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홍콩, 기억에 남는 단편들 (4-1)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7편 HK, Macau-33)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Hong Kong, Macau



33. 홍콩, 기억에 남는 단편들 (4-1)



1) 홍콩 거리의 한국어 "아저씨, 짝퉁 시계 있어요"


'중경삼림(重慶森林)'이라는 홍콩 영화를 보면 영화 이름과 같은 '중경(청킹) 맨션'이라는 낡은 건물이 영화 배경으로 등장한다. 이 건물은 60년 전인 1961년에 완공된 건물로 꽤 오래된 건물인데 영화 내용에서도 그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지만 치안이 안 좋고 실제 범죄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그런 건물로 유명했다.


(청킹맨션 관련 사건, 사고)

1. https://jihoney.tistory.com/205

2.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213/0000335476?sid=004


한편 이 건물과 인근 일대는 정말 여기도 홍콩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서남아인이나 흑인 그리고 아랍인과 같은 이민족이 유난히 많이 모여 있는 곳이기도 했다. 이곳에서 눈에 띄는 사람의 최소 반 이상은 동양인이 아니라 이러한 이민족들이었다.


그들은 거리 주변 구석에 서너 명씩 모여 오가는 행인들을 주시하다가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가면 시계 같은 제품을 사라는 호객 행위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한국인이라고 써서 붙이고 다녔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그곳을 지날 때에는 정확하게 한국어로 내게 호객 행위를 다. 내가 홍콩인이 아닌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맞혔을 뿐 아니라 심지어 꽤나 다양한 외국인 중에서도 정확하게 한국에서 온 사람인 것까지도 맞혔던 것이었다.


발음도 너무 또렷해서,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즉시 알아들을 수 있는 발음으로 호객을 했는데 바로 "아저씨, 여기에 짝퉁 시계 있어요...."라는 말이었다.


물론 한국어만 아니다. 일본 관광객으로 보이는 사람에게는 또 일본어로 뭔가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관광객들이 답하는 것을 들어보면 역시 일본인이었다. 이번에도 정확히 국적을 알아맞혔던 것이다. 다만 한 사람이 여러 외국어를 모두 구사했던 것은 아니었고 언어별로 각각 다른 담당자가 정해져 있어서 자신이 담당한 언어를 사용하는 관광객들이 지나가면 그때 나서서 해당 언어로 호객을 하는 것 같았다.

유럽이나 미주 대륙 등 서양인들이 다수인 지역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홍콩이나 대만 등 동아시아 지역에 근무할 때도 나를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오해하는 현지인들은 너무도 많았다. 아예 동남아인으로 오해하는 경우까지 있을 정도로 구분 능력이 떨어진 사람도 있었다. 우리가 독일인, 영국인, 스위스인, 네덜란드인을 제대로 구분해 내기가 어려운 것과 사실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거리에서 짝퉁 시계를 팔았던 그들은 전혀 그런 혼동 없이 그저 지나가는 사람 외모만 보고 정확히 국적을 구분해 다. 물론 나 역시도 때로는 동아시아인을 외모만 보고 구분해 내기도 한다. 하지만 내 경우의 정확도는 그들 정확도를 따라갈 만한 수준에는 결코 미치지 못했다.


검색해 보니 나처럼 청킹맨션 거리에서 한국어로 호객하는 것을 경험했던 분들이 꽤 계시던데, 그렇게 많은 한국인이 같은 경험을 했던 것을 보면 청킹맨션 인근에서 짝퉁시계를 파는 그들의 짝퉁 판매 능력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외모만 보고서도 국적을 알아맞히는 능력만은 분명히 대단했던 것 같다.


(청킹맨션 인근 한국어 호객행위)

1. https://felly3.tistory.com/m/146?category=349469

2.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ina860527&logNo=50187880373&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kr%2F


사실 "아저씨, 짝퉁 시계 있어요"라는 호객은 한국에서조차 단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그런 말을 홍콩이라는 멀고 먼 해외에서 눈이 크고 피부색까지 다른 서남아인들을 통해 처음 들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좀 우습기도 한 것 같다.



