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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May 16. 2024

편한데 왜 이렇게 허전하냐

짭짤이토마토 2.5kg 26,900원     


마트에서 온 광고문자를 쳐다보다가 창을 닫았다. 토마토는 늘 박스로 샀다. 가격이 내렸을 때를 기다려 수업을 마치고 늦게라도 가서 사 오고는 했다. 토마토는 초밥이가 어떤 순간에도 거절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강판에 간 토마토주스를 좋아했다. 믹서기를 쓰지 않고 손수 갈아야 물이 맑고 알갱이를 씹는 맛이 있다고 했다. 전지적 먹기만 하는 사람의 멘트였다.


“토마토 갈아주까?”

“어!”      


늦으면 기회가 사라질까 봐 그러는지 다급히 대답하는 소리에 웃음이 나고는 했다. 아침에 화장하느라 아무리 바빠도 토마토 주스는 마시고 갔다. 혹시 남으면 “학교 갔다 와서 먹을 거야”라며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내가 먹을까 봐 그러는 거다.      


한 번은 빼빼로데이에 빼빼로를 과하게 받은 것 같길래 다 먹으면 건강에 해로울까 봐 내가 몇 개 먹었더니, 귀신같이 알아챘다.  

   

“아몬드 빼빼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먹었어?”     


에미한테 하나 사주지는 못할망정 그거 하나 먹었다고 난리냐. 에미는 토마토 박스를 이고 와서 팔이 나가도록 갈아주는데. 아무튼 그때 이후로 녀석은 과자를 사 오면 다람쥐처럼 이불 안이나 서랍에 숨기고 갔다. 학교에서 돌아와서 과자를 들고 먹고 다니는 걸 보고 내가 하나만 달라고 하면 진짜 하나만 준다. 더 달라고 하면 두 개는 선 넘는 거라는 소리나 했다.      


나: 어디에 숨겨놓고 갔냐?

초밥: 안 가르쳐줘.

나: 너는 내가 먹깨비로 보이냐?

초밥: 맞잖아.     


초밥이가 있을 때 귤 한 박스가(5kg)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까먹을 때마다 언젠가 먹었던 최고 달았던 귤과 비교하는 소리를 들어야 해서 귤을 고르는데도 신중해야 했다. 올해는 귤도 어찌나 비싼지 5kg에 4만 원이 넘었다. 작년에 과일트럭에서 한 박스에 만원인 귤을 세 박스를 사서 하나는 연언니네 갖다주고, 하나는 한길문고에 간식으로 배달했었는데 말이다. 그 만만했던 귤을 겨우 한 박스를 사 와서 아끼느라 나는 조금만 먹었다.     


집에 먹을 게 없으면 편의점에서 사 먹을 것 같아서 초밥이가 학교 갔다 와서 바로 먹을 수 있도록 고구마를 구워 놓거나 바나나를 식탁 위에 두었다. 늘 초밥이가 좋아하면서도 가공되지 않는 간식을 고민했다.     


장을 볼 때 초밥이가 뭘 사놓으면 잘 먹을까 궁리하며 찬찬히 둘러봤다. 샤인머스캣 가격이 내렸는데 살까 하다가 내려놓고, 바나나를 들고 텔레파시도 아니고 “너 이거 사놓으면 먹을 거야?” 물었다. 지난주에 바나나 샀더니 하나도 안 먹었잖아, 그 전주에는 잘 먹어놓고, 아, 연속으로 사면 안 먹는구나, 그럼 다음 주에 사야겠다. 이런 식이었다. 초밥이가 가고 나서 이런 머릿속의 조잘거림이 딱 멈췄다.

      

어제는 딸기가 싱싱하고 알맹이가 큰데 가격도 저렴했다. 예전 같으면 횡재를 만난 기분으로 사가지고 왔을 텐데 초밥이가 없다는 사실만 크게 느껴졌다. 이제 떡집에 들러 백설기를 사 올 일도 없다. 상투과자, 호두과자를 살 일도 없고, 마트 광고문자를 자세히 볼 필요도 없다. 돈가스, 모자렐라 치즈, 냉동만두를 사지 않아도 된다. 수업이 끝나고 나가서 과일박스를 이고 오지 않아도 되고, 일주일 동안 고기반찬을 하지 않아도 된다. 


딸기, 토마토, 귤, 바나나, 고구마를 볼 때마다 초밥이 생각이 난다. 백설기, 상투과자, 호두과자, 모자렐라 치즈, 만두를 봐도 초밥이가 떠오른다. 

   

띠띠띠띠     


"엄마 수업 없어?

“어. 학생 수학여행 갔어.”

“와! 대박. 오늘 완전 빡치는 일 있었잖아. 어이가 없어가지고.”     


금방이라도 초밥이가 현관문 비번을 누르고 들어와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낼 것 같은 오후다. 식탁에 다리를 걸치고 간식을 먹으면서. 하지만 집안은 적막만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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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님들 잘 지내셨어요? 3월 19일에 일주일 후에 새로운 연재를 한다고 해놓고는 벌써 두 달이 지나버렸네요. 우선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죄송해요. 두 달간 저는 그동안 썼던 글을 퇴고했어요. 무작정 글만 쓸 게 아니라 천천히 읽어보며 정리하는 시간도 필요하더라고요. 그런 시간을 가지고 나면 안 보이던 것도 보이고, 글을 쓰면 조금 나아지는 것 같아요. 독자님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꾸준히 글은 쓰고 있었답니다. 그러면서도 그래도 약속을 했는데, 하고 마음 한켠이 무거웠어요.      


그래서 앞으로 계획을 말씀드리려고 해요. 저는 한 달간 퇴고 작업을 더하고 새로운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 그 한 달 사이에 오늘처럼 간간이 글을 발행할 수 있고요.  

    

<30일간의 아침밥> 이후의 초밥이와 저의 일상을 독자님들께 전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어요. 한참 연재를 할 때는 의무감 때문에 힘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니 독자님들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처럼 글을 썼던 순간이 그립더라고요. 요즘 혼자 머리를 쥐어짜며 글을 고치고만 있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조금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독자님들을 만날 시간을 기다리겠습니다!


이제는 자취를 감춘 토마토주스
초밥이를 위해 준비했던 간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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