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내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바보엄마.
느린 아이를 키우다 보면 가끔 이유 없는 죄책감에 빠질 때가 있다.
아이는 아이 속도대로 잘 가고 있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씩 저 보이지 않는 구렁텅이로 푹 빠지는 느낌.
남들보다 조금 느리면 어때?
어떻게 다 똑같은 속도로 자랄 수가 있어?
사람이 생김새가 다 다르듯이 발달도 다른 거지.
저런 생각들을 머릿속에 억지로 주입시켜도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비교’가 나를 괴롭힌다.
아이랑 매일같이 일일학습지를 풀고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일도 가끔 지친다.
엄마니까, 당연히 포기하면 안 되지.
엄마니까, 당연히 해줘야지.
엄마니까, 엄마니까...
어제는 아이가 저녁은 삼겹살, 간식은 빵가게에 가서 먹고 싶은 빵을 고르기로 했다.
아이를 데리고 마트에 가서 삼겹살을 사고, 빵가게에 들러서 고심 끝에 3개 빵을 골랐다.
고르는 시간이 길어지니 내 인내심이 슬슬 한계가 온다.
그 과정 중에 마음에 드는 게 없는지 투덜대는 아이한테 화를 꾹꾹 참고 가게를 나왔다.
손이 모자라서 다 들기에 버거워 보였지만 아이는 끝끝내 자기가 들겠다고 한다.
에그타르트가 툭 떨어진다.
다시 줍겠다고 줍는데 아스팔트 길 위에 나머지 빵들도 우르르 떨어진다.
그 순간 내 인내심의 끈도 같이 떨어졌다.
“엄마가 진작 도와준다고 했지!!!!!”
분명 화 낼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렇게 화내는 나 자신한테 놀래면서 화를 내고 있었다.
삼겹살을 사러 마트에 들를 때부터 내 기분은 저기압이었는지 모르겠다.
이것저것 요청하는 게 많은 아이가 귀찮았던 걸까.
빵가게에서 몇 바퀴를 돌아도 빵을 못 고르는 아이가 답답했을까.
결국 우린 서로에게 마음이 상해서 집에 들어왔다.
난 뭣 때문에 아이한테 그렇게 화를 냈을까.
하지만 이미 후회해도 늦었다.
아이도 나도 마음이 한겨울 웃풍이 드는 방처럼 시리기만 하다.
매일 다짐한다.
아이한테 화내지 않기로.
욱 하고 올라오면 정수기 앞으로 가기로.
물 한잔을 마시면 그사이 화가 내려간다고 아동 전문가가 말해준 사실이다.
버럭 하는 부모는 되지말자.
나는 버럭 하는 아빠 밑에서 자라서인지 그 점만큼은 닮지 말자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똑같이 아빠처럼 대물림 되고 싶지 않았다.
그것만큼은 정말 피하고 싶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버럭이가 나오는 날에는
아이한테 꼭 사과를 한다.
진심을 담아서.
엄마가 미안하다고..
너를 미워해서가 아니라고..
그리고 너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
이건 아빠와 내가 다른 점이다.
잘못을 했으면 아이한테도 사과할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 한다.
화를 안 내면 좋으련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버럭이를 꺼냈으면 아이한테 꼭 사과라도 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보기 싫은 내 밑바닥과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그 밑바닥을 봤다고 겁먹고 도망치면 안 된다.
결국 아이를 키우는 건 나를 키우는 일이었다.
너를 위해 엄마는 오늘도 다짐한다.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좋은 사람이 되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