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불교수업에서의 교수님의 말씀이 인상적이었다. 박사학위까지 받으시고 연구도 많이 하신 교수님인데, 어느날 부모님이 사고를 당하셨다고 한다. 마음의 해탈을 위해서 여태 공부도 많이하고 "내가 배운건 많고," 그 상황에서 가르침이 전혀 적용이 안된다 하셨다. 불교적으로는 '그저 바라보고 있으라. 이 또한 지나간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정말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해지는 상황에서 집착없이 그냥 바라보기가 가능한가? 그냥 바라보는게 옳은 것인가? 평소에 아무 일이 안생기고 모든게 정상으로 가고있다면 나는 고요히 나의 마음을 바라보고, 순수정신을 추구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위급하고 다급한 상황에서도 세상문제를 뒤로 젖혀버리고 영을 추구하는게 옳은 선택인가? 그런 상황속에서도 모든게 공emptiness이라는 진리를 떠올리며 마음비우지 못한다면 나는 아직도 깨닫지 못한 사람인가? 이러한 물음이 생길 수 있다.
"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 (마태 19:29)
나약한 자신을 책망하는 듯 양심고백하 듯 솔직하게 말씀하신게 인상적이다. 불교 지식인으로서 "이러 이러하게 멋지게 불교적 자세를 취했다"라고 하시지 않은게 감사하다. 그 상황을 왜곡적으로 말했다면 또 다른 혼란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그 이야기는 나를 자극했다. 대체 마음이란 무엇이고, 외부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본질은 무엇이고, 이 둘 간의 관계는 무엇이며, 깨달음의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물질계에 생존하기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은 나의 본체인 영spirit에는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렇다면 이 그림자를 걷어내야 하는데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결코 쉽지 않은, 그러나 그 방법은 매우 심플하다. 집착을 단절하고 마음수련을 하는 것이다. 수련을 한번 해서 이루면 좋겠지만, 그게 그렇게 되기는 어려운 일이다. 수련련할때는 오랜기간을 두고, 중간에 단절하지 않고, 집중하면서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수련하는 단계와 방법은 다음장 수행품에서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한편 집착이라는 것은 물질계의 생존본능과 연결되어있다. 돈, 사랑, 건강 모두 알고보면 생존본능이다. 이들에 대한 욕망을 끊고 초연하는 것이 집착을 끊는 것이다. 만약에 내가 TV에서 본 햄버거(보고 생긴 지각)가 먹고 싶다거나, 좋은 노래(들어서 생긴 지각)를 듣고 마음이 즐거워졌다해도 이 모든 것은 생존본능과 관련된것으로 영spirit에게는 유익하지 않다. 괴로움 뿐만 아니라 즐거움, 사랑까지도 모두 나의 영spirit에는 업을 남길 뿐이다.
이러한 직접 경험의 세계에서 뿐만 아니라, 한 차원 더 높은 레벨에서의 무집착이 있는데 그것을 궁극적 무집착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연계의 속성(3질)로 부터 초월하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자연의 작동원리, 선과악의 이원성 조차도 뛰어넘어야 함을 말한다. 그리고 절대선인 최고의 순수정신을 바라보아야 한다.
일상으로 돌아와보자. 지식이 있다고 바로 실천과 연결이 안되는 걸 알 수 있다. 집착을 끊어야 한다는건 지식으로 알고 있으나 그것이 실천으로 나타나기 까지는 수련이 필요하다. 한 번 한다고 되지 않는다. 장기간 지속적인 수련으로 나의 마음에 묻어있는 업을 지워 청정하게 해야한다. 사람의 생존본능은 강하기 때문에 그것을 그리 쉽게 떼어내지는 못한다. 생존본능을 넘어서는 마음수련을 해야 욕망에서 나를 분리해낼 수가 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가족애라는 자연계의 원리 조차도 생에의 집착의 한 부분이라는 초연함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그것이 진정한 무집착이라 말한다.
여기까지는 대략알겠다. 그런데 나는 깨달았다고 생각했는데 난관에 부딪혔을 때 실천이 안된다면 나는 깨달은게 아니었던가? 그냥 아무 지혜가 없이도, 눈 딱 감고 실천하는 그 사람이 깨달은건가? 그 문제를 다음 구절에서 힌트를 제공하고 있다. (다음편에서 계속)
▶ Sutra I.12
अभ्यासवैराग्याभ्यां ति रोधः ॥१२ ॥
abhyāsa vairāgyābhyām tannirōdhaḥ
The cessation of the Vrittis can be brought about by persistent inner effort (abhyasa) and non-attachment (vairagya).
▶ Sutra I.13
ततर् स्थतौ यत्नोऽभ्यासः ॥१३ ॥
tatra sthitau yatno-‘bhyāsaḥ
Steadfast and continuous practice(abhyasa) is needed to still the mind of vrittis.
▶ Sutra I.14
स तु दीघ र्कालनैरन्तय र्सत्कारास ेिवतो ढभूिमः ॥१४ ॥
sa tu dīrghakāla nairantarya satkāra-āsevito drḍhabhūmiḥ
Long, uninterrupted, alert practice is the way to cease the vritt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