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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Nov 30. 2023

방구석 바리스타의 당근

당근에도 밀당이 필요할까나?

 내가 가진 모든 물건의 총량 중에서 커피 기물은 단연코 1등이다. 커피를 좋아하다 보니, 커피 관련 물건들만 보면 눈이 절로 돌아간다. 실은 '커피'라는 글자만 봐도 이미 눈이 돌아가 있지만. 그렇게 쌓인 커피 기물들이 부엌과 거실, 서재까지 점령했다. 카페를 운영하기도 했고, 커피 회사를 다니기도 했고, 커피 전문가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으니... 커피 관련 물건들도 커피 경력만큼이나 차곡차곡 쌓였다.


 하! 정말이지 몹시 많다. 안 그래도 게으른 사람이지만, 돈 버느라 게으름에 대한 감각조차 잊고 지낼 때는 이렇게나 많은 커피 관련 물건들이 쌓여있는 줄 몰랐다. 하지만, *7월부터 잘린 꿀알바로 인해 생긴 100만 원의 공백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게으름이라는 감각을 소환했다.


 '이렇게나 비싼 물건을 왜 때문에 산 거지?'

 '이거 별로 필요도 없는데 왜 때문에 산 거지?"

 '이건 사놓고 왜 안 쓰는 건데?'

 '이거 내가 언제 샀지?'

 '이게 여깄었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그때는 그렇게나 좋아 보여서 샀던 물건이, 백만 원 알바 잘린 지금의 나에겐 '아이고~'한숨이 먼저 나오게 한다. 그때는, 그때는...


 커피 기물들을 리스트로 쫘~악 한번 정리해 본다. 이건 뭐, 카페 차릴 때 살 기물들 정리했던 것이 생각날 정도로 많다. 홈카페라는 말이, 우리 집은 정녕 팩트였던 것이다. 당장, 집에 있는 물건 그대로 카페를 차려도 뭐 하나 부족한 점이 없다. 그러고 보니, 집에 온 손님들이 하나 같이 하던 이야기가 있다.


 "이게 집에 왜 있어? 카페인 줄."


 남편도 하는 이야기 있었다.


 "카페를 가."


 물론 내가 카페를 안 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카페 가는 걸 몹시 좋아한다. 특히나 맛있는 신상 커피집이 생겼다고 하면 리스트에 적어놓고 꼭 가고야 만다. 집을 홈카페로 꾸미고 싶어서 카페가 된 게 아니다. 그저, 커피를 좋아하다 보니 절로 홈이 카페가 된 경우랄까.


 그랬던 내가 카페인 때문에 각성된 게 아니라, '돈' 때문에 각성이 됐다. 그 넘의 100만 원 꿀알바가 '커피 라이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돈'을 벌 수 없다면, '돈'이 되는 걸 찾아야 했다. 내가 가진 돈 되는 것이 바로 '커피 기물'이었으니...


 당근에 팔만한 커피 기물들을 정리해 본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갖고는 싶지만 비싸서 사지 못했던 물건, 중고로 저렴하게 사고 싶은 물건이란 기준을 세웠다. 1순위로 '에스프레소 머신'을 골랐다. 물건 상태를 꼼꼼히 체크하고, 중고 거래 시세도 알아본다. 내가 살 때나, 지금이나 이 물건은 인기가 많았다. 가격도 나쁘지 않았다. 사진을 찍어 당근에 올린다. 인기 좋고, 상태도 좋은 물건이라 바로 2건의 채팅 알람이 온다. 전압과 A/S에 대해 묻는 채팅이다.


 당근 거래를 하면서, '밀당'을 하는 이웃을 종종 만난다. '떠보기', '간 보기'라고도 부르는 것 같은데 이런 이웃들을 만나면 참 맥이 빠진다. 그런 이웃들에게 나도 배운 게 '밀당'이긴 하다. 쿨한 판매자가 되고 싶고, 쿨한 구매자를 원하지만 실상 그런 거래는 많지 않더라...


 마음이 상해서 남편에게 일렀더니,


 "팔지 마. 그냥 써. 그 돈 내가 줄게."


 하나도 위로가 안 된다.


 밀당하는 이웃들은 결국 구매자도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상처를 입고 며칠이 지났을 때, '안녕하세요!! 구매 가능할까요?'라는 채팅이 떴다. 나도 인사를 나누고, 앞서 이웃들에겐 배운 밀당의 기술을 펼친다.


 

당근 구매자와, 나름의 밀당 대화


 나름, 밀당 기술을 펼쳤는데, 구매자는 계속 구매 의사를 밝힌다.


밀당은 무슨, 원두 있냐고 왜 묻는 건데?


 이 분은 나의 밀당에 아무런 대미지가 없으시다. 그저 사고 싶으신 분이다. 나는 당장 꼬리를 내리고, 원두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고 만다. 왜 때문에... 구매자의 아내가 커피를 배우는 분이란다. 커피를 배운다니, 내 마음이 설레는 건 또 왜 때문인데...


 거래 날짜를 잡고, 아내분이 어떤 커피를 좋아하실까 고민하다 괜찮겠다 싶은 생두를 당장 꺼내 로스터에 볶는다. 구매자와 에스프레소 머신 거래를 하며, 갓 볶은 원두도 함께 드렸다. 거래 후기에, 거래자의 아내 분이 글을 남겨주셨다.



거래후기, 구매자 아내분이 남긴 글


 당근 밀당은 잘 모르겠지만, 커피 좋아하는 이웃들의 진심은 안다. 돈 때문에 커피기물 팔려고 시작한 당근인데, 커피가 더 좋아지는 건 왜지?



 

*7월부터 잘린 꿀알바가 궁금하신 분이 혹시 계시면, 아래 글을 봐주시겠어요?

<100만 원 덜 벌고 100만 원 덜 썼더니>

https://brunch.co.kr/@waveshadow/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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