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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기억에 남는 단편들 (4-4)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7편 HK, Macau-36)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Hong Kong, Macau



36. 홍콩, 기억에 남는 단편들 (4-4)


전편 "35. 홍콩, 기억에 남는 단편들 (4-3)"에서 이어짐




12) 홍콩 항공사 이름의 'Cathay'란 단어는?


홍콩의 대표적인 항공사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Cathay Pacific'이다. 좀 자존심 상하는 일이긴 하지만 홍콩 법인에 근무할 때 보면 홍콩인 직원들은 한국이나 중국에 출장 갈 때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또는 중국 항공기는 좀처럼 타지 않았다. 그들은 일정을 조정해서라도 되도록 홍콩 Cathay Pacific을 이용하려고 했는데 이유는 항공기 사고 가능성이 크게 낮은 것으로 집계되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의 한국인 법인장은 출장 일정에 맞는 아무 항공기나 타고 다녔는데, 직원들은 굳이 가격이 좀 비싼 Cathay Pacific만 골라 타고 다녔던 셈이다.


너무 오래된 기간을 대상으로 사고율을 산출하는 방식이 좀 불합리해 보이긴 하지만, 실제 인터넷으로 항공사별 안전도 순위를 검색해 보면 Cathay Pacific은 매년 상위 1~3위에 들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반면, 부끄럽게도 한국 항공사는 사고 위험성이 높은 항공사 List에 자주 등재되곤 했었는데 한국의 안전 관리 수준이 미흡했던 매우 오래전에 발생했던 사고들이 아직 여전히 항공사 사고율 통계에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항공사별 사고율 순위, JACDEC)

https://pointmetotheplane.boardingarea.com/the-worlds-most-dangerous-safest-airlines/


홍콩에서 5년 반이나 근무하다 보니 중국이나 한국에 출장 갈 때는 이 Cathay Pacific을 꽤 자주 이용하기도 했었다. 그럴 때는 대부분 별생각 없이 탑승하곤 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르는 의문이 홍콩의 대표적인 항공사의 이름에 들어 있는 'Cathay'가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중화권에서는 가장 오래된 항공사가 Cathay Pacific인데 왜 China도 아니고, Hong Kong도 아니며, 당시에 홍콩을 지배했던 영국과 연관된 단어도 아닌 생소한 Cathay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이름으로 항공사의 이름이 정해졌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사진) 홍콩 공항 모습 (2008. 9월)


자국 항공사 이름에 'China'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국가는 중국만은 아니다. 대만 역시 이 단어를 사용해서 1959년에 설립된 대만의 항공사는 'China Airlines'로 불리는 반면, 1988년에 설립된 중국의 항공사는 'Air China'로 불린다. 장개석과 모택동 모두 자신의 국가가 진정한 'China'라고 주장하면서 생겨난 결과물이다. 한편 이렇게 두 개 항공사 이름 모두에 같은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보니 그 사정을 잘 모르는 외국에서는 대만 항공사를 중국 항공사로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고 한다.


(대만 항공사 오해 방지 위해 사명 변경 추진)

https://m.blog.naver.com/rits/221912491268

https://www.taiwannews.com.tw/en/news/3920829


반면 남북한에도 대한항공과 고려항공이 있지만, 대한항공 경우 영문으로 표기할 때 'Korean' Air라고 표기하는 반면, 북한 고려항공은 Air 'Koryo'로 표기해서, 이 경우는 같은 이름이 중복되지는 않아 외국인들도 혼선의 여지가 적다.


(북한 고려 항공)

