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감독 Mar 24. 2019

내게 결혼을 재촉하는 이혼을 앞둔 언니에게  

나에게 결혼이란 언젠 가는 할 일 즈음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요 근래 주변에서 청첩장을 받을 일이 많아졌고, 특히 나와 동갑인 친척도 결혼 소식을 알려왔다. 그럼에도 나는 별 생각이 없다. 별 생각이 없다 하여 내가 결혼을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나는 나의 결혼식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이 깊다. 신랑에게 직접 노래를 불러주고 싶기도 하고 또 남편 몰래 만든 영상을 식장에서 상영하여 남편의 눈물을 보고 싶기도 하고.


이렇게 별 다른 생각 없이 지내던 내가 친척 언니에게 강펀치를 맞는 날이 있었으니...  (결혼 시기에 다다른 분들은 분노감을 조심하세요)





언니가 왜 거기서 나와?



친척 언니는 결혼 중 겪는 어려움을 나에게 졸 곧 털어놨었다. 나는 형부를 꽤나 좋아했고 친하게 지냈었지만 언니의 고민들에 대하여 진지하게 수긍해줬고 언니의 편에서 마음을 함께 나눴었다. 그러다 보면 결혼은 이런 것일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순간도 있었다. 언니는 이혼을 앞두고 있지만 그건 언니의 실패가 아니라고 믿었다. 난 그런 친척 동생이었다.


내게는 같은 해에 태어나 쌍둥이처럼 자라며 매일같이 비교대상이 되었던 친척이 있다.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그 친척과 참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다. 함께 어린이집을 다녔고, 식구들이 하던 야외 수영장에서 매일 같이 뛰어놀며 그렇게 컸다. 중학교도 함께 갈 정도로 우리는 인생의 단짝이었다. 하지만 크면 클수록 식구들의 비교 습관은 심해졌다. 누가 몇 점을 받았고, 누가 반에서 몇 등을 하고, 반장을 한다는 둥. 누구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가고, 누구는 예술고등학교에 갔으며 대학교는 누가 전문대, 누가 4년제를 갔다는 등 받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의 비교를 전부 받고 컸다. 관심도 많고 말도 많은 식구들 안에서 우리는 더욱 돈독해졌다.  


생각해보면 나는 늘 욕심이 많아 뭐든 열심히 했고, 어릴 적 꿈에 대한 목표가 뚜렷하여 그 친척보다 늘 앞서 나갔다. 그 친척이 나를 질투할 법도 했는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난 그 점이 너무 고마웠다. 나는 무언가를 이뤄야 하는 환경에 던져졌다는 것을 내 친척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쌍둥이 같던 친척이 결혼을 발표했다. 식구들이 모두 초대되어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저 11월 22일에 결혼해요! 식장 잡았어요^^"


"우와 축하해!!!"


"진짜? 축하한다 결혼을 하는구나"


"오 언니 축하해"


등 많은 축하의 메시지들이 남발했다. 나 역시 기뻤다. 나와 함께 자란 그 친구가 먼저 그 길을 가는 것 같아 신기했고, 찡한 마음이 들어 축하의 마음이 샘솟았다.


나: 꺄!!!!!!!!!! 축하해 정말 가는구나


라고 말을 하자마자 바로 친척 언니의 소환이 있었으니,  


친척 언니: 00야 네가 지금 꺄 할 때야? 너도 이제 가야지 어쩌려고 그래


(읭..?) (어쩌려고..? 뭘 어쩌려고?.....)





문제의 카톡 방
아래 이어지는 말은 생략한다...



그 카톡을 보자마자 카톡방에서는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축하의 마음으로 들떴던 나의 마음에도 정적이 흘렀고... 이렇게 말 한마디로 사람 마음을 단시간에 상해버리게 할 수 있는 게 마치 언니의 능력 같았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기분이 나빠 핸드폰을 들고 멍하니 서있었다.





나 이거 지금 강펀치 맞은 거 맞지?



곰곰이 생각해보니 하면 할수록 이 기분은 심각히 내려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달만 해도 아는 언니, 오빠에게 청첩장을 받아 격주의 주말을 결혼식 하객으로 보내게 생겼으니 더 마음이 증폭이 됐을 터.


도대체 누가 결혼의 적정 시기를 만들어 버린 걸까. 아니 아니 정말 나는 결혼 시기 때문에 고민을 할 것이란 생각을 애초에 하지 못했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 지나지도 않았고, 내가 나가 있는 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경쟁과 커리어 쌓기에 열중 중이지, 결혼을 하기 위해 고민하고 손을 쓰는 일은 벌어지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내가 결혼을 고민할 시기는 전혀 아니라고 생각했다.  


