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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Feb 25. 2024

어색을 이기면 자연스럽다

혼자 카페

그 안경사님의 말씀이 맞았다. 다른 안경점에서 고작 0.6의 시력으로 안경을 맞춰준 점에 구시렁대는 나였다. 경쟁사를 흉보는 내게 그는 말했다.

“시력을 0.9로 맞춰드리긴 할 텐데요. 그럼 책을 읽을 때엔 안경을 벗고 보실 거예요.”


0.9의 조정된 시력을 갖게 된 대신에 가까이에 있는 것을 볼 때면 안경을 코밑으로 내려야 한다. 할머니 같지만, 내 인생 목차에 들었다면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흰머리는 여전히 거슬려서 염색의 욕구를 느끼지만 게으른 덕분에 점점 흰머리에 익숙해지는 중이다.


둘째의 일상(버스에 두고 온 에어팟 케이스)을 찾고서 홀로 카페(어배러데이)에 왔다. 건너편에 주차하고 두리번거리며 도로를 건너는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까. 예쁜 두 여사장님은 더 예쁜 미소를 띠고 내게 인사를 건넸다.

“오늘은 혼자 오셨네요?”

여자 넷(딸 셋과 나) 우르르 들어와서 한참을 음료와 케이크를 고르는 패키지 장면이 퍼뜩 떠오른 모양이다.




혼자 카페에 왔으니, 창가 쪽에 난 자리에 앉았다. 혼자라는 어색함에 휴대폰을 보다가 책을 보다가 글귀에 고개를 끄덕이다가 끄덕이게 만든 글을 적다가…. 점점 익숙해져 간다, 혼자의 시간이.


[동화 쓰는 법]을 읽고 있다. 그리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고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유유출판사]여서 샀다. 이 출판사를 좋아하는 이유도 별스럽다. 재생종이를 쓰고 책날개가 없어서 한 권을 다 읽고 나면 매우 열심히 본 것처럼 급속도로 낡아져 간다(책갈피 없이 읽다 보면 대신하여 휴대폰이나 책을 접게 되니까). 겨우 한 번의 완독이지만, 열심히 본 느낌을 갖게 해 준다. 운동화 닳은 게 뿌듯한 것처럼.


책을 워낙 읽지 않아서 모르는 게 많았던 모양이다. 내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드는 구절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이 책을 다른 이에겐 권하지 않을 거다. 권하지 않던 그녀들에겐 맞지 않던 게 내겐 맞았고, 내겐 맞았으나 누군가에겐 쓸모없을 시간 낭비가 될지도 모르니깐.


내가 이 책을 고른 건 전부터 마음에 두고 있기도 했지만, 며칠 전에 학교 회식에서 들은 말로 더 읽어야겠다는 욕구를 느꼈다. 회식 2차의 적당히 이완된 자리에서 분교에 계신 어떤 선생님이 말했다.

“글을 그렇게 잘 쓰신다면서요?”

“….”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런 말을 들을 만한 가치의 글을 쓴 적이 없다. 아마도 작년에 새마을문고에 낸 글이 수상한 탓일 거다. 문화상품권 5만 원 정도의 가벼운. 브런치에 연재하기로 했던 글도 3편에서 멈춰있다. 그만큼 난 쉽게 멈추고 가끔 걷는 사람이다. 그분이 갖고 있는 오해가 사실이 되도록 하고 싶어졌다. 이 책의 저자는 꾸준히 생각하던 스토리가 있었다. 하지만 어떤 플롯을 짜야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우연히(꾸준히 생각했기에 필연이라고 괄호 안에 쓰여 있기는 했다) 에픽하이의 노래를 듣고 플롯을 짜낼 수 있었다고 한다. 플롯 없는 스토리는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지 않은 상태와 마찬가지라 했다(지금까지 그래왔다). 이제 서투르지만 꾸준히 구상해 봐야겠다. 그러다 나도 에픽하이의 노래 비슷한 걸 만날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이것 또한 어색해서 언젠가 구겨진 종이가 될 수도 있다. 그 어색을 서서히 이겨보자. 분교 선생님의 오해가 사실이 되는 그날을 위해서.

산책하다 만난 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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