히려 길 가다 담배 피우는 분을 만나면 그 연기가 너무 괴로워서 옆으로 피해 다닌다.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처음으로 깨우쳤던 곳도 역시 홍콩이었던 셈이다.




더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에는 사표를 제출하는 것으로 홍콩 생활과 직장 생활까지도 끝을 맺게 됐지만, 어떻게든 버텨 보려고 하던 시절 매일 빠지지 않고 들었던 노래가 있었다.


동생처럼 허망하게 갑자기 한 순간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 일은 결코 없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점심만 먹고 나면 뱃살도 빼고 운동도 한다고 법인 근처 거리를 매일 같이 약 20분간 하염없이 속보로 걸어 다녔는데 바로 그때 듣던 노래였다. 이제는 이미 7년도 넘는 세월이 흘러갔지만 지금도 여전히 이 노래를 들으면 그 당시 그렇게 간절한 마음으로 평안과 안식 그리고 건강을 갈구하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사진) 점심 식사 후 약 20분 속보로 걷던 거리 (좌측 2011. 7월, 우측 2011. 8월)


그런데 사표를 제출함으로써 그 당시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스트레스에서는 많이 벗어나 건강만은 어느 정도 되찾게 된 것 같다. 하지만 이 노래를 들으면서 마찬가지로 갈구했던 안식과 평안까지 정말 찾았는지는 확답하기에 자신이 없다. 28년이라는 길고 긴 직장 생활을 스스로 마감하는 사표를 제출하면서까지도 찾으려 했던 것이 그것들이었는데, 왠지 아직도 이 질문에는 흔쾌히 찾았다고 답을 할 자신이 없다.


(힘들던 시절 위로받기 위해 듣던 노래)

https://www.youtube.com/watch?v=IQ8o96otBrw




아래 사진들은 이제는 흘러가버린 과거 홍콩에서 근무하던 시절의 사진들이다. 5년 반이라는 세월과 함께 얼굴 모습도 같이 서서히 늙어가는 것 같기도 한데, 이 사진들을 다시금 보게 되니 사진 속 그 아련한 과거 홍콩의 공간과 시간으로 되돌아가는 느낌도 든다.


[ 2009년 홍콩 ]


[ 2010년 홍콩 ]


[ 2011년 홍콩 ]


[ 2012년 홍콩 ]


[ 2013년 홍콩 ]


[ 2014년 홍콩 ]


2014년 6월 19일 마침내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아래의 보딩 패스 사진이 바로 그때, 즉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를 거쳐 직장 생활 마지막 근무지였던 Hong Kong에서 한국으로 귀국할 때의 보딩 패스다.


이 보딩 패스도 이제 벌써 7년 전에 사용했던 오래된 과거의 추억 속 보딩 패스가 되어 버렸다.


사진 속 보딩 패스와 함께 내 몸은 홍콩을 떠나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렇지만 왠지 홍콩 어딘가에는 홍콩에 거주했던 나의 5년 반 흔적이었던 그림자가 여전히 남아서 아직도 홍콩 거리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떠돌아다니고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만큼 과거 홍콩에서 경험했던 그 시간과 공간이 그립다는 의미일 것이다....


(홍콩에서의 내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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