운명의 짝을 조금 일찍 만나고, 천천히 만나고의 차이일 뿐이지 결혼을 일찍 한다고 성공했고, 결혼을 적정 시기에 하지 않으면 딱한 인생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을 볼 때면 정말이지 갑갑스럽다. (마음속으로 무식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사실 백번즘 한다.)






언제는 결혼 늦게 하라며?



몇십 명의 식구들이 초대되어 있는 단체 톡방에서 나에게 갑분 결혼을 요구하던 친척 언니는 지난달 통화에서 분명 결혼은 늦게 하라며, 해서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이유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던 언니였다. 그의 말에도 나는 "언니! 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 그땐 할 거야."라고 말하던 나였다.


그런 내가 왜 친척의 결혼 소식에 축하할 때가 아니라는 말을 듣고 있어야 할까, 그것도 이혼을 앞두고 결혼에 대한 부정의 언어들만 나열하던 언니에게.


말과 글에는 사람의 됨됨이가 서려있고 그래서 말은 품성이라고, 내가 좋아하는 이기주 작가가 말했다. 말로 손해 보는 날이 많아지면 그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다시 한번 직시해볼 필요가 있다.


친척 언니가 언젠가 내게 그런 고민을 털어놨었다. 형부와 싸움이 되는 시작에는 자기의 툭툭 뱉어지는 말에도 원인이 있다고. 마음은 그게 아닌데 말을 툭툭 뱉어내게 된다며 고쳐지지 않는 버릇이라 답답하다고.


그때 나는 언니에게 이런 말을 했었다.


"언니 근데 그거 꼭 고쳐야 되는 부분이더라. 나는 그런 일로 내가 스스로 피본적이 많아서 많이 고쳤어. 요즘은 최대한 말을 예쁘게 하려고 노력해. 원래 오히려 더 친하고 좋고 편하면 퉁명스럽게 말이 나가잖아. 내 마음은 그게 아닌데 상대방은 그거 절대 모르더라.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나의 말 때문에 상처 받는다면 결국 그게 내 손해로, 상처로 오는 경우가 많아서 지금은 많이 고쳤어."


실제 나는 좋으면 더 틱틱거리던 걸로 많은 손해를 본적이 많았다. 어린 마음에는 틱틱거리는 속에서도 왜 나의 따뜻함을 모르지? 말만 예쁘게 하면 다 진심인 줄 아는 멍청한 사람들이 너무 우습다 싶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고 말만 예쁜 사람인지 아닌지는 저절로 알아보는 내공이 생겼고, 그다음엔 결국 틱틱거리면서 잘해주는 사람보다 어떤 경우에서도 말을 예쁘게 뱉어내는 사람이 더욱 가치 있게 느껴졌다.


어느 때건 나의 말이 뱉어질 때. 상대방을 생각하고, 배려하고 그런 것에 우리는 따스한 마음이 깃드는 거지,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은 낯간지러워서 나 편한 대로 틱틱 뱉어버리는 말들은 결국 상대방을 진정 위한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친척의 결혼 소식에 축하의 말을 건네던 내게 배려 없이 뱉어진 언니의 말에 나는 상처 아닌 상처를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예전만큼 언니에게 나를 나누지 않을 것이고, 이 상처는 내가 받았지만 결국 언니에게 돌아갈 것을 나는 잘 안다. 


나는 품성 없이 말을 뱉어내는 사람이 정말 안타깝다. (내가 싫어 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보면 주로 말을 품성없이 내뱉던 사람들이었다. 예를 들면 전 직장의 부장님이나 차장님)

말을 뱉음으로써 시원함을 찾지 말고, 뱉는 나의 말로 하여금 상대방은 어떤 마음을 전달받을지를 두 번 세 번 생각하다 보면 결코 내 입에서 큰 의미 없는 말은 나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글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말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캐묻는 행위를 반복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의 말과 나의 글이  결코 그 어떤 사람도 아프고 불편하게 하지 않을 것. 그것이 당분간의 나의 투철한 직업적 윤리가 될 것이다.





"그러니까 언니. 사람의 진심의 말에 틱틱 말을 뱉어내지 말아 줘"



작가의 이전글 '보헤미안 랩소디'로 본 스타트업의 '죽음의 계곡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