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자는 올해 고1이다. 아니나 다를까 고등학교 수학은 확실히 차원이 달랐다. 몽자는 교과서 문제마저 뭐가 이렇게 어렵냐며 울상이었고 나도 몽자를 달래가면서 수업을 하느라 진땀이 났다.
나- 그런데 말이야. 애들이 다 울었다고 했지?
몽자- 네. 거의 다요.
나-그럼 나만 어려운 건 아니네?
목표를 ‘잘해야 한다’에 두지 말고 ‘포기하지 않는다’에 두면 어때?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어려운 문제가 나올 때마다 겁이 나지만, 그만두지 않겠다고만 생각하면 어떻게든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많은 학생들이 수포자가 되는 이유는 성적에 대한 강박 때문이다. 제대로 공부하기 전에 결과를 생각하니 아무래도 잘하기는 틀린 것 같고 재미를 느끼기는 더욱 어렵다.
일단 ‘수포자만 되지 않으면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차츰 하다 보면 할 만해지고 흥미가 생길지 모른다. 그러다 혹시 아나? 1등급이 될지도? 그게 아니어도 적어도 성실한 태도만큼은 몸에 배일 테니까 무조건 남는 장사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나도 내가 포기해서 이루어질 기회조차 가지지 못한 많은 일들이 떠올랐다. 수학이 아니어도 무언가에는 계속 도전해나가야 하는 게 삶이라는 걸 나도 이제야 조금 깨달았는데 이걸 어떻게 몽자한테 알려줘야 할지 모르겠다. 나도 매일 나 자신과 전쟁 같은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다 헛소리다. 적어도 오늘 하루 종일 책상 앞에 앉아서 글 한 줄 못쓴 내가 할 말은 아니다. 나라도 이런 날은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어떤 이야기라도 귀에 들어오지 않을 것 같다.
분희 언니 집에 갔을 때 형부가 책을 정리한다 길래 가져온 책 중에 <그치지 않는 비>가 있었다. 엄마와 형이 죽고 무기력한 아버지밖에 남지 않은 주인공이 여행을 떠나 사람들을 만나는 이야기다. 형은 자살하기 전날 주인공에게 전화해서 “견딜 수 있겠어?”라고 물었다. 여행이 끝날 때까지 비는 그치지 않았고 빗물에 눈물을 씻겨 보낸 주인공이 여전히 비를 맞으면서 소설은 끝난다.
글을 읽으면서 오문세 작가도 오래 방황하고 길을 헤맨 경험 덕분에 이런 글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는 건 우리도 비를 맞아본 사람들이고 여전히 그 빗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당장 거리에 나가보면 손님 없이 빈 테이블만 지키고 있는 식당 사장님, 임대를 붙여놓은 상가들이 수두룩하다. 2년 전(코로나 19가 발생하기 1년 전)에 내가 학원을 정리할 때 학원장 모임의 원장님들은 “앞으로 어떡하려고 그러냐”며 나를 심란하게 봤지만 최근에 그분들 중 몇 분이 학원을 내놓았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그나마 운영을 하고 있는 분들도 각자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다.
나보다 먼저 학원을 그만둔 한 영어 학원 원장님이 있다. 나는 가끔 그분이 하려던 골프사업 준비는 잘하고 있는지 궁금했고 마음속으로 응원하고 있었는데 얼마 전에 다시 학원을 개원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름의 사정과 고민 끝에 한 결정이겠지만 오래 해온 일을 그만둔다는 건 정말 어렵구나 하는 생각에 이상하게도 내가 기운이 빠져버렸다.
나는 오늘 ‘숨고’라는 과외 사이트에 프로필을 올리고 소득도 없이 삼 만원 수수료를 날렸고 줌에 혼자 들어가서 화이트보드 기능을 연습했다. 그러면서 자책과 다짐을 꼭 반반씩 했다.
그래도 화상과외나 자기 주도 코칭을 할 방법을 계속 찾아볼 생각이다(이건 다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내가 잘할 수 있을까(자책). 수학 과외는 돈만 아니면 안 하고 싶지만, 평행선에 있는 글쓰기와 과외가 어쩌면 하나로 이어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지금은 막막하지만 어떻게든 해나가다 보면, 비가 와도 계속 걸어가다 보면 말이다. 빗속을 걷고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고 그들 중에 누군가는 나에게 우산을 내밀지도 모른다고 상상을 해본다.
확실한 건 내가 몽자한테 충고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라는 거다.
몽자-풀긴 풀었는데 푼 게 푼 게 아니에요.
나-뭔가는 하고 있긴 한데 내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늘 밤에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다시 읽어봐야겠다. 어차피 오늘 밤도 편하게 자기는 글렀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