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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가 말을 걸어왔다.

네 습관의 제국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by 환오 Mar 11. 2025

-이번 편은 지난주에 이어 <에세 1>권의 두번째 시간입니다.-


브런치의 제목은 "책!나랑 친구 해줄래?"였으나...

에세이와 소설이나 자기 계발서에 익숙했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철학 사상가들과 친구를 하려니 그들이 나를 거부하고 있다.


아니다. 사실 성현들은 죄가 없다. 

아직 그들의 깊이 있는 사상을 못 받아들이는 내 얕은 지식과 마음이 문제지.     


새벽독서를 한다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지만 새벽기상을 한지가 한 달이 좀 넘어간다.

조용한 새벽, 나만의 공간(원래는 아이의 책상이지만)에서 독서에 몰입하는 나를 꿈꿔보며 5시에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어나는 건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나는 20대 시절부터 일산에서 양재, 매봉역까지도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여자였다.

아, 맞다. 기특이를 임신한 9개월 막달에도 처진 배를 부여잡고 칼퇴를 사수하기 위해 지하철역까지 백 미터 달리기도 불사했었지. 

그 시절, 참 열심히도 살았었네..


새벽 6시 기상이 몸에 익숙했던 터라 일찍 일어나는 것은 나에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문제는 그 시간에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

그 새벽에 글자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올 리 만무하다.

분명 모국어인 한글로 써진 책인데 꼬부랑글씨처럼 어지럽게 글자들이 춤을 춘다.     


그러다 갑자기 몽테뉴가 말을 걸어왔다.     


-23장 습관에 대해, 그리고 기존의 법을 쉽게 바꾸지 않는 것에 관하여-     

그러나 습관의 권능이 가진 가장 강력한 효과는, 우리가 그것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으로 돌아와 습관의 명령이 합당한 지 따지고 판단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우리를 낚아채서 장악한다는 점이다.(중략)
그런 까닭에 습관의 틀을 벗어난 것은 이성의 틀을 벗어난 것인 양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대개는 그런 생각이 얼마나 얼토당토않은 일이던가! 나 자신을 알려고 공부하는 우리가 배운 바처럼, 사람마다 지혜로운 금언을 듣는 즉시 그것이 어떤 점에서 자신과 관련이 있는지를 생각한다면, 누구나 그 금언이 그저 좋은 말이 아니라 자신이 지닌 판단의 일상적 어리석음을 후려치는 매운 채찍질임을 알게 되리라.
그러나 사람들의 진리와 충고와 교훈들이 사람들 일반에게 한 말이지 결코 자기에게 한 말은 아니라고 여긴다. 그래서 그것을 자기 행실이 아니라 어리석게도, 또 아무 쓸모없이, 기억 속에 새겨 둔다.
다시 습관의 제국으로 돌아가자.  


나는 아이들의 일상에, 아이들의 시곗바늘에 맞춰진 삶을 살아왔다.

아이들을 낳은 후로는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고, 무언가 변화하려고 꿈틀대는 나 자신을 체력의 한계와 ‘엄마’로서의 역할을 충실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스스로를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둬놨다.     


내가 변해야 한다고 느낀 시점은 남편의 퇴사였다. 

사실 그 이전까지 우리는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자,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은 삶이지 라며 남편회사가 주는 달콤한 월급에 빠져 그가 얼마나 힘든지는 살펴보지 못했었다.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남들도 다 버티는데 좀 더 버텨주길 바라고 있었다.     


남편이 퇴사한 지 4년이 다 돼 가지만 이제 대기업 때 받는 월급은 우리에게는 없다.

나는 남편에게만 의지했던 경제적 지원을 더 이상 기대하면 안 된다.

나는 더 이상 아이엄마로서만 살면 안 된다.


그래서 이전까지 가지고 살았던 내 습관들을 몽땅 바꿔야 한다.     

내가 일어나서 새벽독서를 하지만 글자들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은 

아직은 습관에 길들여져 있지 않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나를 그 습관에 익숙해질 정도로 계속 담금질하면 된다.

매일 꾸준히 지치지 않을 만큼 길게 보고.

from의 시선으로 나를 미래에 맞춰놓고.

오늘 해야 할 일은 오늘 마치고 자면 된다.     


몽테뉴가 나에게 아직 친근한 존재로는 다가오지 않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슴을 후벼 파는 문장들을 만날 때는 반갑다.

나 이 얘기 들으려고 ‘에세’를 폈구나, 

작은 안도감이 올라온다.

그래, 하나는 건졌다! 아싸!
















*독자님들의 따뜻한 댓글은 저에게 글을 쓰는 원동력이 됩니다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환오 연재]

월요일 오전 7시 : [시금치도 안 먹는다는 시짜 이야기]

화요일 오전 7시 : [나랑 친구 해줄래?]

수요일 오전 7시 :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목요일 오전 7시 : [시금치도 안 먹는다고 시짜 이야기]

금요일 오전 7시 : [거북이 탈출기 두번째 이야기]

토요일 오전 7시 : [구순구개열 아이를 낳았습니다]

일요일 오전 7시 [환오의 도전, 엄마의 유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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