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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yla Y Oct 22. 2020

승무원이 당신의 세계에서 사는 법 (2)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으로, 책임을 다하여.

  아마 처음 라인에 올라가고 여덟 번째 비행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밤 비행이었고, 목적지는 효도 여행을 위한 관광지로 손꼽히는 곳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승객들은 대개 지긋한 나이의 어르신들이었다. 이 노선의 갖은 악명에 대해 선배들에게 어찌나 주의사항을 많이 들었던지, 나는 안 그래도 얼마 안 되는 비행 경험에 더욱 긴장이 되어 보딩을 준비하는 내내 손바닥에 땀이 찼다.


  비행을 위한 안전 검사 및 서비스 물품 세팅이 끝나고, 기장의 오더에 따라 승객 보딩을 시작했다. 승객들은 하나같이 즐거운 여행을 앞두고 들뜬 표정이었고, 오후 9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었지만 피곤한 기색 없는 유쾌한 분위기만 기내에 가득했다. 모든 승객이 기내에 탑승 후, 사무장은 지상 직원에게 기분 좋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더니, 예정보다 조금 이른 시각에 기내 문을 닫았다. 출발지의 날씨도 좋았고, 365일 중 100일 빼고는 비가 온다는 오늘의 목적지도, 오늘은 그 100일 안에 드는 쾌청한 날씨였는지 아무 무리 없이 제시간에 이륙을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참 순조로웠다.


  이륙 후 서비스를 마칠 때 까지도 큰 문제는 없었다. 식음료 서비스는 아직 손에 완벽히 익지 않아 서툴렀지만, 큰 실수나 승객의 불만 없이 진행되었고, 몇몇 음료가 부족한 것 빼고는 회수까지 잘 마무리되었다. 문제는 회수를 모두 마치고 승객들의 편안한 휴식을 위해 객실 등을 끈 다음에 발생했다.

  이코노미 중간 열쯤의 A좌석에서 콜벨이 울렸다. 그것도 짧은 몇 초 사이에 아주 여러 번. 이제야 교육생 딱지를 갓 뗀 나조차도 이것이 물 한 잔 정도나 부탁할 호출은 아니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긴장한 걸음으로 빠르게 해당 열로 향했다. 콜벨의 노란 불빛이 반짝이는 좌석으로 다가가 섰는데, 내가 어떤 질문도 하기 전에 이미 승객의 괴로워하는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으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모르, 모르겠어요. 토할 거 같고…….”

“혹시 평소에 지병이나 불편하셨던 곳이 있으세요?”

“딱히 그런 거는 없었어요.”


  승객은 말을 채 잇지 못하며 괴로워했고, 딸로 보이는 젊은 여자분이 대신 대답을 하며 아픈 승객의 엎드러진 등을 두드리고 있었다. 속이 답답하고 토할 것처럼 메슥거린다는 말에 나는 우선 뒷좌석 승객에게 양해를 구하고, 의자를 젖혔다. 그렇지만 승객은 등받이에 등을 기대는 것조차 괴로워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 매뉴얼을 생각해 냈다. 통풍구를 최대한 개방하고는 승객의 몸을 조이는 바지 버클이나 속옷 등을 끌르며 상태를 물었다. 가능한 침착하려고 했지만, 초짜 승무원이었던 내가 처음 맞닥뜨리는 상황, 설마 오늘 이런 일이 일어날까 싶었던 상황에 등에서 식은땀이 주룩 흘렀다. 내가 돌아오지 않자, 갤리에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승무원 하나도 찾아왔다. 내가 전하는 말과 눈에 보이는 상황에 대충 상황을 파악한 그녀는 사무장에게 보고하러 가겠다며 분주히 사라졌다. 그러고는 얼마 안 있어 객실 등이 조금 밝아지더니, 사무장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무슨 일이이예요?”

“숨, 숨이 잘 안 쉬어지는 것 같아요.”

“토할 것 같고, 숨쉬기가 어렵대요.”

“가서 산소통 가져오세요.”


  맙소사. 이제 겨우 여덟 번째 비행에서 산소통이라니. 산소통은 생각보다 자주 사용하게 되는 설비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벌써 사용하게 되리라곤 정말 생각하지 못했었다. 나는 잔뜩 긴장해서 떨리 듯이 저려오는 손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실수하지 않기 위해 다시 한번 정신을 바짝 차렸다. 가장 가까운 산소통을 빼들고 와서 마스크를 연결했고, 사무장은 능숙하게 마스크를 승객의 입과 코 주변에 맞추어 씌우고는 밸브를 돌려 산소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다른 승무원이 닥터 페이징을 했으나 아무리 찾아도 의사인 승객은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잠시 후 승객이 한결 나아진 듯 의사표시를 했다는 것이다. 승객은 겨우 등받이에 기대어 앉았다. 상황이 더욱 심각했다면 임시 착륙이라도 해야 했겠지만, 더 큰 문제없이 승객은 호전된 상태로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후로도 몇 번 기내에서 쓰러진 승객, 기장을 통해 지상과 연락해 앰뷸런스를 부른 일 등, 여러 번 응급 상황을 겪으면서 동기들이 우스갯소리로 저 사람이랑 비행 가려면 산소통 사용법 다시 확인하고 가라는 농담 아닌 농담을 하기도 했다. 매번 새로이 상황을 겪으며 대처 능력도 나아지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응급 상황은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비행 전에 항상 하게 되는 기도가 있다.


