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커피 읽는 여자 Oct 11. 2023

강원도 수산시장에서 엄마 생각

중년에게 엄마란

지난 추석 연휴 뒤끝에 남편 여름휴가를 붙여 3일간 강원도 고성 여행을 다녀왔다. 여름휴가철 강원도라면 몹시 분비겠지만, 가을 평일의 고성은 몹시 한가로웠다. 그 한가로움을 즐기러 아껴둔 여름휴가였다. 아이들은 추석 연휴에, 임시공휴일, 개천절까지 쉬고 평일 3일을 체험학습으로 빠지게 되니 여행 시작부터 이미 즐거움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세상 일이 다 그렇듯이 예정된 즐거움은 그저 예정이었을 뿐이었다. 추석에 아이들이 감기로 된통 아팠던 터라 연휴에도 병원을 찾았다. 여행 전 날인 개천절에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컨디션을 보였기에 과연 예정대로 여행을 가도 되는 건지 걱정스러웠다. 아이들은 학교를 빠지고 싶어서인지, 정말 여행을 가고 싶어서인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강원도에 언제 출발하냐고 묻고 또 물었다. 나는 2박 3일 짐을 싸면서도 내심 '여행 갔다가 더 아프면 어쩌지?', '그냥 집에서 쉬는 게 낫나...' 이런저런 걱정들로 심란했다.


다음 날, 아이들은 아픈 게 뻔한데도 아프지 않다며 약봉지를 들고 차에 올랐다. 서울 지나, 하남쯤 "엄마, 해람이 토해!" 큰 애가 소리를 질렀다. 작은 아이는 분수토를 해댔다. 고속도로라 차를 어디 댈 수도 없고, 아이는 온몸을 토로 뒤집어썼다. 물티슈로 아이 얼굴을 우선 닦고, 옷에 묻은 토사물을 대충 닦아낸다. 물티슈로는 어림도 없는 토사물이 옷에 흠씬 배어있었다. 물론, 차 안에 넣어두었던 짐들이며 아우터도 토 범벅이 되었다. 가까스로 졸음쉼터를 찾아 차를 주차하고, 아이를 졸음쉼터 의자에 올렸다. 큰 아이에게 이불을 펴서 가리게 하고는 토사물을 뒤집어쓴 작은 아이의 옷을 벗겨내고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 사이 남편은 작은 아이가 앉았던 자리의 토사물을 치웠다.


여행 출발 1시간 만에 진이 빠져버렸다.


작은 아이에게 물었다. "해람이 많이 아픈데 우리 집에 갈까? 엄마, 아빠는 여행 안 가도 괜찮아. 해람이 건강이 먼저지."

아이는 고개를 흔들며 "다 토해서 이제 괜찮아. 빨리 가자."라고 말하고는 잠이 들었다. 얼굴이 그 짧은 사이에 핼쑥해져 버렸다. 안 그래도 아픈 아인데, 토까지 하는데 이대로 강원도를 가는 것이 옳은지 너무도 걱정이 되었다. 큰아이는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엄마, 어차피 해람이는 집에 가도 아프고, 강원도 가도 아파. 근데 강원도 안 가면 더 아플 거야. 강원도 여행 얼마나 기대했는데, 나도 강원도 안 가면 더 아플 것 같아. 어서 가자."


큰아이 말에, 남편과 나는 결심을 굳히고 강원도로 다시 향했다.


하지만 그 굳은 결심이 후회스럽게도 강원도 고성을 1시간 앞두었을 때쯤, 아이가 또다시 토하기 시작했다. 이젠 빨리 목적지에 도착해 아이를 쉬게 하는 일이 급선무였다. 아이는 첫 번째 토에 이력이 났는지, 두 번째 토는 미리 비닐봉지를 달라고 해서 그 안에다 토를 했다. 계속 봉지를 잡고서는 그 안에 토를 하고 또 했다. 나는 눈물이 나오려 했다. "근데 엄마, 갑자기 똥이 나와버렸어. 토하면서 힘주니까 똥도 나왔어. 어떻게?" 작은 아이가 똥을 쌌다는 이야기에 큰아이는 기겁을 했다. 하! 이게 무슨 일이고? 차를 길가 동네로 틀어 멈췄다. 아이에게 똥 싼 것에 대해 괜찮다고 여러 번 말해주고, 큰 아이에게도 놀리지 말라고 당부를 준 후, 작은 아이의 똥 싼 바지를 새 옷으로 갈아입혔다. 신선한 공기를 쐬게 하고 한참 쉬게 한 뒤, 다시 목적지인 봉수대 해변으로 향했다.


