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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san민산 Aug 05. 2023

글을 쓴다는 것

나는 말보다 글이 편한 사람이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뛰어난 문장가라는 말이 아니다. 말은 언제나 조급해졌고 그러다 보면 내가 생각했던 정도보다 넘치기도 또는 모자라기도 하면서 내 진의가 전해지지 않고 오히려 오해를 부르는 일도 많았다. 그런 날은 곱씹고 곱씹고 되돌아보며 이불킥을 하는 날이다.


이 점은 솔직히 내가 하는 말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 말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왜 저렇게 말하는 걸까. 말의 의미와 의도에 집중했다. 

당연히 '관계'가 참 어려웠다. 


어쩌면 나는 참 반사회적인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말에 대한 예민한 촉을 잔뜩 세우고 조직생활을 한다는 것이 내겐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래도 일은 해야 하니 참 잘도 견디고 버티었다.


회사생활을 할 때 가장 힘든 것은 일이 아니라 관계였다. 세상에 별난 캐릭터들은 모두 회사에 들어와 있는 듯 사방이 빌런이구나 싶을 때, 내 안의 저 심연에서 깊은 '빡침'이 올라올 때 나는 원노트를 열었다. 

페이지를 추가하고 그때의 내 감정 쓰레기들을 그곳에 쏟아부었다.  말로는 하지 못할 온갖 이야기들을 폭풍 타이핑으로 그곳에 쏟아냈다. 

그러면 좀 살 것 같았다. 내 마음과 생각의 모든 오염들을 다 덜어내고 나면 그냥 삭제하면 되었다.

그렇게 회사생활을 버텼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관계와 커리어, 그동안의 노력들이 결국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상실감이 들면서 나는 내 머리를 강제로 off 시켰다. 예전에 하던 일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이 죄어왔다.


노트북을 켜고 무언가를 기획하고 글이라도 쓰려하면 여지없이 두근거림이 시작되었고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닌 척 또는 괜찮아하면서 글을 이어가도 마음의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내가 오랫동안 브런치를 열지 못한 이유이다.


생각하지 말자.

머리 쓰지 말자.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


그리고는 두 계절동안 단순히 몸 쓰는 일을 하면서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고 어깨뽕도 비우고자 했다.

뜻하지 않게 다이어트의 효과가 덤으로 따라오면서 많은 걸 비우고 새로운 많은 걸 다시 채웠다.


그러던 어느 날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을 받게 되었다.

성당에서 만드는 기념집을 도와달라는.

그렇게 나는 다시 노트북을 켜고 1년 행사 전체 기획안을 만들고 편집안을 만들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가슴이 죄어오지도 불안하지도 않았다.

마치 걸리적거리는 거 하나 없이 드넓은 들판을 마구 달리는 것처럼

다 포기했을 때 그제야 자유를 느끼는 것처럼.


글을 쓴다는 것이 그런 자유로움이라는 것을 요즘 만끽하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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