덫: 너 지금 잘하고 있어
명문대와 대기업을 다니다 돌연 술집 차린다고 뛰쳐나온 여자 사람 이야기
나에게 첫 전공 수업은 적잖이 충격이었다. 15년이 지난 지금도 그날이 생생하다.
전공 교수님께서 컴퓨터 구조에 대해 설명을 하는데 인간의 몸에 빗대어 설명하는 게 아닌가? 인간의 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컴퓨터의 CPU라고 하는데, 나는 어떻게 사람과 기계를 동일시하게 생각할 수 있냐며 거부감을 가질 정도로 뼛속까지 문과 감성 충만한 사람이었다. 이렇게 전공에 거부감을 느낀 나는 교양과목은 그래도 조금 낫겠지 하는 생각을 했으나 이 또한 나의 대단한 착각이었다.
공대의 교양과목은 바로 물. 화. 생. 지! 물리, 화학, 생물, 지구과학이었다. 그리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각종 수학 과목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때 배운 이과 과목이라고는 공통수학, 공통과학이 다였는데 기본도 없는 내가 심화 과목을, 그것도 고등학교 때 이미 다 배우고 온 이과 친구들과 함께 수업을 들어야 했다.
진짜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누군가, 나는 지금 어딘가? 울고 싶었다. 아니 이미 울고 있었다. 그렇게 대학생활 한 달 만에 인생의 기로에 섰다. 지금이라도 재수를 해야 하나 아니면 참고 다녀야 하나 선택해야 했다. 결국 후자를 선택했고, 그렇게 나는 6년 만에 대학교를 졸업했다.
누군가는 말한다. 본인이 원하는 것이 그렇게 명확했으면 애초에 재수를 하든 편입을 하든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당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새롭게 시작할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부모님이 반대한다, 돈이 없다, 시간이 없다는 등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면서 하루하루를 살았다.
다만 현재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했고 열심히 실천했다. 그리고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미친 듯이 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던 것 같다.
너 지금 잘하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