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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기억에 남는 단편들 (4-3)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7편 HK, Macau-35)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Hong Kong, Macau



35. 홍콩, 기억에 남는 단편들 (4-3)


전편 "34. 홍콩, 기억에 남는 단편들 (4-2)"에서 이어짐




8) 그 묘한 기운이 홍콩의 '음기'아니었을지....


Director급 직원을 새로 채용했는데, 채용한 직후에 일요일 사무실에 출근해서 보니 그 Director가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아 아무도 없는 사무실 자신의 자리 근처에서 우리 회사 직원이 아닌 어떤 여성과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외부인들은 사무실로 들어올 수 없다고 말해줬는데 그의 답은 그녀는 자신의 부인인데 풍수지리에 대해서 매우고 있기 때문에 새로 앉게 된 자신의 자리가 풍수지리 관점에서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던 중이라고 했다.


홍콩은 직장에서 자신이 앉는 자리까지도 풍수를 볼 정도로 풍수지리에 대한 믿음이 너무도 강한 곳이었다. 의외의 사실이지만 글로벌 금융 대기업인 HSBC와 중국은행 간에 상대방 건물을 대상으로 하는 '풍수 전쟁'까지도 있었다는 것처럼 홍콩에 있는 최첨단 초고층 건물도 역시 풍수지리에 입각해 건축된 것이 많이 있을 정도였다.


(HSBC와 중국은행 간 풍수 전쟁)

https://www.wikitree.co.kr/articles/370492

(홍콩은 풍수가 지배한다)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9/02/06/2009020601261.html


홍콩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이 풍수지리는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하는데, 음양오행설은 사물의 생성과 변화를 음양과 오행의 원리로 설명하는 그런 이론이라 한다. 즉, 음양(陰陽)과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와 같은 오행(五行)이 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이론이다.


(풍수지리와 음양오행)

http://www.poongsoojiri.co.kr/board_nwYu64


그런데 이 음양오행설에서 언급되고 있는 '음기'가 유난히 강한 곳으로 알려진 곳이 또 홍콩이었다. 홍콩의 건물 중에 IFC 건물처럼 남성 성기와 유사하게 디자인된 건물이 있는 이유도 너무도 강한 홍콩의 음기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한다.


(IFC 건물 모습 사진)

https://www.skyscrapercenter.com/building/two-international-finance-centre/205


그런 홍콩에서 5년 반 거주하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때 어떤 특정 지역에 가면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홍콩다른 지역에서보다도 훨씬 강한 묘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지던 그런 공간이 종종 있었다.


한국 등 다른 지역에서는 좀처럼 경험해보지 못했던 그러한 기운이었는데 음양오행설에 대해 워낙 문외한이라 사람이 음기를 직접 느낄 수 있는 것인지도 사실 잘 몰랐지만 혹시 그때 느꼈던 그런 묘한 기운이 강하기로 유명했던 홍콩의 바로 그 '음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아래 사진에 있는 장소들이 그런 묘한 기운을 느꼈던 곳들 중 일부인데, 사진으로는 그런 기운이 전해지기 어렵겠지만 실제 사진 속 저 장소에 들어가 있을 당시에 나로서는 뭔가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묘한 기운을 강하게 느꼈었다.


사진) 주변에서 알 수 없는 오묘한 기운 같은 것이 느껴졌던 홍콩의 공간들. 거리를 오가는 사람도 전혀 없어 마치 텅 빈 도시 안에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음기가 강해서 그런지 중국 등 다른 대다수 국가들과는 달리 홍콩의 인구 구조를 보면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다. 2021년 기준 약 750만의 홍콩 인구 중 남성은 47.3%인 반면 여성은 52.7%를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홍콩도 외부 유입 인구가 많았던 1995년까지는 남성 인구가 더 많았다 한다. 하지만 95년 이후 남성 인구 비중은 계속 줄어들어 2000년에는 여성 대비 97%까지 떨어지고, 2005년 92%, 2010년 89%, 2015년 87%, 그리고 결국 2020년에는 마침내 85%까지 추락하게 되었다. 남성 인구 비중이 끊임없이 줄어들어 이제 여성이 100명이면 남성은 85명밖에 안 되는 것이다.