2) 홍콩 여학생들에게 밟혀 죽는 줄....


이소룡, 주윤발, 유덕화, 관지림, 장만옥, 양조위, 장국영.... 이 이름들은 과거 한때는 홍콩 영화계를 주름잡던 너무나도 유명한 배우들의 이름들이다.


요즘은 한국 영화관에서 홍콩 영화가 상영되는 경우가 매우 드문 것이 현실이지만, 과거 홍콩 영화는 홍콩에서는 물론 한국에서도 높은 인기가 있어서 한국의 TV나 영화관들은 홍콩 영화나 배우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던 시절도 있었다.


(80~90년대 주윤발의 한국 음료 광고)

https://thepatio.tistory.com/513

(90년대 장국영과 유덕화의 한국 초콜릿 광고)

https://m.blog.naver.com/kmlink/221958341727


하지만 정말 격세지감이라고 언제가 부터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어 한국에서 홍콩 영화나 노래의 인기는 시들해진 반면 홍콩에서의 한류 인기는 정말 대단했다.


한국의 인기 가수들이 대거 등장하는 'MAMA'와 같은 뮤직 어워드 행사가 홍콩에서 개최될 때면 수많은 청소년들이 그 입장권을 구하기 위해 밤새 줄을 선다는 기사가 홍콩 언론 곳곳에 도배되다시피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런 공연장에 갈 일이 전혀 없었던 나는 홍콩에서도 한류 가수나 배우의 인기가 대단하다는 그러한 소문만 들었지 실제로 그 열기를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홍콩에서 한류 연예인들의 인기가 정말로 무섭도록 대단하다는 것을 너무도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던 기회가 있었는데 의외로 공연장 같은 곳이 아니라 바로 홍콩 공항에 출장자 마중을 갔을 때였다.


(MAMA 2016년 공연장 모습)

https://fb.watch/8hjFip2TM9/


통상 홍콩으로 오는 출장자들은 호텔까지 알아서 자신들이 찾아간다. 하지만 그날 도착한 출장자는 내가 공항에 가서 모시고 와야 하는 분이어서 법인 차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그런데 공항 입국장으로 들어가서 보니 공항 분위기가 뭔가 좀 이상했다. 경찰들이 유난히 많이 보였고 무엇보다 1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수 백명도 넘을 만큼 너무도 많았다.


그래서 좀 알아보니 공교롭게도 그 출장자가 오는 항공편과 동일한 항공편으로 한국의 유명한 남성 가수 그룹도 온다는 것이었다. 공항에 있던 그 많은 학생들은 홍콩에 도착하는 그 한국 가수들을 보기 위해서 모여든 학생들이었고 그들의 수가 너무 많으니 질서 유지와 안전을 위해 적지 않은 수의 경찰들까지 동원된 것이었다.


한편 그저 한두 명의 여학생들이라면 당연히 별다른 부담이 없었겠지만 매우 흥분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그것도 수백 명씩이나 공항 내부에서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다 보 솔직히 좀 무서워 보이기도 했다. 너무나 흥분한 팬들 때문에 간혹 사고가 나기도 했다는 기사가 떠오르기도 했는데 그런 광적인 팬들을 실제 눈앞에서 이날 처음 직접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분위기에서 마침내 한국발 항공기에서 승객들이 나올 시간이 됐고, 조금이라도 더 그 가수들 가까이 접근하려는 여학생들은 마음이 다급해져서 사람들이 나오는 출구 바로 앞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몰려들었다. 그런 그들을 피해 나는 자연스럽게 점점 더 뒤쪽으로 밀려나게 되었고 마침내 거의 공항 청사 출입구 근처에까지 밀려나서 그곳에서 출장자가 나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 공항 입국장 홀 전체로 울려 퍼지는 학생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갑자기 그 학생들이 모두 뒤로 돌아 출입구 근처로까지 밀려나 있던 나를 향해 전속력으로 질주해 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렇게 달려오는 여학생들을 보니 모두 하나 같이 얼굴은 뻘겋게 상기되어 있었고 눈매 또한 좀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히 결코 정상인처럼 보이지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입국장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광적인 팬들이 몰려 있는데 그 분위기마저 심상치 않으니 안전사고 발생을 우려해 누군가 한국의 가수 기획사에 그러한 상황을 알렸고 사고를 우려한 기획사와 공항 당국이 정상적 통로가 아닌 전혀 엉뚱한 통로로 그 가수들이 빠져나가게 조치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입국장에서 한국 가수들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에게 그 사실이 어떻게 알려지게 되면서 가수들이 몰래 나오려 했던 통로 쪽으로 학생들은 급하게 이동하려고 했었고, 그런 이유 때문에 내가 서있던 출구를 통해 건물을 빠져나가려고 모두 급하게 출구 쪽으로 달려왔던 것이었다.


