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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휴지 Oct 31. 2019

욕망과 환상의 경계

나목을 읽으며


2019년 1월 29일 화요일






오랜만에 발걸음한 학교에는 이십 분을 채 있지 않고 나왔지만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그럭저럭 만족스럽다. 그 목적이 무엇인고 하면 소설책을 빌리는 것이었다. 무슨 책을 빌릴지는 정하지 않고 갔다. 그때가서 끌리는 것을 집을 생각이었다. 왜 이런 뜬금없는 발걸음을 하게 되었는지 잠깐 시간을 거슬러 짧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며칠 전의 술자리에서 나는 한 친구를 만났다. 내 글을 자신감있게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시작한 건 얼마되지 않은 일이라 그 친구도 나의 글을 한두 편 정도밖에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니 그 친구가 내게 건넨 말은 지나가다 강아지풀에 스친 산들 바람처럼 가볍게 던진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는 내가 재능이 있다고 했다. 고슴도치 우리 엄마의 자식자랑 범주 안에 들어가는 칭찬 외에 다른 이에게서 글 칭찬을 받은 건 오랜만이었다. 너무 기뻤던 나는 한껏 꿈에 부풀어 도서관에 달려왔다. 그 당시 잡고 있던 장편 소설이 있었는데 도무지 뒷 이야기가 풀리지 않아 혹시 다른 작가의 소설을 읽다보면 해결점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학교 도서관 내의 정보 검색대에서 박완서 세 글자를 치자 너무 많은 책들이 검색되었다. 무얼 빌려야하나 도무지 갈피를 못잡겠기에 일단 가서 살펴보고자 발걸음을 옮겼다. 책의 띠지에 811.36~라는 기호의 스티커가 붙어있다면 그 책은 한국 문학을 모아둔 코너에 꽂혀있는 것이다. 내가 학교 도서관에서 가장 자주 찾는 구역인데 몇번  오다보니 절대 못 외울 것 같았던 숫자와 한글자모의 나열이 꽤 익숙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항상 검색대 옆에 놓여있는 작은 이면지 종이에 청구기호를 적은 다음 코너로 이동한다. 나의 아날로그에 대한 몇 안 되는 로망 중 하나이다.


한국 문학들을 모아둔 코너에 도착하면 익숙한 작가들과 낯선 제목들을 마주하게 된다. 박완서는 첫 데뷔가 삼십 년이 넘은 중견 작가이니 그만큼 오랜 기록들이 많이 쌓여 있다. 그 중에서도 나는 단편이 아닌 장편을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그것이 나목裸木이었다. 벌거벗은 나무.



독자로서의 나는 단편보다는 장편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긴 호흡의 이야기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힘이 있다. 기나긴 이야기를 읽어나가는 동안 나는 이야기 속 주인공의 친구가 되고 가족이 되어 그 일을 지켜본다. 작가로서도 나는 장편 소설이 너무나 쓰고 싶었다. 장편 소설에 대한 나의 욕망은 잘쓰여진 남의 이야기에 대한 동경으로부터 비롯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는 본디 이런 저런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얕게 많은 편이고, 또 그만큼 관심이 금세 식는 편이다. 피아노, 기타, 영화, 디자인편집, 사진, 패션, 인문학, 심리학... 하고 싶은 것도 참 많았다. 대부분은 호기심으로 그쳤지만. 수많은 욕심 속에서 헤매다 내가 찾은 종착이 글쓰기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꽤 최근의 일이다.


소설책까지 빌렸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쓰고 있었던 장편 소설을 끝끝내 완결내지 못하고 중간에 내려놓았다. 욕심이 너무 커서였을까. 언젠가 다시 이을 것 같지는 않다. 준비없이 시작한 이야기라 구조가 틀어질대로 틀어져 쓰는 나조차도 납득이 가지 않는 글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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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는 읽다가 공감이 갔던 구절을 통째로 인용했다. 남의 것에 대한 동경과 욕망, 그리고 그 욕심이 빚어낸 환상, 그러나 사실은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깨어지고마는 지극히도 허무한 환상. 이런 것을 보면 욕망은 환상과 꽤나 닮아있는 것 같다.


무엇이든 기구하고픈 충동으로 나는 발을 멈추었다. 그러나 무엇을 소망해야 할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마리아 당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기나 하리까.'
무언가 뿌듯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마리아, 당신만은 아시리다…….'
청순한 동경이 언 몸을 깃털처럼 감쌌다.
'마리아, 당신이 아니고서야 누가 알기나 하오리까…… 마리아, 당신만은 아시리다…… 그 다음은 뭐더라…….'
문득 나는 내가 전에 애송한 시의 구절을 생각해 내려고 골몰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남의 흉내, 빌려온 느낌은 그것을 깨닫자 흥을 잃고 싱거워졌다. 그리고 가식 없는 나의 것만이 남았다. 그것은 무섭다는 생각과 춥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것만이 온전한 나의 것이었고 그 느낌들은 절실하고도 세찼다.

<나목> 박완서 저. 세계사 출판사 1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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