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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감독 Nov 22. 2018

증오하던 부장님,  회식자리에서 왜 우셨나요.

나는 한 언론사에서 '한기자'로 활동했던 적이 있다. 


꿈에 그리던 기자의 네임을 얻고, 첫 취재를 나가던 날. 한참 조류독감 AI가 터져 달걀 대란이 난리 치던 시기였다. 카메라를 챙겨 무작정 동네 달걀 유통 업체를 찾아가 사장님 인터뷰를 따고 있었다.


사장님의 진지한 말을 받아 적고, 달걀이 없는 빈 통을 촬영하여 곧장 AI 관련 기사를 송고할 때 즈음. 


'아 내가 정말 기자가 되었구나'싶어 온몸이 짜릿했다. 




그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유일하게 그 언론사에서 가장 좋았던 기억이 아니었을까. 





내가 부장님을 싫어했던 이유 


나는 그 언론사에서 일 년 반 동안 일을 하며, 상사들이 하나 같이 영화 속 주인공 같아 먼 훗날 나의 작품 자원으로 느껴졌었다. 그중 부장님은 50대 초반 우리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로 가장 흥미롭고도 나에게 불행의 캐릭터였다.


매일 회식을 원하던,

매일 집에 들어가기 싫어하던,

항상 까는 기사(부정적인 면 강조한 기사)만 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누구의 불행을 남 몰라라 하는,

결국엔 이기적인,

공무원이 매우 싫은,

뒤에서만 강한 척하는...



이것이 그 당시 내가 떠올리던 부장님의 모습들이었다.

어른을 그것도 심지어 상사를 싫어하는 건 나에게도 고통스러운 마음이었다. 직장생활을 해본 사람은 안다. 

상사와의 관계가 그 직장생활의 척도를 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것을. 그러한 중요한 척도가 내 마음에 안 들다거나, 나를 괴롭게 만드는 원인이거나, 실망감만 든다거나. 하면 아무리 좋은 일이여도 그 조직에서 온전히 일에 집중하기 힘들어진다. 


어느 금요일. 곧 주말임에도 일의 여파로 한껏 녹져 이른 시간 집에 들어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전화벨이 요란히 울려 보니 '대표님' 시간을 보니 밤 12시가 지난 무렵이었다. 물론 자주 있었던 일이라 그다지 놀랍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음날이 주말인데 도대체 무슨 일인 걸까 궁금증 반, 짜증 반, 슬픔 반. 


받을까 말까 여러 마음이 교차하여 시간이 지나니 성격 급한 대표님은 전화를 끊어버리셨고 나는 멍하니 전화기를 잡고 있었다. 그때 다시 '부장님' 전화벨이 울렸다. 받을까 말까. 같이 계시는구나. 나는 망했구나. (슬픔 예감은 늘 틀린 적이 없지...)


한 주가 끝이난 이 밤에도 나는 자유로울 수 없구나, 분노와 슬픔이 곧 나를 상실감에 빠져들게 했다. 한 세 번쯤 전화벨이 울리자 나는 울먹이며 화를 삭이다 전화를 이내 받아버렸다.


"네. 부장님. 전화하셨나요?"


"어 한기자. 뭐하느라 전화를 왜 안 받아? 대표님도 하셨는데"


"가족들과 외식하고 돌아와서 잘 준비하고 있었는데..."


"아 벌써 자나?"


벌. 써. 자. 나? 왜 나는 밤 12시에 부장님과 대표님의 술 취한 목소리와, 그 뒤에 들리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들으며 감정노동을 해야 할까 점점 속이 끓었다. 


"아... 무슨 일이세요?"


"아 다름이 아니라 내일 취재를 가야 해. 여기 대표님이랑 지금 술 한잔 하면서 누굴 만났는데, 내일 축구 경기를 한대. 거기를 좀 다녀와야겠어."


"아... 내일은 제가 중요한 일정이 있었는데요. 혹시 몇 시쯤인가요..?"


"아침이야 아침. 아침이니 갔다 가면 되겠네?"


정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회식자리건, 어느 자리건 대표님은 줄곧 '취재해줄게!'라는 말을 유행어처럼 뱉고 다니시던 분이라, 이번에도 갑자기 취재 요청이 들어온 거라면 딱 봐도 상황이 머리에 그려졌다. 도대체 나는 왜 사회부 기자로 들어가 동네 축구 경기 취재를 가야 하는가. (결국 주말 아침 울먹이며 현장으로 달려갔다. 대표님의 친한 도의원이 조기축구였나... 어느 축구 위원장으로 위임이 되는, 국민들이 안! 궁금한 그러한 기사거리였다.)


그렇게 매일같이 억울함을 토해내야 했던 일들이 기다렸다. 나의 속앓이는 일 년이 넘게 지속이 되었고 일 년이 지난 시점부터는 언제든 퇴사할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한결 마음이 편해졌지만 그래도 고통은 고통이었다.

 



어느 회식 날, 부장님의 눈물  


늘 그렇듯 대표님의 취향으로 어느 중국집의 룸에서 연말 회식이 시작되었다. 일 년이 지난 나는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회사를 다니다 보니 조금의 여유가 생겨 회식 분위기를 잘 버티고 있었다. 이미 많은 기자들이 퇴사를 하여 평사원인 기자가 몇 없었기에 대표님은 이제야 나를 많이 챙겨주었다.