불량 청소년들이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면 여학생들도 꽤나 무서워 보이는 경우도 있던데, 몹시 흥분한 것으로 보이는 여학생들이 그것도 수백 명이나 동시에 내게로 전속력으로 돌진해 오는 것을 보니 순간 정말 무서웠다. 부딪히기라도 한다면 넘어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렇게 넘어졌다면 수백 명의 흥분한 학생들 발에 밟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나는 출입구 주변에서 벗어나기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는데 다행히 먼저 빠져나가려는 수백 명의 학생들로 출입구가 온통 아수라장이 되기 직전에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었다.


좀 지나친 기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자칫하면 그날은 수백 명의 학생들에게 밀리거나 밟혀서 사고까지도 발생할 수 있었던 하루였던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홍콩에서 정말로 대단했던 한류 인기를 처음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날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멋진 한국의 가수들과는 너무도 다른 내 외모를 보고 당신도 정말 같은 한국인이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분명히 나도 한국인이니 덩달아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홍콩 공항 모습)

https://m.blog.naver.com/ksalt7/221778723775

(한류스타가 도착했을 때의 홍콩 공항 모습, 02:39)

https://www.youtube.com/watch?v=Oo748zySqIc


홍콩 법인의 홍콩인 직원 중에도 열렬한 한국 가수 팬이 한 명 있었다. 그녀는 한류가 좋아서 1년에 한 번 정도는 필히 한국을 방문한다고 했다. 실제로 내가 홍콩을 떠난 뒤에도 그녀가 한국에 와서 인사동에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는 이제는 30대의 중반으로 접어든 나이였지만 일편단심 10대 시절부터 좋아했던 한 명의 한국 가수를 지금도 여전히 좋아한다고 했다.


그가 바로 가수이면서 또한 배우이기도 한 안재욱 씨였는데 요즘은 안재욱 씨 연예 활동이 다소 뜸함에도 그녀는 20년 가까이 안재욱 씨의 열렬한 팬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언제나 자랑스러워했다. 홍콩 영화들이 한국에서 인기가 높던 시절 홍콩 배우들을 사랑하는 한국인 열성 팬들이 매우 많았는데 이제는 역으로 20년 가까이 한국 배우를 열렬히 사랑하는 팬이 홍콩에 존재하고 있으니 정말 격세지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일제 강점기, 6.25 전쟁, 판잣집, 보릿고개 등, 수 백 년간 오로지 이런 말과 분위기 속에서 살았던 한국이 이제는 전 세계를 섭렵하는 반도체, 자동차, 핸드폰, 선박 등과 같은 상품들을 배출하게 된 것도 정말로 기적 같은 일이겠지만, 영화나 노래 같은 한국 콘텐츠 상품이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아 한국 배우나 가수의 팬들이 세계 도처에 존재하게 된 것은 사실 더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신임 임원 교육을 받을 때 가수 지망 연습생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강연하는 것을 듣는 과정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의 말을 듣고 나름 큰 감동을 받았다. 편하고 즐겁게만 사는 것으로만 보였던 유명한 가수들이 실제로는 오랜 기간 피나는 노력과 고통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달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원 100명 중 오직 1명만이 대기업 임원이 될 만큼 임원이 되기는 어렵다 한다. 그렇지만 가수를 지망하는 연습생들의 수도 사실 매우 많은데 그 많은 연습생들 중에 극소수만이 마침내 가수로 성공해서 방송에 나온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방송에는 보게 되유명한 가수들은 짧은 청춘 시절을 피나는 노력의 시간으로 보내야만 했던 수많은 연습생들 중 선택된 극소수였던 것이고, 대다수는 아예 방송에 출현조차 해보지 못하고 청춘을 연습생 신분으로 모두 다 소진한 후 결국에는 연습생 신분으로 사라지게 되는 경우가 허다했던 것이 세계의 냉정한 현실이었다.


