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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지 Apr 11. 2019

나의 노란집


2018. 8. 4.




지금 읽고 있는 박완서의 노란집에서는 당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 슬하에 손주를 두고 난 뒤의 이야기, 도시에 올라와서 살던 때의 이야기, 다시 시골로 귀향해 살던 이야기까지 전 생애를 어우르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 중에서 내 눈에 밟혔던 대목은 단연 바로 돈암동에서부터 명륜동, 원남동을 거쳐서 등교하였다는 일화였다.


내가 현재 살고 있는 이곳에 거주하기 시작한지는 3년이 채 되지 않았는데 아직까지 나에게 혜화동이란 낯익으면서도 낯설고, 때때로 나의 질척한 동경이 묻어나는 타인의 마을이다. 나는 전혀 알지 못하는 옛 동네의 모습이 얼마나 남아있을지 모르는 이 곳에서 나는 불시에 무한한 외로움을 느끼기가 일쑤다. 노란집을 읽으면서도 노년기에 접어서 당신이 귀향했던 시골집이 아니라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내왔던 도시의 집을 부러워하는 것을 보면 아직 나는 동경의 시대를 살고 있는 것 같다. 당신이 살아왔던 시간을 나는 알지 못하고, 다만 내 시간에 빗대어 그 감각을 추측해볼 뿐인데 이리도 부러움이 앞서는 것을 보면.


바쁘게 살다가도 문득 멈추어 서서 아래를 바라보면 저 먼 밑바닥이 보이는 유리천장처럼 불안하기만 한데, 남이 지닌 것은 어찌도 탄탄한 방벽같아 보이는지. 혜화에 3년을 살면서도 내가 아직 이 동네를 다 알지 못하고 나의 집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것은 외부인으로써 나를 체화시키고 스스로 겉돌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사람에게 뿌리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왔던 고향일까, 아니면 그 사람을 한 마디로 설명해줄 수 있는 장소 이외의 무엇일까.


혼자 도시에 뚝 떨어져나온 지 3년째로 이제는 프로도시러가 되었을 법도 한 나는 요즘 근본 없는 외로움을 느끼지만 또 막상 내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면 다시 숨이 턱 막혀온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내가 돌아갈 곳도, 계속해서 살아가야 할 곳도 분명치 않고 그 어느 곳에서도 나를 반기지 않는 듯한 이 선뜩함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려면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할까. 시골에서 자신의 뿌리를 찾고 명절이 되면 귀향을 즐겼던 박완서처럼 나도 언젠가는 서울에 뿌리없는 자신을 탓하지 않고 온전하지 않아도 나일수밖에 없는 나를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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