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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달리는 비결은 느리게 달리는 것

슬로러닝 하세요

by 신동빈

어린 시절 학교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해본 적이 있는가? 내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오래 달리기보다는 100m와 같이 단거리 러닝을 했는데, 짧은 거리다 보니 뒤를 생각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목표까지 달렸던 기억이 난다.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폐가 조여와 숨을 색색거리고 목에서는 피 맛이 나지만, 묘한 쾌감과 성취감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이 생애 최초로 경험한 러너스 하이였을까?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이후의 달리기는 모두 전력 질주였던 것 같다. 거리가 얼마든 최대속도로 달렸고, 근력과 심폐지구력을 모두 소모하면 잠시 걷다가 다시 뛰기를 반복했다. 마치 달리기 키를 누른 게임 캐릭터처럼, 걷기와 전력 달리기 사이의 선택지는 없었다. 게임 캐릭터와 달리 체력이 빠르게 고갈되고, 이따금 무리한 신체 사용에 무릎, 발목과 같은 신체 부위가 손상되어 긴 시간 러닝을 쉬다 흥미를 잃기도 했다.


간헐적으로 달리다 말기를 반복하다 수년 전 30대 중반에 들어서며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 이전에 비해 체력은 많이 줄었지만, 오히려 더 긴 거리를 빠르게 달릴 수 있었다. 이전과 달리 페이스(pace)라는 개념을 알게 되면서 가능해진 일이다. 러닝에서 페이스란 1km를 달리는 데 걸리는 시간을 말한다. "6분 페이스로 달린다"라는 말의 의미는 1km를 6분 만에 주파하는 속도로 달린다는 것이고, 이 속도를 유지한다면 10km를 60분, 즉 한 시간 만에 달릴 수 있다.


평소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은 달리기를 시작할 때 6분 페이스는 고사하고, 훨씬 느린 속도로 몇 분 뛰는 것도 고통스러워한다. 과로와 자극적인 음식에 찌든 현대사회 성인의 낡고 지친 몸은 빠른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인류 자체는 달리기 위해 진화해 왔으므로, 조금씩 훈련해 나간다면 속도와 상관없이 30분 정도는 상쾌하게 달릴 수 있는 몸을 만들 수 있다. 나 또한 그랬다. 책상머리에 하루 종일 앉아 있어 거북목이 되었고, 체중이 잔뜩 불어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처음에는 쉬지 않고 10분 뛰는 것도 어려웠지만, 주에 3회 정도 달리니 조금씩 체력이 늘어 한 달쯤 지났을 때는 느리긴 하지만 10km를 뛸 수 있었다.


어떻게 짧은 기간 내에 긴 거리를 뛸 수 있었을까? 비결은 바로 '느리게' 뛰는 것이다. '달린다''느리다'라는 두 단어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지만, 긴 거리를 달리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느리게 달려야 한다. 개인적으로 완전히 처음 뛰는 사람이라면 10분 페이스 정도로 뛰기를 권하는데, 이는 6km의 속도로 빠르게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다.


걷는 것과 무슨 차이냐 의문을 제기할 수 있겠지만, 두 발 중 한 발이 떨어져 있는 달리기 동작은 아무리 속도가 느려도 걷기와는 엄연히 다르다. 오히려 느리게 뛰는 것이 적당한 속도로 뛰는 것보다 더 괴로울 정도이니 말이다. 걷는 것보다 더 많은 심폐 지구력을 소모하고, 하체와 몸 중심의 근육을 조금씩 강화해 준다. 미세 손상된 관절 주변의 근육과 다리의 힘줄이 휴식을 통해 회복되며 어제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육체가 만들어진다. 이런 활동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걷기보다 조금 더 빠르게, 종래에는 내가 생각했던 달리기라는 행위에 걸맞은 제법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게 된다.


심리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느리게 달리기는 현재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돕는 마음챙김 명상(mindfulness)과 같은 효과를 주기도 한다.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며 정신없이 휩쓸려가지 않고, 순간순간 지금 내가 느끼는 것들을 바라보며 삶의 주체가 나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불안감이 줄어들고 이완을 느낄 수 있다.


삶이란 역설적이다. 오래 뛰고 싶다면 느리게 뛰자. 어쩌면 빨리 달리고 싶다는 욕구는 이 세상의 빠른 속도에 휩쓸려 뭐든 빨리 해야 하는 우리의 초조감 때문에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조금씩 느리게 움직여보자. 결국엔 빨리 달릴 수 있는 유쾌한 역설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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