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어린 시절 학교 체육시간에 달리기를 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오래 달리기보다는 100m 달리기를 했던 기억이 나는데, 짧은 거리다 보니 온 힘을 다해 전력질주를 한다. 다 달리고 나면 목에서는 피맛이 나지만, 묘한 쾌감과 성취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생애 최초로 경험한 러너스 하이였을까?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이후의 달리기는 모두 전력질주였던 것 같다. 길이가 어떻게 되든 최대한 빠르게 달렸고, 달리기 힘들어지면 걷기를 반복했다. 마치 달리기 키가 달린 게임 캐릭터처럼, 걷기와 전력 달리기 사이의 선택지는 없었다. 게임 캐릭터와 다른 점은 내 스테미너는 훨씬 더 빨리 고갈된다는 것이다.
그러다 성인이 된 후 이제는 아저씨라고도 불릴 수 있는 나이에 접어들며 다시 달리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전과 달리 여러 달리기 정보를 접하며 알게 된 것은 페이스(pace)라는 개념이다. 보통 달리기에서 페이스가 언급된다면, 1km를 몇 분 만에 달릴 수 있는지를 일컫는다. 예를 들어 6분 페이스라고 말하면 1km를 6분 만에 달릴 수 있는 것이고, 이 속도를 유지한다면 10km를 60분, 즉 한 시간 만에 달릴 수 있다.
처음 달리는 사람들은 6분 페이스는 고사하고 9분 페이스 정도로 몇 분 뛰는 것도 어려워한다. 과로와 자극적인 음식에 찌든 현대사회 성인의 몸은 빠른 달리기에 적합하지 않다. 그러나 인류 자체는 달리기 위해 진화해 왔으므로, 조금만 적응이 된다면 꽤나 잘 달릴 수 있는 몸이 된다.
나 또한 그랬다. 목은 굽어있고 체중은 잔뜩 불어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근력 운동을 꾸준히 해 하체 근력이 어느 정도 있었다는 것 정도이다. 처음에는 10분을 내리뛰는 것에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하루하루 뛸 수 있는 시간이 늘어, 한 달쯤 됐을 때는 느리긴 하지만 10km를 뛸 수 있었다.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렇게 긴 거리를 뛸 수 있었을까? 바로 '느리게' 뛰는 것이다. 달리기와 느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지 않을 수 있지만, 긴 거리를 달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느리게 달려야 한다. 개인적으로 완전히 처음 뛰는 사람이라면 10분 페이스 정도로 뛰기를 권하는데, 이는 6km의 속도로 빠르게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의 달리기다.
걷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냐고 말하실 수도 있지만, 두 발 중 한 발이 떨어져 있는 달리기 동작은 아무리 속도가 느려도 엄연히 걷기와는 다르다. 오히려 느리게 뛰는 것이 적당한 속도로 뛰는 것보다 더 괴로울 정도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느리게 뛸 필요가 있다. 느리게 뛰는 것은 속세에 찌든 우리의 몸을 대지와 친숙하게 만들어주는 과정이다. 달리기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몸의 부담을 줄여주고, 나의 심장과 폐, 근육이 조금 더 달릴 수 있도록 강화시켜 준다.
그리고 심리학자로서의 생각은 이렇다. 느리게 달리기는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는 순간 속에서 나만의 시간으로 움직일 수 있는, 어떻게 보면 시간을 통제하는 느낌마저 준다. 이는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도록 하는 마음 챙김(mindfulness)과 같은 효과를 주기도 한다. 쉽게 말하면 명상하는 느낌이랄까? 실제로 뇌와 정신건강 증진에도 도움을 준다고 하는데, 기회가 된다면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자면 오래 뛰고 싶다면 느리게 뛰자. 달리기가 꼭 빨라야 한다는 것도 우리의 편견일 수 있다. 이 세상의 빠른 속도에 매몰되어 뭐든 빨리 해야 하는 우리의 마음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의 몸을 움직일 때만이라도 조금씩 느리게 뛰어보자. 오히려 결국엔 빨리 달릴 수 있는 유쾌한 역설을 경험할 수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