드디어, 목적지인 강원도 고성 봉수대 해변의 오토캠핑장에 도착했다. 예약한 사이트에 텐트를 치려고 보니, '아 이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픈 아이를 불편한 텐트에서 쉬게 할 순 없었다. 눈앞에 카라반이 보였다. 평일이고, 카라반은 비싸니 자리가 있을 듯싶었다. 관리소에 물어보니, 역시나 남은 카라반이 있었다. 캠핑 사이트 예약을, 카라반으로 변경했다. 카라반은 가족 모두 처음이었는데, 모든 시설이 갖춰준터라 집처럼 아늑한 곳이었다. 아이를 카라반 침대에 얼른 눕혀 쉬게 했다. 오는 길, 토하고 힘들었던 터라 한참 잘 줄 알았는데 거짓말처럼 아이는 "이제 괜찮아. 바다 갈래."라고 말했다. 나는 주저주저했지만, 아이는 이제 다 나았다며 바다 보러 가자고 성화였다.


아이는 바다를 보며, 얼굴이 환해졌다. 볕이 좋아서 가을인데도 바닷물은 제법 따뜻했다. 물 좋아하는 아이는 물속에 풍덩 빠졌다. "엄마, 다 나았어."



바다에서 한바탕 놀고, 카라반에 돌아와 불을 피우고, 아이 좋아하는 불멍을 했다. 작은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것 베스트 1이 물놀이고, 베스트 2가 불멍이다. 바다에서 잡아온 조개를 삶았는데 아이가 게눈 감추듯 먹었다. 토한 뒤끝이라 걱정했는데 아이는 배고팠던지 맛있게 먹고, 별 탈이 없었다. 또 토하지 않을까, 아프지 않을까 노심초사였는데 아이의 얼굴에 생기가 도는 걸 보니 언제 아팠냐 싶었다.


밤에는 치킨도 시켜주고, 미리 준비해 간 폭죽으로 불꽃놀이도 했다. 아이가 너무 신나 했다. 9시나 됐을까, 아이는 졸리다고 하더니 곧바로 잠이 들었다. 텐트라면 잠자리를 걱정했을 텐데 카라반이라 침대에서 역시나 준비해 간 침낭을 깔고 편하게 잤다. 다음 날 아침, 나보다 일찍 일어난 녀석이 "엄마, 해 보러 가자. 일어나." 라며 나를 깨웠다.


일찍 일어난 김에 캠핑장에서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대진항 수산시장에 갔다. 수산시장은 작지만 귀여운 곳이었다. 1번부터 7번까지 정도의 생선 가게가 있었는데, 다 똑같아서 어디서 사야 할지는 모르겠더라는... 마지막 가게 이름에 '해녀'가 들어가서 마음이 살짝 동했다. 수산물을 보니 생선 좋아하는 엄마 생각이 났다. 안 그래도 강원도 여행하면서, 엄마도 왔으면 좋았을 텐데 싶었다.


수산 시장 인근에 있는 식당으로 아침식사를 하러 갔다. 메뉴판을 보니, 물곰탕이 눈에 띄어서 물곰탕을 시키는데 1인 이상만 가능하고 1인에 2만 원이라고 했다. 현지인이라면 아침 식사에 4만 원 돈을 쓰지 않겠지만 우린 관광객이니까 아침 식사로 시가가 적힌 물곰탕을 시켜놓고 기다렸다. 식당은 엄마와 딸이 운영하는 듯했다. 식사가 나올 동안, 현지인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로 보이는 아저씨 세 사람이 손님으로 왔다. 처음 혼자 온 아저씨도 순두부찌개를 시키더니, 두 번째 둘이 온 손님들도 순두부찌개를 시켰다. 그렇지, 관광객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현지인이었더라면 나라도 아침은 9천 원짜리 순두부찌개를 시켰을 것 같다.


세 명의 현지인 손님들은 식당 주인으로 보이는 아줌마와 딸에게 추석 연휴 잘 보냈는지 인사를 건넸다. 두 명이 같이 온 테이블의 손님 중 한 명이, 서빙하는 딸에게 핸드폰을 내밀더니 "핸드폰에 이상한 게 자꾸 떠. 이거 봐봐." 딸은 한참을 핸드폰을 들고 이것저것 누르고, 알아봐 주었다. 손님은 말했다. "핸드폰 대리점에 갔더니, 이건 못 고친대." 딸은 계속해보더니 역시나 잘 안 되는지 "저쪽 손님상 놔드리고 다시 봐드릴게요." 하고는 우리 쪽 테이블에 반찬을 내주었다.