(홍콩 인구 남녀 비중)

https://countrymeters.info/en/Hong_Kong


그런데 남성 인구가 여성의 85%밖에 안 되는 이런 현상은 아래 국가별 남녀 비율 현황 자료를 봐도 특이할 정도로 꽤 낮은 비율이다.


(국가별 남녀 인구 비율)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countries_by_sex_ratio


물론 이런 현상이 홍콩의 강한 음기와 반드시 관련이 있는 것인지는 딱 잘라 말하기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홍콩은 음기가 매우 강한 지역이라고 홍콩인 스스로 믿는다는 것, 또 여성 대비 남성 인구 비중이 지속 감소하고 있다는 것 등은 분명한 사실이다


아직도 홍콩에 근무하면서 이따금 느끼곤 했던 알 수 없는 그 묘한 기운이 정말 '음기'였는지는 확신이 없다. 그렇지만 강한 음기를 상쇄하기 위해서 수백억 원도 넘을 초고층 IFC 같은 건물조차도 남성의 성기 모양으로 디자인했다는 것을 보면 당시 내가 느꼈던 그 오묘한 기운이 바로 홍콩의 매우 강한 '음기'가 아니었나 하는 추정도 여전히 하게 된다.


위 4장의 사진을 오랜만에 다시 보니 홍콩에 거주하던 당시 사진 속 저 장소에 있을 때 느꼈던 그 묘하고 생소한 기운이 그대로 다시 전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9) 침사추이 '뒷골목 볶음밥'의 교훈


홍콩 구룡반도 '침사추이(Tsim Sha Tsui)'라는 지역에는 크고 작은 한국 식당들이 여러 곳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는 제대로 된 한국 음식을 하는 곳도 물론 있었지만, 정통 한국 음식이 아니라 국적이 다소 애매한 한국 음식을 하는 곳도 있어서, 잘 모르고 그런 식당에 들어가면 정말 해괴한 한국 음식을 맛봐야 하는 봉변을 겪기도 했다.


어느 토요일 사무실로 출근해서 주중에 마치지 못한 일들을 모두 마무리하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갈 때 역시 침사추이에 있었던 한국 식품점에 들렀다. 토요일에는 언제나 이곳에서 장을 보곤 했었는데 그날도 마찬가지였고 평상시처럼 다음 일주일 동안 먹을 한국 식품을 왕창 사서 백팩에 쑤셔 넣고 집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어디선가 너무 고소한 한국 음식 냄새가 나서 주변을 돌아보니 인근 뒷골목의 작고 허름한 한국 식당에서 그 냄새가 모락모락 흘러나오고 있었다.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식당 안을 들여다보니 김치볶음밥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거리로 퍼져 나온 것이었다.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는 식당이었고 실제로 한국인이 하는 식당인 지도 확실하지 않았지만 마침 배가 너무도 출출해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 어쨌든 그 식당의 김치볶음밥 냄새만은 정말 기가 막히게 고소했고 그 식당을 피해서 그냥 가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에는 볶음밥 냄새에 홀리다시피 그 식당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기막힌 냄새를 풍기던 볶음밥 한 그릇을 주문했다. 국적을 제대로 알 수 없는 이상한 한국 음식에 한 번 된통 당한 이후 좀처럼 이 거리의 낯선 한국 식당에는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날만은 소신을 지킬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먹어보니 풍겨 나오던 냄새만큼 실제로 그 볶음밥은 너무 맛있었다. 따라서 양도 적지 않아 꽤 푸짐했던 볶음밥 한 접시를 후다닥 모두 비우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와서 잠시 지나고 나니 몸이 뭔가 이상한 것 같았다. 마치 전신의 혈관 안으로 몸에 안 좋은 어떤 성분들이 계속 퍼져나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신선한 기름은 당연히 건강에 좋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기름은 산패하기가 너무나도 쉬운데, 유감스럽게도 산패한 기름은 사람의 몸에는 독(毒)이라 할 정도로 유난히 해롭다 한다. 그런데 침사추이 뒷골목에 있던 그러한 작고 허름한 식당에서 볶음밥을 만들 때 사용했을 기름은 당연히 신선한 기름과는 거리가 있었을 것이고, 아마도 산패가 상당히 진행된 기름이었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다.


