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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마우스 Nov 25. 2018

간호학생은 을이다?

실습의 부조리함


간호학과는 국가고시에 응시할 자격을 얻기 위한 조건 중 임상실습을 기준에 충족하는 기관에 한해 1000시간 이상 이수해야한다. 의료환경을 직접 경험하고 간호사의 직무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 실제 취업하였을 때 잘 적응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실습의 목적일 것이다.


나 역시 4년간 총 1200여 시간의 실습을 했고 그 대장정의 실습을 5일 뒤면 마무리하게 될 시기가 왔다.

이 글을 쓰기에 앞서 정말 이 글을 써도 괜찮을까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지만, 쓰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는 마음이 많이 생겨서 용기 내서 쓰게 되었다. 


나는 이번 학기  정신건강증진센터로 실습을 나갔다. 그 곳에는 약물복용으로 증상 조절이 되어 일상생활을 어느 정도 할 수 있는 수많은 환자들을 방문간호하거나 센터로 내소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이다. 그런데 이번 실습 중 내가 학생이라는 이유로, 실습생이라는 이유로 부조리함을 겪었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있어 실습 후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이것이 "간호학생으로 제기할 수 없는 문제다. 학생들이 싸가지 없는 태도로 실습을 임했다."라는 이유로 실습지에서 당장 우리학교 실습을 전면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일까지로 이어져 사실 한달이 넘는 시간 동안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은채 큰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학기가 시작됬는데 실습을 중단하겠다는 건 남은 실습생들이 실습 시간을 채우지 못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은 곧 f학점과 실습시간 부족으로 유급 뿐만 아니라 국가고시 응시에도 문제가 갈 만한 심각한 내용이다.


내가 부조리하다고 생각한 내용은 다음과 같은 일화이다.

1. 가정방문을 하는데 환자에 대한 아무런 인계사항을 받지 못했다. 첫 날 병명과 나이 정도만 들었고, 같이 가주신 선생님께서는 길 안내만 해주시고 방문한지 5분만에 환자의 집을 떠나셨다. 아무것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나와 내 조원들은 첫 날 부터 환자와 함께 했고 남은 방문 간호 시 선생님의 동행없이 학생들만 방문하는 일이 반복되었다. 간호학생으로서 배우기 위해서 가는 것인데, 환자에게 어떤 간호를 해 주는 것이 좋은지, 어떠한 점이 필요한지 교육받지 못한 채 선생님의 업무를 위임받아 매일 조원들과 어떤 프로그램을 할지 상의하고, 그 전 실습에서 해당 환자를 맡은 경험이 있는 동기들의 이야기를 통해 정보를 얻어 실습을 이어갔다.

어떠한 문제 상황이 방문 간호 시 발생할 수 있는데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실습은 이어져갔다.


심지어 조원 중 한명이 몸이 좋지 않아 해당 방문간호를 가지 못할 상황이 되어 해당 부서 팀장님께 말씀드렸고, 이 사실을 센터 측에서 환자에게 전화로 연락드리기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그 다음 번 방문 시 환자는 왜 오지 않았냐, 내가 얼마나 오래 기다린줄 아냐며 불만을 호소하셨고 전화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이 사실을 그 날 실습 후 알려드리자 "전화 한번 했는데 안 받았다는데? 그럴거면 자기가 전화를 잘 받아야지."

라는 말이 돌아왔다. 

여러분 정말 환자를 위하는 마음을 알려주는 곳일까요?


2. 해당 센터는 공공기관이었다. 그래서 연중행사로 큰 강좌를 열었는데 학생들에게 행사에 필요한 팜플렛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셨다. 어떤 내용의 행사인지 자세히 알 수 없었고 주어지는 단 한장의 전단지로 말씀하신 팜플렛을 만들어 드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행사 당일 팜플렛을 들고 2시간 정도 지하철 역 앞에서 서 있으라고 했고, 추위에 떨며 지하철 역 앞에 서 있은 후에는 행사에 참여하신 분들을 위한 기념품을 포장하고 박스를 정리했고, 강의 하는 공간 내에서는 마이크를 옮기고 단상을 정리하는 등 단순한 인력으로 소모되었다.

지하철역 앞에서 팜플렛을 들고 서있고 마이크를 나르기 위해 그 비싼 등록금을 내며 아침 일찍 일어나 실습을 하는 걸까? 이 센터에서 간호사의 업무가 무엇인지, 정말 교육적으로 무엇을 배웠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학생에게 자원봉사자 조끼를 입히고 당연한 듯이 추운 겨울 거리에 서있게 하는 실습..

여러분은 옳은 실습 내용이라고 생각이 드시나요?


3. 조원들끼리 방문간호나 내소 활동 등 각자 맡은 프로그램의 활동이 끝나갈 무렵 한 선생님께서 몇 백장이 되는 설문지를 들고 들어왔다. 그리고는 이 설문지 인쇄가 잘못 되었으니 라벨지로 하나 하나 다 수정하고, 스테이플러로 정리 후 갯수에 맞추어 봉투에 담으라고 하셨다. 금요일 오후 5시에 주셨고 월요일 오후까지 다 해달라는 말도 함께 하셨다.

