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삼겹 줄 엮기
우리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가 아니기 때문에 혼자서는 너무나 쉽게 무너지고 넘어지고 지치는 연약한 존재이다. 특히 신앙에 있어 그렇다. 그렇기에 언제나 공동체 안에 안전하게 붙어있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겪은 바 승무원은 혼자 고립되기 쉬운 환경 안에 있는 직업이라는 생각이 든다. 꾸준히 주일 성수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이며, 계속해서 바뀌는 시차와 장소, 그리고 유동적인 스케줄로 인해 정기적인 모임은커녕 SNS로 대화를 이어가는 것도 생각보다 서로 간의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러다 보니 출석하던 교회에서도 어느새 모든 것에 있어 '열외'가 되어버린 스스로를 보게 되는 것이다.
철저히 홀로 당신과 독대하는 시간을 갖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일 터다. 그 시간에 마냥 감사할 줄 아는 성숙한 신앙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금세 지치고, 갈급해하며 그러다가 그 갈증이 익숙해지고, 그 신앙적 고갈이 당연한 일인 양 살만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당신이 나의 연약함과 내가 놓인 모든 상황을 아신다는 것이다. 생각지 못한 시간에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함께할 동역자를 허락하시며, 어떤 커다란 목표나 원대한 이상이 아닐지라도 허락하신 시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서로 돕고 지키는 지지자이자 파수꾼으로 함께하게 하신다. 그때 다시 한번 상기하는 것이다. 이 감각은 익숙하고 살만한 것이 아니라 죽도록 타는 갈증이었음을. 아, 돌이켜 생수의 강으로 가자. 하고.
2차 면접을 막 끝낸 시점이었다. 하루는 예배를 마치고 교회 문을 나서는데, 내 뒤통수를 향해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당시 내가 섬기고 있던 부서의 담당 전도사님이었다.
"Y, 청년부에 다른 자매도 승무원 면접 본다던데? 00 항공이면 Y가 이번에 지원한 데랑 같은 데 아니야?"
"어, 맞아요."
"둘이 한 번 같이 얘기해 봐! B라고 청년 1부 리더인데, 원래 아는 사인가?"
B라, 내 기억에 그녀는 내 동생의 소그룹 리더로 예전에 수련회에서 잠깐 스쳐 지나다가 인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얌전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가진 예쁜 자매였지. 나는 고개를 슬쩍 끄덕이며 얼굴은 알아요, 하고 대답했다. 같은 공동체에서 같은 회사에 지원한 전우라니,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직접 연락을 할 만큼 잘 아는 사이가 아니었고, 사실 연락처도 몰랐기 때문에 바쁜 일정이 다 끝난 다음 교회에서 만나면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눠봐야겠다고만 생각했다.
"앗!"
"어?"
"Y 언니...... 맞죠?"
그러나 재미있게도 B와 마주친 것은 4차 면접 당일이었다. 심지어 B는 바로 내 다음 조였다. 이런 우연이 있나. 우리는 면접을 마치고 그날 오후에 발표될 면접 결과를 기다릴 겸 같이 점심을 먹고 차를 한 잔 하자고 했다. 먼저 호명된 나는 시원하게 최종 면접을 말아먹고는 나와 B를 기다렸다. 혼자였다면 우울하고 불안한 마음이었을 테지만, 누군가와, 그것도 마치 긍정의 싸인처럼 나타나 준 누군가와 같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 참 위안이 됐다.
우리는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후 근처 찻집에서 공지된 시간을 기다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어떻게 이 일을 준비하게 됐는지, 어떻게 기도했는지, 당신의 뜻에 대해 어떤 싸인을 구했는지, 등등. 사실 이렇게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눈 것은 처음이었지만 어색함 없이 몇 시간이 훌쩍 흘렀다. B는 유난히 맑은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여기가 저한테 허락된 곳이 맞다면 믿음의 동역자를 붙여달라고, 저 혼자서는 자신이 없다고 그렇게 기도했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이렇게 만난 거예요."
"저도 그래요. B가 같은 곳 면접 본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그 뒤론 소식을 못 듣고 있다가... 오늘 이렇게 앞 뒤 조로 만나서 그런지 괜히 더 신기해요."
그렇게 우리는 마치 이미 합격 소식이라도 들은 듯 들떠 이야기했지만, 그날의 결과 위로는 희비가 엇갈렸다. B는 합격했고, 나는 마지막 명단에 이름이 올라있었다. 회사에서는 3개의 명단을 나누었다고 했다. 첫 번째 명단은 합격자, 두 번째 명단은 불합격자, 그리고 마지막 명단은 대기 인원으로 다음 채용 때 최종 면접만 다시 참여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겠다는 것이었다. 완전한 불합격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합격한 것도, 완전한 합격이 보장된 것도 아닌 터라 무거운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동시에 이유 모를 희망도 마음 한편에 있었다. '믿음의 동역자' 그 말에 유독 가슴이 뛰었던 탓일까.
B와는 그 후로 꾸준히 연락을 했다. B는 먼저 교육에 들어갔고, 나는 나름 바쁜 시간을 애써 보내며 한 달을 보냈다. 그 한 달은 유난히 길었다. 그날의 그 만남이 B에게도 나에게도 큰 의미가 있었기에 우리는 남은 시간도 같이 중보 하기로 했다. 당시 같이 진행 중이었던 다른 항공사의 최종 면접에서도 고배를 마신 뒤 부쩍 마음이 지쳐버렸을 즈음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면접 없이 다음 채용 기수로 입사하라는 전화가. 유례없는 꿈같은 경우에 나는 사실 실감이 나지 않았고, B에게 연락하니 B는 역시 그럴 줄 알았다며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B는 나보다 한 기수 선배로, 그리고 나는 후배로 비행을 하면서 3년 동안 우리는 단 한 번의 비행만 겹쳤을 뿐이지만 서로의 이곳에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특성상 스케줄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에 SNS으로 소소하게 QT모임을 진행하기도 하고, 함께 기도 제목을 나누고 중보를 하기도 하고, 각자 가까운 또 다른 크리스천 동료를 초대해 인원을 늘리기도 했다. 물론 때때로 일에도 신앙에도 슬럼프가 오기도 하고 많은 다른 이유로 지치기도 했지만, 대화 목록에 떠있는 B의 이름을 보며 이 곳도, 이 친구도, 그리고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선물 같은 것이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되는 것이다.
엄청난 '동역'을 했는가 묻는다면, 사실 우리가 같이 무언가 이루어내거나 어떤 것을 달성하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냥 있게 하신 자리에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단지 그것이었다. 상황에 지치고 힘들 때, 당신이 없는 것처럼 의미 없는 오늘 하루를 보낼 때, 다시 한번 눈을 들어 당신을 올려다보게끔 상기시켜 주는 서로에게 고마운 존재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어 준 선물 같은 B, 다정다감하고 모든 일에 언제나 밝게 웃는 얼굴로 모든 사람의 본이 되는 선배 J, 나도 다른 이에게 저런 동료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선배 M, 깊은 배려심으로 누구보다 부지런히 움직이는 천사 같은 P, 정성스러운 피드백으로 항상 웰컴 해주는 후배 C.
몇몇은 또 새로운 인도하심을 따라 다른 시즌에 접어들었지만, 덕분에 당신 안에서 더욱 든든하고 감사했던 시간을 돌이켜보며 글을 마무리한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전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