(산패한 기름은 독이다)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602222017843920


그런 산패한 기름으로 만든 볶음밥 한 사발을 다 먹었으니 독과 같다는 산패한 기름의 나쁜 성분들이 서서히 온몸으로 퍼져 나갔을 것이고, 집으로 돌아온 후에는 그것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물론 몸이 민감하지 않은 상태였다면 그런 것을 못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그 당시는 친동생이 아직 한참 더 살아야만 할 나이인 40대에 뇌출혈로 갑작스럽게 사망한 직후였다. 그리고 동생의 그러한 갑작스러운 죽음에 너무나도 놀랐던 나는 당시 유난스러울 정도로 건강 관리에 신경을 쓰던 때였고 식사도 온전히 채식만 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내 몸 상태는 자연스럽게 외부에서 유입되는 자극에 평소보다는 훨씬 더 민감한 상태에 있었을 것인데, 그러한 상태에서 산패된 기름에서 나오는 독과 같은 나쁜 성분들이 몸 안으로 갑자기 밀려오니 몸이 그것을 유난히 더 강하게 느꼈던 것 같다.


담배를 피우던 시절에는 그 담배의 냄새가 얼마나 독하지를 잘 못 느끼지만 담배를 끊고 나서는 어쩌다 주변에서 담배 냄새를 맡게 되면 그 냄새가 정말 너무 독하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즉, 담배 연기의 독을 매일 정기적으로 흡입할 때는 그 독에 무디어져서 잘 못 느꼈지만 몸이 그 독에서 완전히 벗어난 이후에 그 독을 다시 접하게 되면 바로 느낄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경우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담배 연기만큼 몸에 해로웠던 것이 바로 산패된 기름이었던 것이다.


산패된 기름을 섭취했을 때와 비슷한 경험을 다른 음식에서 하기도 했는데, 오랜만에 커피를 마셨을 때였다. 동생 사망 이후 커피 역시 일절 마시지 않았는데, 어느 날 직원 채용을 위해 법인하이얏트 호텔 커피숍에 가서 대상자를 만나 면담할 때 습관처럼 음료로 커피를 주문했고 인터뷰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몇 모금 마셨는데 잠시 후 몸에 뭔가 이상한 반응이 왔다.


그런데 커피는 산패된 기름보다도 몸에서 반응하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아마 카페인 성분인지 커피의 어떤 성분이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흥분제처럼 퍼져 나가는 것을 커피 마신 후에 10분도 안돼서 바로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역시 오랜 기간 카페인이라는 흥분제가 몸에 전혀 없던 상태로만 지내다가 갑자기 카페인이 몸안으로 마구 밀려서 들어오니 몸이 바로 반응을 했던 그런 경우였던 것 같았다.


(카페인의 흥분 작용)

https://www.dongsuh.co.kr/2017/03_mediaCenter/06_coffeeClass_step6_view2.asp


홍콩의 침사추이 뒷골목에서 먹었던 산패된 기름으로 만든 볶음밥과 하이얏트 호텔에서 오랜만에 마셨던 커피를 통해 입을 거쳐 몸 안으로 들어가는 들이 건강에 얼마나 결정적인 영향을 치는지를 새삼 깨우칠 수 있었다.



10) 100여 년 된 목조 건물 'Blue House'


결코 유명한 관광 명소도 아니고 그저 허름한 4층짜리 주택 건물이었지만 이제는 세계적으로도 나름 꽤 알려진 홍콩의 건물이 하나 있었다. 바로 Blue House라 불리는 건물인데 마침 이 건물이 홍콩 근무 말년 내가 거주했던 아파트 바로 옆에 있어서 이 건물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Blue House 모습)

https://en.m.wikipedia.org/wiki/Blue_House_(Hong_Kong)#/media/File%3ABlue_House%2C_Hong_Kong.jpg


(Blue House 소개 동영상, 05:41)

https://www.youtube.com/watch?v=FAC9C_gKKlU


(보수 공사 이전 2015년 Blue House 모습)

http://hongkongdreaming.pl/secret-stories-the-blue-house/


2013년 경 당시 Queen's Cube라는 Wan Chai 지역의 서비스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었는데 이 아파트 바로 옆 약 10미터도 되지 않은 곳에는 꽤 오래전에 존재했던 공사판 숙소처럼 보이는 매우 낡은 4층짜리 건물 한 채가 있었다.


