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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yla Y Oct 28. 2020

마치 소설 같은 타이밍이었지

글쓰기에 관하여

  “학생은 왜 글 쓰는 쪽으로 가지 않고 그쪽으로 갔어요?”



  대학교 1학년 글쓰기 교양 교수님의 질문이었다. 한 편의 독서 평론과 한 편의 영화 감상문을 최종 과제로 제출한 뒤 첨삭을 기다리던 중 급작스럽게 받은 질문이었다. 글로 밥 먹고 살 자신이 없어서요. 이 정도로 솔직하게 대답했던 것은 아니지만 뉘앙스는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교수님은 바람 빠진 듯한 웃음소리를 내셨다. 공감이 어느 정도 비율로 섞인 톤이었다.


  그것은 어느 정도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장장 12년이 되는 학창 시절 내내 취미와 특기에 모두 글쓰기를 적어냈던, 백일장에 나가면 늘 상 하나씩은 받아 돌아왔던, 그래서 작문에 대한 나름의 자긍심과 나름의 ‘조’가 있었던 나의 교만하기 짝이 없는 부끄러운 고백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내 최초의 기억은 7살 즈음이었던 것 같다. 외할아버지는 오랜 시간 글을 쓰셨고, 그 때문인지 집에는 늘 빨갛고 큼지막한 모눈으로 가득한 원고지가 여기저기에 있었다.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것은 검정 하드커버에 단정하게 엮인 원고지 묶음인데, 괜히 마음에 들어 몰래 내 책꽂이에 꽂아두었고 이내 내 습작 노트가 되었다. 퍽 의협심에 불타 써 내려갔던 논설 조의 글도 있었고, 어린 상상력에 끄적였던 소설도 있었고, 언제나 제일 자신 없는 시도 있었다. 그것은 내 첫 ‘낭만 상자’였다.



  나는 낭만을 사랑했다. 언제나 그것은 내 큰 동력 중 하나였다. 글짓기를 아무리 좋아한 들, 쓰기 싫은 주제는 쓰기 싫었다. 그래서 일기도 독후감도 그렇게나 지루해서 언제나 미루고 미루다가 엉망으로 써서 내곤 했다. 그 베짱이 같은 마음가짐으로 기른 것은 성실보다는 충동이었다. 그러니 글은 내게 업보다는 놀이 같은 것이었고, 현실보다는 꿈같은 것이었다.


  그러다 그 낭만 게이지가 EMPTY를 향해 내달렸던 게 언제더라. 내 삶에서 현실이 낭만보다 커졌던 순간부터일 테다. 꿈보다 먹고사는 문제가 더 중요해진 시점부터 그렇게도 가슴 설렜던 일들에 더 이상 크게 마음이 뛰지 않았다. 그 이상의 것들이 상상되지 않았다. 좋은 글감을 봐도 좋은 글귀가 떠오르지 않았다.


  문득 위기감을 느껴 노트북 앞에 앉아 흰 화면 위로 깜빡이는 커서를 멍하니 보며 느꼈던 좌절감이 여전히 사무친다.



  철이 조금 드니 낭만을 잃었고, 그렇게 약간 모자란 어른이 되어버린 내가 새삼 오만했던 나를 마주했다. 그다음에는 어땠더라. 조금 겁이 났던 것 같다. 글을 쓰기에 연륜이 없고, 글을 쓰기에 경험이 없고, 글을 쓰기에 성실하지 못한 내가 먼저 보여서. 그러니 선뜻 문장을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나는 말보다 글이 익숙한 사람이다. 글쓰기는 생각을    정리할  있다는 점이 좋다. 당장에 드는 생각을 직접 내뱉는 것보다 내가 던지는  말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곱씹어  시간이 내게는 필요하니까. 세상에 미움받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만, 유난히도 남의 구설을 신경 쓰던 내게는 성긴 라도   거를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것이 ‘놀이’이고 ‘즐거움’이었던 그때와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이다음에는 어떤 일을 하고 싶어?”


  어느 평범한 날 문득 남편이 물었다.


“글쎄.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글을 쓰는 일을 했으면 좋겠는데.”


  나는 이렇게 마치 습관처럼 말하면서도 스스로 놀랐다.


  이제 와서 내가 무슨 수로 어떤 글을? 상상하고 꿈꾸기를 멈춘 지 한참이나 된 내가 어떤 글을?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는 지금 내가 어떤 글을?


  수많은 막막함과 함께 묘한 설렘이 피어오르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일까. 이 기분은 또 얼마나 오래갈 수 있을까. 금세 또 당장 보이는 것들, 해결해야 할 것들에 묻히지는 않을까.



  이런 쓸데없이 겁만 늘어 복잡한 심경의 또 다른 어느 평범한 날. 공교롭게도 너희를 만났다 하면 어쩐지 소설 같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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