아이가 말했다. "우리가 제일 빨리 왔는데 왜 우리는 밥을 안 줘." 아이의 말대로 우리가 제일 빨리 왔지만, 우리는 관광객 모드의 물곰탕을 시킨지라 아직도 음식이 나오질 않았고, 동네 사람들이 시킨 순두부찌개는 진즉에 나와서 먹고 있는 중이었다. 다음에 다시 이곳으로 여행을 오면, 이 식당에 다시 들러 꼭 순두부찌개를 시켜야겠다.


딸은 우리 쪽 테이블에 반찬을 가져다주고는, 다시 2인 테이블에 가서 예의 핸드폰을 봐주었다. "일단은 이 문제 되는 앱을 지웠는데, 그게 또 뜨면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요. 속초로 나가서 고쳐야 될 것 같아요." 딸은 2인 테이블 아저씨의 핸드폰 문제를 일시적으로나마 해결해 주고, 계속 문제가 발생하면 속초에 나가보라며 차후의 설루션까지 주었다. 물곰탕이 나오기 전이었지만, 물곰탕은 이미 맛있을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물곰탕 2인분이 가스레인지 위 냄비에 담겨 우리 자리에 올려졌다. 생선이 어찌나 신선한지 바다냄새가 직격으로 날려 들었다. 물곰 살은 흐물흐물, 부들부들, 속이 어찌나 뜨겁던지 혓바닥을 대이면서도 숟가락이 자꾸 간다. 국물이, 국물이 정말 끝내줬다.



너무 맛있어서 역시나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랑 같이 먹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사장님에게 물었다. "엄마한테 수산시장에서 수산물 좀 사서 택배 보내주고 싶은데, 수산시장 어디로 가서 사면 좋아요?"

"식당 근처가 수산시장이에요."

"네, 방금 수산시장 구경 갔다 왔거든요. 어느 가게로 가면 좋을지 몰라서요."

"뭐 사시게?"

"가리비요."

"그럼, 1번으로 가세요. 이모네 가게예요. 쌍둥이네에서 왔다고 하시고요."


다시 들른 수산시장, 1번으로 가는데, 1번 가게 이름이 '막퍼줄래'다. 이름만 봐서는 나의 취향으로는 안 갔을 이름이다. 나라면 제일 끝가게 이름인 '해녀'로 갔을 터이다. 하지만 쌍둥이네 식당에서 추천한 가게니 믿고 간다. 1번 막퍼줄래 가게로 가서 "쌍둥이네에서 보내서 왔어요."라고 하니 "아... 전화받았어." 하신다. 가리비 1kg 가격을 묻는다. 2만 4천 원이란다. 6~7개 정도 되고. 택배비는 현금으로 5천 원 달라 신다. 가만 보니 사장님 얼굴에 쌍둥이네 식당 사장님의 얼굴이 겹친다.



택배를 신청해 놓고, 엄마에게 전화를 건다. "엄마, 여기 강원돈데 수산 시장 구경 왔어. 수산 시장 보다가 엄마 생각나서 가리비 택배로 부쳤어. 내일 도착한대. 1kg 부쳤고, 1kg에 가리비가 6~7개 정도래. 물 넣고 그냥 삶으면 되고, 입 벌어지면 먹으면 된대." 엄마가 고맙다고, 잘 먹을게. 하는 말에 나는 울컥하는 마음이 된다. 엄마는 전화 뒤끝에 "젊을 때 애들하고 여행 많이 다니니까 보기 좋다."라고 하신다. 또 울컥한다. 나는 실은 엄마와 여행하는 게 더 좋다고, 엄마랑 여행하고 싶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옆에 남편과 아이들이 있어서 차마 그 말은 하지 못했다.


중년이 되니, 엄마 노릇이 10년이 넘어가니 엄마 생각이 더 더 난다. 뭐든 엄마랑 하고 싶고, 맛있는 거 보면 엄마 주고 싶다.


택배 가리비를 받고, 가리비를 삶아서 드셨다며 엄마가 전화하셨다. "가리비가 크고, 살도 부드러워서 맛있더라.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다. 고마워. 우리 딸."

"엄마가 맛있게 먹었다니 기분 좋다. 다음에 또 보내줄게."


다음 강원도 여행은, 엄마도 함께 모시고 가야겠다. 꼭. 그래야지. 중년에게 엄마는 세상의 전부다.

매거진의 이전글 강아지 왔는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