당시 이 건물은 정말 너무도 낡아서 시내 한복판에 러한 건물이 있는 것이 의아할 정도였는데, 그럼에도 오래된 홍콩 영화에서 본 것 같은 건물의 독특한 매력에 빠져서 건물 앞을 오갈 때는 건물의 내부를 기웃거리며 들여다 보기도 했었다.


그런데 좀 더 알아보니 이 건물은 1922년에 완공된 건물로 그 역사가 거의 100년이 돼가는 매우 오래된 건물이었다. 그리고 그 특이한 건물 외관 디자인은 이 건물이 건축되던 당시 중국 남부에서 유행했던 '唐樓(당루)'라 불리는 건축 양식이라고 했다. 당루의 '당'은 중국 '당나라'를 의미하는 말로 결국 중국식 건물이라는 뜻이라 하는데, 그 디자인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순수하게 중국풍은 아닌 것 같고, 그 당시 중국 남부에 식민지나 조계를 보유하고 있던 유럽 국가들의 건축 양식도 상당 부분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어쨌든 이 '당루'라는 건축 양식이 적용된 건물 중 현재까지 남아 있는 몇 안 되는 건물이 바로 이 Blue House라 했다. 참고로 당루(唐樓)는 중국 표준어로 읽으면 '탕로우(Tang Lou)'지만 광둥어로 읽게 되면 '통라우(Tong Lau)'인데 광둥어가 사용되는 중국 남부 지역에서 주로 사용되던 건축 양식이라 그런지 영어에서도 광둥어 발음 기준으로 'Tong Lau'라 표기된 자료가 거의 대부분이었다.


(Tong Lau 영문 설명)

https://en.m.wikipedia.org/wiki/Tong_lau


이 건물은 원래 상가로 사용되던 1층을 제외한 2층 이상은 20여 가구가 거주하는 공동 주택용으로 건축되었다 한다. 하지만 이후에는 무술 학원 등으로 사용돼 오기도 했는데, 1970년대에 홍콩 정부가 이 건물을 매입한 후 1990년에 건물 외벽을 온통 파란색으로 도장했기 때문에 그때부터는 Blue House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한다.


한편 홍콩의 오래된 유럽풍 건축물이 거의 전부 석재로만 건축된 것과는 달리, 이 건물은 1층을 제외한 나머지 층은 목재로 건축되었는데 1925년에 완공됐다는 석재 건물 구 서울역 역사보다도 3년이나 더 먼저 건축되었고 또 목재로 건축되었음에도 100년이 다 되도록 잘 버티고 있는 것을 보면 애당초 매우 튼튼하게 건축되었던 것 같다.


내가 출퇴근하면서 이 건물과 마주치던 시절인 2013년 이 건물 모습은 다 스러져 가는 것 같은 매우 낡은 모습이었다. 그런데 최근 사진을 보면 그와는 달리 꽤 깔끔한 모습으로 나오는데 알고 보니 내가 홍콩을 떠난 1년 뒤 2015년에 이 건물에 대한 대대적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다 한다. 현재 이 건물은 홍콩의 역사적 건물 1등급으로 지정되어 문화재로 보호받고 있다.


(보수 공사 이후 Blue House '외관')

https://theculturetrip.com/asia/china/hong-kong/articles/whats-inside-hong-kongs-blue-house/


(보수 공사 이후 Blue House '내부')

https://zolimacitymag.com/how-the-blue-house-is-keeping-hong-kongs-heritage-alive/


한반도에 6.25 전쟁이 발발했던 시기인 1950년대에 찍은 이 건물 사진도 검색해 보니 찾을 수가 있었는데 바로 아래 사진이 그 사진이다. 70년 정도나 지난 매우 오래된 사진인 셈인데 이 낡은 흑백사진 속에 등장하는 거리의 홍콩인들은 아련한 1950년대의 과거 기억 속 홍콩처럼 이제는 이미 이 세상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가신 분도 많을 것 같다.


