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를 수도 있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인간관계 때문에 이직을 한다는 말이 나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인물이 있다.
그에게 나는 별명을 붙여줬다.
기분을 잡치게 하는 마력을 가진 남자.
사실 잡채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 중에 하나인데 별명을 붙인 뒤로는 잡채도 먹기 싫어졌다.
아, 별명을 붙인 내가 잘못이다.
그는 자신이 아는 것을 뽐내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었다.
영어도 국내파지만 스피킹이며 라이팅이며 다 되지 않냐고 나랑 단 둘이 있을 때는 꼭 본인 입으로 셀프칭찬을 해줬다.
나는 미소를 머금고 네네 사회생활을 했었다.
경리 업무에 국한되어 있던 나는 사장의 지시로
언제부턴가 야금야금 해외업무까지 넘어오고 있었다.
해외업무라 하면 제품 수리와 관련된 영어 이메일을 써야 함을 의미했다.
가끔 영어로 전화까지 해야 했다.
그때 알았어야 했다.
업무가 늘어나면 당연히 돈도 늘어나야 한다는 걸.
하지만 사회초년생인 내가 뭘 알겠는가.
그냥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업무가 늘어도 월급인상 제로.
묵묵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루는 영어 이메일을 보내고 나자마자 잡채 과장이 나를 조용히 부른다.
그것도 얼굴에 미소를 띠면서.
“환오씨, 이거 문법이 틀렸잖아. 중학교 문법인데 이것도 몰라?”
영어 이메일은 보내기 전에 두세 번 체크하고 보내는데 그날따라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
무엇보다 실수한 내가 제일 괴로운 법인데
잡채 과장은 나에게 확인사살을 해줬다.
(중학교 문법도 모른다고 지적하는 당신은 얼마나 대단하시길래 여기 계십니까?!)
그걸 시작으로 잡채는 나에게 여러 지적질을 하며 회사생활의 고충을 본보기로 보여줬다.
아, 이래서 사람 때문에 이직하는구나..
중학교 문법 말고도 당시 남자 친구가 없던 내게 아이부터 낳으라며 지금 낳아도 노산이라는 막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온 남자 신입사원에게(내 의견은 안중에도 없이)나 어떻냐고 물어봤다가 자기 스타일 아니라 했다면서 직원들 앞에서 하하하 웃기도 했었다.
당사자가 이렇게 눈앞에 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안주삼아 씹어대는 그의 면전에 한마디 못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됐다.
참다 참다 더 이상은 못 참겠다!
를 외치며 가슴속에 사직서를 매일 품고 다니던 어느 날.
사장실에 가서 말하려던 그때 예기치 못한 소식을 들었다.
잡채 과장이 사직서를 냈단다.
그것도 우리의 갑인 대기업으로 이직을 한단다.
아마 사장하고 급여 조율을 하다 너무 크게 불렀는지 받아들여지지 않아 이직을 하는 듯했다.
그래, 대기업만큼 돈만 주면 우리 회사만 한 데가 없지.
사람 때문에 스트레스받길 하나, 야근을 하나.
당신이 원하는 대로 다 주무를 수가 있으니 여기가 천국이긴 할 텐데 돈이 안되는구나.
그 역시 먹여 살릴 처자식이 있으니 돈이 먼저였다.
그의 퇴사로 내 가슴속 사직서는 조용히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때 내가 먼저 박차고 나왔어야 했는데
참고 참으니 10년을 버티게 되었다.
몇 년 뒤에 그는 사무실에 피자를 들고 놀러 왔었다.
회사 어떠냐는 사장의 질문에 웃으면서 족같다는 그의 한마디가 대기업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게 해 줬다.
그의 방문은 우리 회사에 재입사하려는 꼼수가 있는 거 같다고 다른 직원이 말해준다.
그는 헤어질 때 사장 앞에서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결혼하면 꼭 연락해! 를 외치고 악수까지 내밀었다.
그의 손길을 피하고 싶었지만 사장을 포함한 모든 직원들이 보고 있기에 뿌리칠 수는 없었다.
지나고 보니 그는 내가 회사에서 만난 인물들 중에 가장 ‘사회생활’을 잘하는 인간이었다.
어딜 가도 살아남을 사람.
회사 생활도 열심히 하면서 뒷구멍으로는 우리의 갑인 거래처 대기업에 입사하는 담대함.
사회생활은 그처럼 했어야 했나 보다.
그래도 설마 지금도 저렇게 막말하고 다니지는 않겠지?
세월이 흐른 만큼 그의 혓바닥도 변해있기를.
누군가에게 주는 상처는 언젠가는 자신한테 돌아온다는 걸 잊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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