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노트북을 켜지 못했다.
머릿속에서 가슴속에서 뒤엉켜 씨름하고 있던 나의 빌런들에게 '굿바이!' 하고 작별을 고한 뒤 머리가 텅 빈 것 같았다. 그리고는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나의 정신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한동안 열어보지도 않던 브런치 알람을 터치해서 보니
소식 없던 나에게 노크를 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이러고 있는 게 맞나 쭈뼛거리고 있을 때,
하고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았다.
이 안도감은 뭐지.
우리는 매일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지만 사실 선명한 것은 하나도 없다. 수학적으로 말하자면 확률을 믿고 가는 것이고 철학적으로 말하자면 신념을 믿고 갈 뿐.
그래서 우리는 지나는 바람에도 넘어지고 앞서는 희미한 그림자를 보고 기가 죽기도 한다. 그렇게 넘어지고 기죽어 끌탕하는 내 울음들은 그대로 나의 향기가 되고 저력이 되니 나의 어떤 시간도 손실이 없는 귀한 시간일 뿐이다.
그렇게 쓰러지면 다시 일어나고 또 새로운 집을 닦고 있는 중이었다.
이른 아침 부지런히 움직여서 알바를 하러 간다. 일주일에 3시간씩 세 군데 가정집으로 열심히 청소를 해주러 집을 나선다. 평생 책상에 앉아 머리를 쥐어짜며 살아온 내가 몸을 쓰는 일을 해보기로 마음먹은 것은 쏟아지는 생각을 멈추고 나를 추스르기 위한 수련과도 같고 피정과도 같았다.
청소기 한 시간 돌렸다고 손에 물집이 잡혔지만(요즘 코드리스 청소기는 너무 무겁...) 물집이 한번 벗겨지고 나니 지금까지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새 배터리가 연결된 것처럼 새로운 힘을 얻고 있다. 머리와 가슴에 힘이 좀 더 빠질 때까지 해보려고 한다.
나에게 감사할 것들이 참 많다는 것
그리고 나에게 버려야 할 것들이 참 많다는 것을 새롭게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브런치의 똑.똑. 노크소리가 잠시 눈 감았던 나의 감성 세포들을 깨워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