대표님: "어~ 한기자. 많이 좀 먹어! 요즘 일이 어떤가?"


한기자: "네 많이 먹고 있습니다. 대표님도 많이 드세요~"


부장님: "아니 한기자는 요즘 내가 알아보라는 불법 간판 많이 찾아봤나?" 


(아니. 밥 잘 먹다가 부장님이 왜 거기서 나와...)


항상 부정적인 것 만 찾으라는 지시를 내려두고 본인은 일명 '광고비'를 따기 위해 고군분투하셨다. 예전에 어느 글을 읽었는데 퇴사하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일은 내가 하고 성과는 다른 사람이 가져가고' '들러리 같은 기분이 견디기 힘들다'라는 말에 격렬히 공감했던 적이 있다. 일명 까는 자료를 내가 준비해주면 그걸 이용해 본인의 성과에 이용하는. (일은 내가 성과는 부장님이)


그 후 자리를 옮겨 흥에 취한 대표님은 노래방을 제안하셨고 막내였던 나는 근처 노래방을 검색해 예약 전화를 성급히 했다. 처음에는 노래방에서 신나는 분위기를 지속시키려 나는 또 노래를 했고, 상사분들의 노래에도 크게 호응했다. 나름 신나게 놀고 있는데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사건의 시작이었다. 모든 면에서 '깔 것'을 찾는 게 습관이자 일상인 부장님이 노래는 하지 않고 나가서 노래방의 불법 행위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노래방에서 맥주를 판매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알면서도 눈감는 일이 많이 있지만 부장님에게 그런 건 통하지 않는다. 노래방 여직원이 대처를 미흡하게 하자 말싸움으로 번졌다. 


여직원 "맥주 아니라고요. 신경 끄시라고요"


부장님 "자네 뭐라고? 신경을 꺼라? 여기 안 되겠구만 여기 맥주 파는 걸 내가 봤는데?"


여직원 "사장님 부르기 전에 나가요"


그렇게 언성이 높아지자 대표님 국장님 모두가 나와 부장님을 말렸고, 흥분한 부장님은 관할 구청 공무원과, 경찰서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상황은 심각했는데 나는 너무 흥미로웠다. 과연 구청 직원과 경찰은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이 노래방 사장은 뭐라고 할지. 부장님은 이 사건의 전말을 어떻게 끝맺음할 수 있을지. 


잠시 후 구청 직원으로 보이는 남성 세명이 들어와 이야기를 듣고 다른 방에 있던 맥주잔들을 검사하며, 노래방 측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장님, 차장, 선배 기자 모두 그 맥주를 먹어보고 분명 맥주라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구청 직원들은 줄 곧 그것이 노래방 측에서 우긴 '무알콜 맥주'라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


부장님은 억울함을 토하며 맥주를 먹어보길 권유했지만 구청 직원은 근무시간이라 맥주를 먹어보지는 못하겠지만 현재 노래방에서 무알콜 맥주를 판매하는 것으로 확인이 되었다 라는 말만 뱉어냈다. 


어찌 저찌 노래방 사장이 나와 여직원의 무례에 대해 사과를 하고 사건은 종결되는 듯했다. 


모두가 황당하게 지쳐 노래방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부장님의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입사하고 최고 놀란 순간.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던 부장님이 지금 우는 게 맞는 걸까? 몇 번을 다시 보았다. 


부장님 : (꺽.. 꺽....) 다 봤죠? 지금 맥주를 눈 앞에 두고 이렇게 무알콜이라고 하는 거. 공무원이 저러는데 이 세상이 잘 돌아가겠냐고요! 


국장님: 아니 김 부장이 많이 속상한가 봐 


부장님: 국장님, 저 정말 슬픕니다. 제가 왜 이 나이에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기자를 하게 되었는지 모르시죠. 제가 지난 직장에서 연봉이.. 지금의 10배입니다. 10배. 저는 다른 거 다 필요 없이 이 세상만 진실되게 만들고 싶었습니다. 이 부조리! 네? 공무원이 어떻게... 저 정말 속상합니다. 사회가 이래서 되겠습니까? 그냥 깨끗하게 인정만 해주면 문제 될 게 없는데. 


그때 흐느끼며 기자가 된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부장님의 모습을 보고 약간은 웃겼지만, 처음으로 일 년 넘게 봐온 부장님이 사람 같아 보였다. 그 이후 나는 부장님을 조금은 다르게 대할 여유가 생겼다. 


울고 불고 웃고 다시금 국장님은 노래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국장님과는 처음으로 함께 술을 마셨다. 그간 잠깐만 자리하시고는 늘 자리를 비켜주셨는데 이날은 왜인지 끝까지 자리를 지키셨다. 춤도 추시고 어리광도 부리시고 그저 밖에서 보면 흔한 나이 들어가는 한 아버지의 모습이구나 싶었다. 


이 날을 이후로 서로를 보는 시간에 비례해 그 사람과의 이해도를 측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온갖 역경을 거쳐온 직장에서 곧 퇴사의 결정을 앞두고는 비로소 그들의 각자의 본 얼굴이 보였다. 



"증오하던 부장님, 회식자리에서 왜 그리 슬피 우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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