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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 Aug 19. 2024

지울 수 있는 선

[세상에 부치는 편지 No.1] 연필과 인터뷰의 상관관계

사진: UnsplashBill Zannoni



 책을 읽다 연필로 줄을 긋는다. 볼펜은 지울 수가 없으니 선 하나에도 자유를 주고픈 마음이다. 

아니, 사실은 책임지기 싫은 마음이다. 언제든 지울 수 있고, 번지는 것. 사라질 자유를 가진 것. 오늘의 좋음이 내일은 아닐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책 한 면, 나만 보는 그 작은 흔적 하나에도 확신하지 않겠다며 연하게 연필 자국을 남긴다. 볼펜으로 그은 선은 변하지 않는다는 확언처럼 느껴지고 그런 믿음은 자칫 부담스럽다.

 연필을 손에서 굴리다 일기장을 벗어난 말들을 옮겨 본다. 어쩐지 내가 쓴 문장들은 '~같습니다'라는 표현으로 가득하다. 지금 부정하는 것이라도 언젠가 이해하는 날이 온다면, 지난날의 감정의 잔해가 부끄러워질까 봐 미리 창피해한다. 언제든 한 발 물러날 준비를 해둔다.




초점을 옮기면

보이는 것들


하지만 딱 하나 틀릴 수 있다는 두려움을 이길 때가 있다. 

그것은 '듣기 위한 말하기'를 시도할 때다. 


누군가의 삶을 통과해 보이지 않던 게 보이고, 익숙한 것을 옳은 것으로 정의 내리지 않는다. 

그러면서 성장한다. 나는 이를 인터뷰를 통해 배웠다

경계하는 태도는 자주 구멍을 낸다. 바늘에 찔린 풍선처럼 틈새로 순식간에 의문이 들어찬다. 


사진: Unsplash의Tiago Muraro


 작년 초, 하동의 마을에 인터뷰를 하러 간 적이 있다. 할머님 12분이 모여계신 사랑방에서 진행된 단체 인터뷰라 정신없이 2시간이 흘렀다.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고 리뷰를 위해 모여 앉았을 때, 그분들의 성함을 모른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인터뷰의 기본인데 어찌하다 이걸 놓쳤을까?' 


분명 우리는 인터뷰를 시작할 때, 자기소개를 요청했다. 그리고 그분들은 본인을 '00 댁'이라고 소개했다. 

함안에서 오면 함안댁, 진주에서 오면 진주댁, 지역이 겹치기라도 하면 윗사람이 큰댁, 아랫사람은 작은댁. 너무나 익숙했다. 어쩌면 이름 석 자보다 더 오래 불리었을 또 다른 이름이었다. 김춘수 작가의 <꽃>, 많은 이들이 이 시로 인해 이름을 지어준다는 게 얼마나 애틋한 행위인지 알게 되었다. 시에서 말하듯 명명하는 동시에 의미가 생겨나고,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을 가지게 된다. 그 날 만난 어르신들, 익숙하게 존재감을 지워온 삶의 흔적을 '00 댁' 그 석자에서 읽을 수 있었다. 살면서 겪은 수많은 고됨에 대해 이야기하던 분명한 그 목소리들을 이름으로 부를 수 없다는 게 글을 쓰면서도 내내 아쉬웠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통제와 헌신, 노동으로 가득했던 삶. 그럼에도 연민의 폭이 넓었던 분들이었다는 것. "지금 얼마나 살기 좋아. 윗 세대는 이런 좋은 세상 보지도 못했는데 우린 가스불도 쓰고, 세탁기도 있고. 좋지."


세상에 글로 남지 않은 삶이 많지만 남기고자 하면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읽고 쓰고 듣는 일을 지속하고 싶다. 한 사람의 삶을 재조명하는 일을 연필로 수없이 고치고 다듬은 다음 볼펜으로 꾹꾹 눌러써 세상에 남기고 싶다. 남긴다는 행위에 기꺼이 책임을 지고 싶다.

그런 마음을 담아 나는 오늘도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려 여기 있다.


사진: Unsplash의Nicholas 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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