무슨 사업에 필요한 설문지인지 알지 못했고 월요일 오전은 학교에서 컨퍼런스가 있었기에 양에 비해 시간은 턱 없이 부족했다. 그래도 각자 활동 사이 틈이 날때마다 작업을 해서 시간을 맞춰 제출했다.

그 다음날, 설문지를 부탁하던 선생님은 화를 내며 설문지를 집어 던지며 "너네는 사회생활 안 할꺼니? 이따위로 하면 너네를 누가 좋아하겠어." 라고 소리치며 몇 백장의 설문지 중 5~6개의 설문지에 라벨지가 비뚤어지게 붙여진 것을 다시 해오라고 하셨다. "이거 센터 이름 걸고나가는 3000만원 짜리 아동사업이다. 너네가 이렇게 할 문제가 아니다." 라는 말을 덧붙였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나간 실습은 정신간호학 실습이다. 그런데 아동사업이라니..그리고 팀장장님은 해당 선생님이 우리에게 이런 업무를 시킨 사실 조차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냥 간호학생이 놀고 먹는 것 같고, 만만하다는 생각에 모든 작고 귀찮은 일은 저희가 다 해드려야 하는 건가요?


4.이 일 이외에도 인사를 하면 절대 받아주지 않거나, 학생들을 유리창 넘어로 늘 감시하는 등 수 많은 에피소드를 경험하며 눈치보이고 숨막히는 실습이 2주간 이어졌다. 위에 내용 뿐만 아니라 학생들에게 청소를 시키고 해당 장소를 회의실로 이용하는 등 실습 내용 중 단순인력으로 소모되는 것이 너무 심하고 제대로 된 교육적인 실습을 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센터 내에서 부탁하는 모든 일을 하고 실습을 마친 후 교수님께 말씀드렸다. 그러나 돌아오는 말은 "너네가 간호학과 1,2학년도 아니고 4년했으면 알만큼 알지 않아? 폐쇄적이고 보수적이여서 절대 바뀌지 않아. 시키면 시키는걸 하고 버티는게 실습이지. 언제나 을의 마음을 가져야해."

충격적인 대답이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가 간호학생인데, 이런 환경 속에서 그 비싼 등록금을 내고 생활한다면 어떨 것 같나요?


실습지에서 우리의 태도 문제를 일삼아 실습을 받지 않겠다는 말을 할때의 태도 문제 내용은 이런 것이다.

"실습지 내에 튀는 노란색 맨투맨과 너무 딱 붙는 청바지, 끝에 수술이 있는 청바지를 입고 왔다.

갈색 서클렌즈를 착용하고 왔다. 립스틱 색이 너무 진하다. 짙은 갈색으로 머리를 염색했다. 대화 시 무표정한 모습을 많이 보인다. 튀는 안경을 착용했다.부탁을 하면 긍정적이고 열정적인 모습으로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하지 않는다." 등이다.

실습하면 찢어진 청바지가 아니어도 요즘 흔히 나오는 일자청바지나 스키니 진도 입으면 안 되고, 밝은 갈색 머리를 가져서도 안 되고 노란색 맨투맨도 입으면 안 되나요? 흰 가운을 입고 단정하게 머리를 묶는데 치마도 입은적 없고 힐도 신지 않았는데 옷의 색깔까지도 자유가 없는 건가요?



실습생이면 어떠한 문제 제기도 하지 않고, 문제가 발생해도 참고 버텨야 하는게 실습 내용인 걸까요?

사회에서는 갑질 논란에 떠들썩하고, 간호사의 태움문화로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데 미래의 간호사가 될 간호학생은 병원에서도 센터 내에서도 늘 참아야하고 을이어야하는 걸까요?

그리고 이게 제가 선택한 직업의 미래인 것일까요?


간호학생은 누가 보호해주는 것일까요? 학교도 실습지도 기댈 곳 하나 없이 실습을 이어가야 하는 것일까요

이번 실습에서 배운 내용으로는 간호사가 되었을 때 어떤 내용이 의미가 있을까요?

홍보 팜플렛 만들기 능력 향상?, 늘 을인 것 처럼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는 건가요?


간호사는 환자의 삶에서 건강 문제가 발생했을 시, 시작과 끝까지 가장 많이 곁을 지키는 사람이고, 간호는 과학이자 예술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제가 실습한 내용이 예술이고, 과학이며 환자를 위하는 내용이었을까요?


후배들에게 이러한 실습환경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말씀드린 것도 있었는데, 오히려 실습을 받아 주지 않는다고 하는데 너네가 책임지고 죄책감과 반성의 마음을 가져 사건경위서 및 반성문을 제출하라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고 슬프기만합니다.


간호사는 생명을 다루는 직업입니다. 간호학생에게 올바르고 교육적인 내용의 실습과 최상의 환경은 아니여도 기본적인 실습 환경은 갖추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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