너무나도 낡은 사진 속의 Blue House는 2015년 대대적인 보수 공사를 거쳐 새로운 모습으로 화려하게 탄생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Blue House 주변을 거닐던 모습의 사진 속 인간들은 결코 그렇게 다시 탄생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1950년대 Blue House 모습)

https://2016-2017.nclurbandesign.org/2017/05/viva-blue-house/



11) 옹관묘 실물이 등산로 곳곳에....


학창 시절 무덤의 종류에 대해 배울 때 '옹관묘'라는 형태의 무덤에 대해서도 배운 기억이 있다. 시신을 항아리에 넣어 보관한 것인데 한반도에서는 청동기 시대 때부터 시작돼서 삼국 시대 때 주로 많이 사용되었다 한다. 하지만 책에서만 배웠지 실제 그런 무덤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홍콩에서 우연히 그런 무덤을 눈으로 직접 보게 된 경우가 있었다, 그것도 박물관 같은 곳도 아니었고 평범한 등산로 한 구석에서 볼 수 있었다.


(홍콩의 산속에 있는 옹관묘 모습)

1. https://www.hpcbristol.net/visual/rd-s091

2. https://www.hpcbristol.net/visual/na22-28

3. https://www.flickr.com/photos/16498755@N07/40660942100


주말에 친구와 함께 가끔 다니던 등산로였는데 처음 몇 번 그 옹관묘를 지나칠 때는 그것이 무덤이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등산로에 이상한 항아리들이 놓여있다고 생각하고 지나쳤는데, 어느 날 같이 가던 친구가 그것들이 단순한 항아리가 아니라 무덤이라고 설명을 해 줘서 그것이 무덤인지 알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이후 관심을 갖고 보니 실제 옹관묘 주변에는 가짜 지폐 같은 것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것도 볼 수가 있었다. 이 가짜 지폐는 '지전'이라고 부르는데 망자에 대해 제사 지낼 때 사용되는 제사용품이다. 따라서 그런 지전이 옹관묘 주변에 있다는 것은 최근에도 그 옹관묘에서 제사를 지냈다는 얘기가 것이고 결국 그런 옹관묘는 오래되지 않은 근래에 만들어졌다는 의미가 된다.


옹관묘라는 무덤이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한국에서와 달리 홍콩에서는 근래에까지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었던 것이다.


어쨌든 그동안 산에서 등산할 때마다 이러한 무덤 앞을 여러 번 지나쳤다는 말인데, 몰랐던 상황에서는 별 느낌이 없었지만 막상 그것들이 무덤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니 그 길로 다시 다니는 것이 왠지 께름칙하고 좀 부담스러웠다. 무덤도 한국에서 보는 것 같은 형태가 아니라 전혀 생소한 항아리 형태이다 보니 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유해가 된장이나 고추장 같은 음식들을 담는 용기와 비슷한 항아리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 어쩐지 좀 괴기스럽게까지 느껴지기도 했는데 또 한편으로는 요즘 많이 사용되고 있는 납골당의 유골함도 결국은 옹관묘에서 사용되는 항아리와 별 차이가 없는 것 같기도 했다.


홍콩에서 등산을 다녔던 덕분에 한국에서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었을 옹관묘를 현장에서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것도 사람들이 다니는 평범한 등산로에서....


그때 내가 봤던 옹관묘의 주인들처럼 언젠가 수명이 다하면 나의 유해도 역시 어딘가에는 담겨 있게 될 것이다. 비록 그 용기가 항아리가 될지, 관이 될지, 아니면 그 어떤 용기에도 담기지 않고 그저 강이나 나무 아래 남겨질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다음 편 "36. 홍콩, 기억에 남는 단편들 (4-4)"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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