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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봄 Dec 26. 2022

내 꿈은 어디로 사라졌지?

명문대와 대기업을 다니다 돌연 술집 차린다고 뛰쳐나온 여자 사람 이야기

비록 그토록 원했던 신방과는 아니지만 나에게 주어진 환경 안에서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교내 방송국 활동이었다. 교내 방송국에서 신입생을 모집한다는 포스터를 보고 PD로 지원을 했고, 합격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점심시간에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는 일을 했다. 학부 공부하기도 빠듯한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매일 프로그램 대본을 작성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부랴부랴 방송국으로 갔고 아나운서, 엔지니어와 합을 맞춰 방송을 진행했다. 수업이 4교시까지 꽉 찬 날에는 밥도 굶으면서 방송을 진행했다. 내 큐 사인 하나로 모든 것이 돌아가는데 배고픔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설레고 재밌었다.


연말이면 영화제를 진행했다. 1년 동안 직접 작성한 시나리오로 연기, 연출, 편집을 하면서 한 편의 영화를 만들고 소개한다. 관객은 많이 없었지만 내가 직접 만든 영화가 대강당에서 상영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 벅차고 뭉클했다.


그래 이거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게 바로 이거였다.


나는 언론고시를 결심했고, 다음날 지도교수님과 면담을 하며  방송국 PD를 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사실 처음부터 내 전공이 컴퓨터공학은 아니었다. 내가 입학했을 때는 학부명이 인터넷미디어공학부였다. 세부 전공으로 멀티미디어학과가 있었고 이 전공을 졸업하면 방송국 엔지니어가 될 수 있는 커리큘럼이 있었다. 그래서 이 학교를 선택했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컴퓨터공학부로 통합된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지도 교수님과 면담이 끝났고, 언론고시를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 언론고시라는 게 이것저것 준비할 것들이 많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한데 비용이 만만치가 않았다. 당시 월 250만 원 정도가 들어간다고 했던 것 같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게 이렇게도 힘든 일이었던가. 돈 앞에서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에 섰고, 결국 포기를 선택했다.


그렇게 나는 휴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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