https://www.pinterest.co.kr/pin/391672498819860077/


홍콩의 Cathay Pacific은 1946년에 설립되었다. 그런데 설립 당시 홍콩에서도 항공사 이름에 'China'라는 단어를 채택하는 것으로 결정했다면 결과적으로 China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항공사는 중국, 홍콩, 대만 등 세 지역 모두에 존재하게 될 뻔했다. 당시 홍콩은 영국의 지배를 받던 때라 중국 영토에 포함되지 않았던 바 대만처럼 홍콩도 얼마든지 독자적으로 항공사 이름을 결정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홍콩 항공사는 China라는 단어를 채택하지 않았고 좀 생소한 Cathay라는 단어를 항공사 이름으로 채택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추정이 있으나 그중의 하나는 China라는 단어가 가진 어감에 꽤 부정적이었던 이 항공사 설립자가 자신의 항공사 이름에 그런 단어가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거대한 중국 영토에 인접한 홍콩 항공사가 결국에는 중국을 대상으로 영업을 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중국이라는 의미가 항공사 이름에 포함되는 것이 꼭 필요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경에서 선택된 단어가 바로 'Cathay'였던 것이다. 좀 많이 생소하긴 하지만 'Cathay'라는 단어 역시 'China'처럼 중국을 의미하는 단어였기 때문이다.


영어 단어 'China'는 중국 최초로 통일된 왕조를 세웠다는 진시황의 '진(秦, Qin)'나라에서 유래되었다 한다. 그리고 유럽의 다른 언어인 독일어, 프랑스에서도 영어와 유사하게 중국을 'China(치나)' 또는 'Chine(쉰느)'로 표기한다.


(독어에서의 '중국' 발음)

https://dict.naver.com/dekodict/#/entry/deko/51d93fffc11943a3908532dc8231aa18

(불어에서의 '중국' 발음)

https://dict.naver.com/frkodict/french/#/entry/frko/abdee17279844e50b1efbcdc076237a5


그런데 특이하게도 중국과는 더 가까운 곳에 있는 러시아의 언어로는 중국을 이와는 꽤 다른 'Китай(Kitai)'라고 표기한다. 중국을 '키타이'라고 표현하니, 그 발음이 영어, 프랑스어, 독어 등 기타 유럽 언어와는 꽤 다른 것이다.


(러시아어에서의 '중국' 발음)

https://dict.naver.com/rukodict/russian/#/entry/ruko/21250a5972754e6c8c951c28bd0f1199


그럼 왜 러시아만은 중국을 '키타이'라고 표현할까? 이유는 바로 한반도에서는 '거란'이라고 부르던 민족을 유럽에서는 'Khitan(契丹, 키탄)'이라고 불렀는데 이 단어에서 유래된 단어가 러시아어의 Kitai였던 것이다. 영어의 Cathay 역시 이 Khitan에서 유래됐으며, 몽골어에서의 중국을 지칭하는 단어 'Хятад(하탓, Khyatad)' Khitan에서 유래된 것이다.


(몽골어에서의 '중국' 발음)

https://dict.naver.com/mnkodict/#/entry/mnko/b97b016042e94f26a027fbc31215bacd


과거 한때 거란족이 세운 요(遼) 나라는 현재 중국 영토의 꽤 넓은 부분을 점유하고 있었는데, 이때 중국을 대표하는 국가로서 유럽에 알려지게 되면서 이 민족의 이름이 중국을 지칭하는 단어 자체로 굳어진 것이었다.


(요나라 영토)

https://en.wikipedia.org/wiki/Liao_dynasty#/media/File:Liao_circuits.png


결국 Cathay 역시 China처럼 중국 특정 왕조를 지칭하는 단어에서 시작되어 나중에는 중국 자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었던 것인데, China라는 단어에 부정적이었던 Cathay Pacific 설립자가 두 단어 모두 중국을 지칭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China라는 단어가 갖고 있는 부정적 어감이 없었던 Cathay라는 단어를 채택했던 것이다.

한편 거란족이야 당연히 한족과는 구별되는 별개 민족이며, 진나라 또한 원래 한족의 영토였던 중원(中原)이라 불리던 지역에서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서북방에 있던 왕조로 순수 한족으로부터는 '융족(戎族)'이라는 야만 민족으로 불렸던 민족이 세운 국가였다. 따라서 엄밀히 따지고 보면 China, Cathay 두 단어 모두 중국 인구의 92%를 차지하는 현재 한족의 중국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단어였던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 송나라나 명나라 같은 한족이 세운 국가의 명칭이 아니라 원래 이민족 국가였던 'Cathay(거란족)'와 'China(융족)' 같은 단어가 현재 중국을 지칭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는 것 어찌 보면 특이한 역사의 아이러니 같기도 하다.


