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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pr 11. 2021

엄마의 태몽 때문에

미신을 믿지 않는 나지만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초월적인 힘이 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


"우예 결혼도 안 하고 할 생각을 다 했노?  아이고 겁도 없데이"

"한 번도 안 해보고 결혼하는 게 진짜 겁 없는 거 아닌가?

“야가 뭐라카노.”

속도위반(혼전임신)을 한 나를 두고 엄마가 한 말이다.      


지금은 뻔뻔하게 이런 소리를 잘도 하는 나지만 14년 전에는 엄마한테 속도위반 사실을 딱 잡아뗐다. 결혼식을 한 달 앞둔 어느 날 엄마가 심란한 얼굴로 물었다. 

  

“니 혹시 아부터 가진 거 아이가? 내가 어제 꿈을 꿨는데 그기... 암만해도 태몽 같아서... 하얀 강아지 한 마리가 내 치마폭에 쏙 들어오더니 계속 내 치마를 물고 요리조리 다니는 기 꿈이라도 얼마나 생생한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게 삼신할머니가 전설의 고향에만 있는 것이 아니구나 싶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나를 뭘로 보는 거냐고, 아니라고 펄쩍 뛰었다. 들통날 때 나더라도 뒷 일은 이 집을 나간 뒤에 생각하자 싶었다.      


장차 미래에 그 뱃속의 아이를 엄마가 키우게 (강아지는 초밥이고 꿈속에서도 엄마는 홈피스를 입고 있었다) 되기 때문에 아무도 꾸지 않은 태몽을 엄마가 꾼건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일이다.




“엄마, 먹을 거 없어?”

“고구마 구워놨어.”

“그거 말고 없어?”

“고구마 그거 한 박스에 6만 원짜리야. 큰 맘 먹고 산거라고.”

“엄마 꼭 할머니 같아.”     


엄마는 마트에 파는 시금치가 한 단에 삼천 원이 비싸다며 시장에 가면 이천 원에 한 무더기나 준다는 그런 얘기를 줄줄 했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듣고 있으면 같이 궁상스러워지는 그런 얘기를 엄마는 뭘 저렇게 하나 싶었는데 지금 내가 딱 엄마 모습이었다.    


장을 보면서 가족이 잘 먹는 반찬, 내가 언젠가 맛있게 먹어서 딸한테도 해주려고 재료를 고르는 게 중요하지 않다면 나는 대체 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걸까?     


'코로나'를 '코리나'라고 하고 요리를 못하는 엄마지만 그것조차 엄마의 일부이기에 소중하다. 이제 와서 엄마의 음식이 맛있어지면 그것도 꽤나 서운할 것 같다. 엄마가 맛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낮춰준 덕분에 세상 모든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어릴 때 맛있어서 많이 먹지 않아서 나의 기저 지방이 낮은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소풍 때 엄마가 싼 김밥은 밥만 잔뜩 들어가 있고 간이 하나도 되어 있지 않아서 그냥 맨밥에 김을 먹는 기분이었다. 실망스러웠던 그 기억은 내가 엄마로 살아본 후에야 다시 보이게 되었다. 딸의 현장체험을 가기 전날, 밤 11시에 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들어올 때 김밥 재료를 샀다. 새벽에 김밥을 말면서 엄마가 생각났다. 엄마는 대구 시내가 아닌 왜관, 경산에 있는 공장에 일하러 다녔는데 언제 시장에 가서 장을 보고 김밥을 쌌을까. 피곤한 몸으로 어떻게든 맛있게 싸 보려고 애를 썼을 젊은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자꾸만 내가 엄마인 얘기로 흘러가버렸다. 그건 아마도 내가 엄마로 살아본 후에야 엄마를 이해하기 시작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이가 자라는 동안 내 안에 기억되어 있는 엄마도 다른 모습이 된다. 매 순간 새로운 엄마를 만나는 기분이었다. 엄마와 딸은 서로의 과거와 미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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