(BTS, 마마무, 브아걸의 연습생 시절 회상)

1. https://www.segye.com/newsView/20210325504843

2. https://www.news1.kr/articles/?4263083

3. https://signalm.sedaily.com/NewsView/1VPPLWVEV2/GL01


반도체와 자동차, 핸드폰과 같은 유형의 제품을 전 세계에 수출해서 얻는 파급효과도 당연히 매우 클 것이다. 하지만 홍콩 공항에서 광적일 정도로 한류에 푹 빠진 홍콩 팬들을 보면서 그렇게 너무도 힘들고 고생스러운 노력을 통해 유명 가수로 성공해서 한국 콘텐츠를 전 세계로 전파하는 한국의 가수들이 만들어내는 파급효과는 어쩌면 더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심지어 한국 제품의 해외 판매 업무로 평생을 살아온 나 같은 사람에게도 말이다....


그 어떤 홍콩인이 한국 제품을 그렇게 광적으로 좋아할 수 있겠으며, 또 20년 가까이 유일하게 오로지 안재욱 씨만의 팬으로 남아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듯이 한국 기업 제품을 일편단심 자랑스러워 할 수 있을지....



3) 홍콩 상점에 표기된 문구 'Duty Free'


홍콩에 가면, 특히 다수의 소규모 매장들이 밀집되어 있는 침사추이(Tsim Sha Tsui) 같은 곳에 가면 카메라나 시계 또는 화장품 같은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의 외부에 'Duty Free'라는 문구가 표기되어 있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문구는 결코 틀린 말은 아니지만 사실 소비자를 꽤 현혹시키는 다소 황당한 문구다.


홍콩은 자유무역지역으로 홍콩의 전 지역은 애당초 관세가 없는 지역이다. 즉, 모든 상점이 'Duty Free'라는 의미다. 물론 담배나 도수 높은 술처럼 일부 관세가 있는 예외적인 품목이 있기도 하지만, 이러한 품목은 모두 다 합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극소수이며 홍콩으로 수입되는 거의 모든 제품에는 원칙적으로 수입 관세가 없다.


(홍콩의 관세)

https://www.khidi.or.kr/board/view?pageNum=6&rowCnt=10&menuId=MENU01836&maxIndex=00138388729998&minIndex=00138387809998&schType=0&schText=&categoryId=&continent=&country=&upDown=0&boardStyle=&no1=&linkId=13838821


따라서 카메라나 화장품 같은 제품도 당연히 관세가 없다. 홍콩 어느 상점을 가도 모두가 Duty Free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마치 자신의 상점만이 특별히 Duty Free 제품을 판매하는 것처럼 푯말을 붙여 놓고 있는 것은 결국 외국인 관광객들을 현혹하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한편 수입관세가 없는 같은 Duty Free 제품이라도 상점에 따라 가격 차이는 꽤 있는데 이런 차이는 관세와 관계없이 각 상점 별로 매입 원가에 얼마의 이익을 추가했느냐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다.


마카오도 홍콩처럼 무관세 지역이다. 하지만 마카오의 명품 가격이 홍콩보다 대체로 저렴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동일한 Duty Free 지역이지만 일반적으로 마카오 상점들이 홍콩의 상점들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을 좀 더 낮게 책정해서 판매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 편 "34. 홍콩, 기억에 남는 단편들 (4-2)"로 이어짐...

keyword
이전 15화꽃 피지 못한 장밋빛 인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