(초창기 진나라 위치)

https://ko.wikipedia.org/wiki/%EC%A7%84_(%EC%98%81%EC%84%B1)#/media/%ED%8C%8C%EC%9D%BC:State_of_Qin_300_BCE.png

(진나라는 이민족의 나라?)

https://www.mk.co.kr/news/economy/view/2017/03/178942/



13) 홍콩에 남아 있는 과거 한국의 기억


Wan Chai 전철역에서 법인 사무실이 있던 Central Plaza 빌딩 사이에는 지붕이 있는 3~4백 미터 정도의 긴 육교가 있었다. 전철역과 사무실 사이를 이동할 때는 늘 이 육교를 통해 이동하곤 했는데, 이 육교 덕분에 비가 꽤 심하게 오는 날에도 전철역과 사무실 사이를 우산 없이 편하게 지나다닐 수 있었다.


사진) Wan Chai 전철역과 Central Plaza 빌딩 사이 육교 (2010. 6월)


그런데 이 육교가 이처럼 꽤 길다 보니 육교를 걸어갈 때는 주변에 있는 다양한 거리의 모습을 내려다볼 수도 있었다. 그렇게 내려다 보이는 거리 중에는 'Lockhart Road'라는 거리도 있었는데, 그 거리에는 Club 또는 Bar라고 표기된 술집들이 꽤 있었다. 그곳의 술집 이름은 'Crazy Horse''Club Popeye'처럼 이름만 들어도 뭔가 좀 야릇한 느낌이 드는 그런 이름이었는데, 실제 그 술집 바로 거리에서는 훤한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짧은 선정적인 치마를 입고 지나가는 남성을 대상으로 묵시적인 호객 행위를 하는 그런 여인들도 볼 수 있었다.


(여인들이 호객 행위하던 Club들이 있던 거리)

https://goo.gl/maps/P9Nk3qkkc6i6LPjb6


그런데 외모로 볼 때 그녀들은 홍콩인으로 보이지는 않았고 동남아인처럼 보이는 여인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영어를 할 수 있어서인지 필리핀인처럼 보이는 여인들이 유독 많았다. 그녀들의 호객에 홍콩에 관광 온 듯한 백인들이 그런 술집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것을 이따금 목격하기도 했었다.


40만 명이나 된다는 홍콩의 외국인 가사 도우미들 중 가장 많은 수가 필리핀 여성들이었다. 그럼에도 필리핀 여성들은 가사 도우미 수에서 뿐만 아니라, 그보다도 좀 더 험한 일을 해야 하는 이런 술집 종사자 수에서도 그 수가 가장 많았던 셈이다.


물론 술집 안에서 함께 앉아 그저 맥주와 같은 간단한 술을 좀 마시고 팁을 받는 것으로 그녀들의 임무는 끝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변에 허름한 호텔들도 꽤나 몰려 있던 것으로 봐서 그 이상의 뭔가가 있을 수도 있어 보였다.


결국 국가가 가난하니 어려운 국민들이 외국에까지 와서도 그러한 험한 일들을 하며 자신들과 가족들의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필리핀 정치 지도자들이 참 미워졌고 그녀들이 측은해 보이기도 했다.


한국도 경제적으로 어렵던 시절에, 독일에 광부나 간호사로 가서 탄광에서 목숨을 걸고 석탄을 캐거나, 중환자 대소변 받는 일 등 독일인들이 마다하는 다양한 궂은일들을 해야만 했고, 또 열대 지방 중동의 건설 현장에 근로자로 가서 돈을 벌어야 하기도 했었다. 그렇지만 그래도 가사도우미나 술집 일에 한국인들이 그렇게 대거 동원된 적은 없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거리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장소에서 작은 한국 식당을 운영하던 여자 사장님의 말씀을 우연한 기회에 들을 수가 있었는데, 그분의 말씀에 의하면 놀랍게도 그 술집 앞 거리에서 호객하는 여인들은 불과 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 한국인 여성이었다고 했다. , 오늘날에는 필리핀 여성들이 돈 벌기 위해 부자 나라 홍콩 술집에 와서 일하고 있듯이 한국이 가난하던 시절에는 한국 여성들이 당시에는 한국보다 훨씬 더 잘 살았던 부자 나라 홍콩에까지 와서 돈 벌기 위해 와서 같은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북한의 개성이 고향이라는 그 사장님은 연세가 70도 넘어 보이시는 분이었는데 20대의 젊은 시절 홍콩으로 오셨다고 하시니 홍콩에서 거주한 기간이 50년 가까이 되었고 그 긴 시간 홍콩에 사는 한국인들의 삶의 변화를 모두 본인의 눈으로 직접 목격해 오셨던 것이다.