“오늘 이 비행기의 어떤 승객도 아프지 않고, 자신의 목적지에 안전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도착할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러면서 응급 매뉴얼을 다시 한번 뒤적이는 것이다.








  어떤 선배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벙크에서 쉴 때마다 ditching(비상착수)하는 꿈을 꿔요. 어떻게 탈출시켜야 하고, 어떻게 지휘해야 하는지. 비행기에서 눈만 붙였다 하면 그런 꿈이에요.”


  그리고 또 어떤 동료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냥 나도 모르게 이착륙할 때마다 오늘도 모두 무사히 보호해 달라고 기도하게 돼.”


“지난번 긴급 상황 때, 너무 무서운데 머릿속으로는 계속 승객 탈출 매뉴얼을 되뇌고 있더라고. 가끔 훈련받을 때마다 내가 그 상황이 되면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런 상황을 만나니까 할 수 있을 거 같더라. 아니하게 되는 것 같아. 그게 우리 일이니까.”


  아마 비행 중에 마주할지 모르는 가장 끔찍한 순간은 각종 항공기 사고일 것이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하늘에서 일하는 모두가 가슴 한편에 지니고 있는 두려움이다. 그러니 같은 직업을 가진 주위 사람들과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갖은 주제로 이야기를 하다가도 결국 다들 오늘도 안전을 기원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것이겠지.   


  사실 세상만사 보장된 내일이 어디 있겠냐만, 너무나 많은 변수 안에서 일하는 환경 때문인지 언제나 나의 노력과 힘이 닿지 않는 저너머의 범주를 곧잘 마주하게 된다. 그렇지만 결코 그 앞에 무기력할 수 없다. 그에 따른 안전과 생명에 대한 책임을 상기하면 늘 필사적으로 간절한 마음이 되고 만다. 처음 ‘돌발상황’이라는 것을 겪고서는 그다음 듀티를 맡는 하루하루가 두려웠다. 하지만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가시적으로 만나고 나의 손을 떠난 문제들을 체감하며, 나는 할 수 없지만 당신은 하실 수 있다는 고백을 하게 되더라. 그리고 나의 어느 하루도 당신이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고백까지도. 그렇게 그 크신 존재의 날개 밑에서 온전히 맡기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게 된다. 그것이 '기도'였다.


  기도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떤 상황에서든 선하신 당신의 뜻에 나의 뜻을 일치시켜가는 것일 터이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생각하면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하고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하신 기도의 위대함을 생각하게 된다. 나의 고민이나 두려움은 그에 비하면 사실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그럼에도 인간으로서 가장 원치 않는 순간을 상정하며 기도하는 것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희망적인 동시에 신기한 것은 기도의 단계 또한 관계와 시간 그리고 경험을 통해 무엇이 당신의 뜻인지 배워가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 말은 고통 가운데 있다는 것이 당신이 보호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은 아니며, 우리의 어려움이 당신의 뜻이라는 것은 결코 더더욱 아니다. 그저 많은 인과로, 때로는 어떤 사소한 선택에 의한 나비효과로 인해, 많은 경우 세상의 논리가 선하지 않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상황을 만나기도 한다. 결국 이 무엇 하나 확신할 수 없는 상황 앞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도이다. 나는 너무나 작고, 세상은 너무나 큰데, 당신은 그 세상보다 더 크시니까. 나는 모르지만 당신은 아시니까. 당신의 뜻을 알아서,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알게 하시기를.

  그 후에 사람에게 맡겨진 부분은 나의 본분에 따라 역할을 가진 자로서 소명적 책임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승무원으로서 매뉴얼을 복습하고, 안전사항을 숙지하고, 늦지 않게 쇼업을 하고, 사무장의 지휘에 따라 브리핑을 하고, 각종 설비와 기내에 관련한 안전 검사를 하고, 서비스 세팅을 하고, 그리고 승객을 맞이하기 전 아직 비어있는 객실을 돌아보며 기도한다.


  오늘도 모든 승객과 모든 크루가 안전하게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보호해 주세요. 누구도 아프지 않고, 누구도 다치지 않고 건강한 모습으로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책임을 맡은 모든 사람이 작은 일이라도 작게 여기지 않고 그 책임을 다해서 모두가 안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러나, 정말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저에게 이 자리를 허락하셨으니 맡은 바 최선을 다해 도울 수 있도록 감당할 힘을 주세요. 하고.


  두려움보다는 담대함으로 오늘 또한 살아낸다.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나의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받듦이니이다

시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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