한국의 경제력이 상승하면서 이제 그 거리의 Club에는 더 이상 한국 여성은 없었다. 하지만 사실 구룡반도 침사추이 지역에 가면 한국인 여성들이 나오는 룸살롱 같은 술집들이 여전히 있었다. 오래전에 홍콩에서 근무하셨던 분이 홍콩에 출장 오셨을 때 같이 가자고 해서 그분 따라서 함께 그곳에 갈 기회가 있었는데 가 보니 실제 그런 곳이 있었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그분이 홍콩에서 근무하던 80년대에는 침사추이에 이처럼 한국 여인이 나오는 룸살롱 같은 술집이 꽤 많았다 했다. 다만 이제는 한국인의 소득도 많이 올라간 실정이라 과거 그 시절처럼 많은 한국 여인들이 돈을 벌기 위해 홍콩의 술집으로 와서 험한 일을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이 있어 나는 먼저 나왔지만 사실 그날 내가 방문했던 그 룸살롱도 이제는 과거와는 다르게 단순히 술만 마시는 곳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최근에도 매춘을 위해 홍콩까지 온 한국인 여성들이 홍콩 경찰에 체포되어 기사로 나왔던 적도 있었던 것처럼, 한국 경제가 나름 꽤 성장했어도 여전히 홍콩 같은 해외로 가서 매춘을 하는 경우도 있기도 한 것 같다.


(홍콩 경찰 한국인 성매매 여성 적발)

https://m.blog.naver.com/sn00005/221810593231


그런데 사실 한국 남성들 또한 필리핀 등 해외에까지 원정 가서 다수의 현지인들을 상대로 성 매수하다 적발되었다는 기사도 잊을만하면 다시 터져 나오는 실정이니 한국 남성들 역시 마찬가지이기는 하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한국 여성 경우 돈을 벌기 위해 한 일로 돈을 받는 입장이었다면, 한국 남성들의 경우는 돈을 주는 경우였던 바 경제적 이유에서 유발된 행동은 아니라는 점일 것이다.


(필리핀 경찰 성매매 한국 남성 9명 체포)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3/07/2017030700262.html


하지만 어쨌든 80년대처럼 많은 한국 여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홍콩에까지 오지는 않을 것이고, 더욱이 Lockhart Road와 같은 거리의 노상에서 지나가는 행인을 대상으로 호객 행위를 해야 하는 서글픈 현실을 매일 직면해야 하는 한국 여성은 아마도 이제는 없을 것이다.


동남아, 중남미, 아프리카 등에 있는 많은 국가들이 30년 전이나 5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항상 변함없이 가난에 허덕이고 있거나 오히려 부국에서 빈국으로 추락을 해버린 경우까지 있었던 반면, 한국은 다행히 수백 년간의 지독한 가난에서 벗어나 선진국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까지 경제가 성장했으니 생각해 보면 정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 기적을 이루어낸 한국인에게 스스로 많은 감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14) 왼쪽을 보시요, 오른쪽을 보시요....


중국 출장을 갔다 밤늦게 홍콩 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에서 집까지는 전철을 타면 가장 빠르게 도착 수 있었다. 따라서 평상시에는 항상 전철을 탔다. 하지만 그날은 호텔로 가는 일행이 있어 그들도 바래다 줄 겸 함께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택시 타는 곳에 가서 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는데, 순간 뭔가 섬찟한 장면을 목격했다. 택시 대기선에 있던 택시 한 대가 운전석에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저절로 스르르 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지며, "이게 뭐지? 귀신을 봤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당황해하고 있었는데 바로 정신이 들었다. "아 내가 홍콩으로 돌아왔지, 여기는 중국이 아니고 홍콩이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홍콩은 운전석이 한국과 달리 우측에 있는 지역이다. 영국 지배를 오래 받아 영국처럼 우측에 있는 것인데, 운전석이 좌측에 있는 중국이나 한국에 출장을 며칠간 다녀오면 가끔 이렇게 잠시 헷갈려서 운전자가 왼쪽에 있는 것으로 착각을 하기도 했던 것이다.


결국 차량의 왼쪽만 보고 그 차에 운전자가 없다고 생각해 빈 차가 저절로 움직인다고 착각을 했던 것인데, 실제로는 운전자는 차의 오른쪽에 있는 운전석에 엄연히 앉아 있었고 그 자리에서 운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홍콩에서 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영어와 중국어로 "오른쪽을 보시요" 또는 "왼쪽을 보시요"라는 문구가 도로 바닥 곳곳에 허다하게 적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행인에게 왜 왼쪽이나 오른쪽을 보라고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홍콩에서는 차량 주행 방향 역시 중국이나 한국처럼 운전석이 좌측에 있는 국가와는 완전히 반대이기 때문에 도로를 건너는 사람들에게 차량이 접근해 오고 있는 방향을 제대로 보라는 의미였다.


(특정 방향을 바라보라는 홍콩 도로의 표식)

https://www.alamy.com/china-hong-kong-pedestrian-crossing-a-street-outside-the-crosswalks-with-road-marking-in-english-and-chinese-look-right-look-left-image210354608.html


운전석이 차 왼쪽에 있는 중국이나 한국에서는 도로를 건널 때 당연히 먼저 왼쪽을 보고 중앙선을 넘은 이후 오른쪽을 보게 된다. 차량이 바로 그 방향에서 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홍콩에서는 차량이 이와는 정반대로 주행하기 때문에 먼저 오른쪽을 보고 중앙선을 넘은 후에 왼쪽을 봐야 한다.


하지만 운전석이 왼쪽에 있는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 특히 연간 수천만이나 되는 중국 본토 관광객들은 무의식적으로 중국에서 하던 대로 정반대 방향으로 차량이 오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때문에 종종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던 것이다. 즉, 왼쪽을 보고 차량이 접근해 오지 않는다고 판단해서 도로에 발을 딛었는데, 실제 차량은 그와 정반대인 오른쪽 뒤통수 방향에서 접근해 왔던 것이다.


중국 본토에서 오는 관광객이 이렇게 반대 방향을 바라보고 길을 건너다 사고가 발생하는 일이 너무나도 빈번하다 보니 결국 홍콩 당국은 도로 위 곳곳에 어느 방향을 바라보라는 그런 문구까지 새겨 놓게 된 것이었다.


실제로 차량이 접근해 오는 것과 정반대의 방향을 바라보고 길을 건너는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할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홍콩에서만 5년 반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을 거주했던 나 역시도 도로를 건널 때 반대 방향을 보고 차량 접근 여부를 확인하는 실수들을 빈번하게 저지르곤 했었다. 특히나 술 한잔 해서 알딸딸한 상태에서는 영락없이 그러한 실수를 하곤 했는데, 수십 년에 걸쳐 몸에 밴 오래된 습관이 거주 지역이 변했다고 몇 년 만에 그렇게 쉽게 바뀌는 것은 결코 아니었던 것 같다.


검색해 보니 외외로 우측에 운전석이 있는 방식을 채택하는 국가가 적지 않았다. 전 세계를 193개 국가로 계산했을 때 영국, 일본, 태국, 호주, 싱가포르 등 약 53개 국가가 그런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하니 전 세계 국가의 약 30% 정도는 홍콩과 같은 방식으로 운전석이 배치되어 있는 셈이다.


홍콩의 운전석이 한국과 반대였던 덕분에 늦은 밤 출장에서 돌아와 심신이 모두 피곤할 때 홍콩 공항에서 사람도 없는 빈 차가 움직이고 있다는 오싹하고 재미있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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