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회사를 그만두면서 그동안 날세우며 예민함을 요구했던 업무들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은퇴를 선언했다.
이제는 자유로워지겠다고.
사고로부터 자유롭고 시선으로부터 자유롭고 성과로부터 자유롭겠다고.
자연스럽게 노년으로 늙어가겠다고 말했다.
제일 먼저 뿌리염색을 중단하고 아침 화장을 멈췄다.
이게 뭐라고 평생 아침마다 공들여 그리고 두드리고 했을까 싶었다. 화장을 하지 않으니 생긴 그대로의 내 얼굴에 익숙해져 갔다. 사실 매일같이 머리를 다듬고 얼굴을 투덕투덕 매만지며 지내온 세월이 길다 보니 휴일 아침에 만나는 내 민낯이 낯설기도 했다. 힘이 넘치던 젊은 시절에는 드라이하지 않고 가벼운 화장이라도 하지 않으면 집 밖에 나가지도 않는 부지런도 떨었다. 화장하는 것을 멈추고 나서 여유로운 아침 시간이 덤으로 생겼다.
이미 40대 초반부터 새치가 생기기 시작했던 나는 50대를 넘기고 회사에서 나이 순위가 점점 위로 올라갈수록 더욱 꼼꼼히 뿌리 염색을 하며 소위 '자기 관리'라는 것에도 열심이었다. 사실 업무 성격에 따라서는 담당자가 해당 업무의 대표 이미지로 최전선에 서게 되기 때문에 자기 관리도 중요한 업무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조직 내에서 업무역량과 관계없이 단순히 나이 많음이 핸디캡이 되지 않기 위한 생존의 한 방편이기도 했다. 이 부분은 사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외모를 단정히 한 이유 중 하나인 것은 분명했다.
머리 염색도 멈췄다.
처음에는 삐죽삐죽 드러나는 새치가 영 눈에 거슬렸지만 흰머리가 자연스럽게 자랄 때까지 이제 나는 실버 그레이, 은발의 노년을 마음껏 살겠다며 1년을 견뎠다.
서서히 나는 은발이 되어갔고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은 변해가는 내 모습에 놀라워하기도 하고 당당한 은발의 노년을 응원해주기도 했다.
멋스러운 은발의 로망이 단박에 무너진 건 아주 작은 일 때문이었다.
어느 날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다.
귀에는 인이어 이어폰을 꽂고 즐겨 듣던 팟캐스트 인문학 강의를 듣고 있었다. 혼자 키득키득 웃기도 하면서 강의에 몰입하고 있을 때 앞에 앉아있던 청년이 일어서고 나는 그 빈자리에 앉았다.
팟캐스트를 들으며 한 정거장, 두 정거장을 지나는데...
그 청년이 내리지 않고 내 앞에 서있는 것이었다.
어, 이상하다...
뭐지?
그제야 그 청년이 나에게 자리를 양보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 어쩌지...
이러한 상황을 한 번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방비로 닥친 상황에서 나는 그냥 멍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나, 이럴 수 있구나.
그날 일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내가 꿈꾸었던 '은발의 노년'에는 '은발'만 있고 정작 '노년'은 없었다. 은발이 되면 당연히 노년이고 노년이 되면 당연히 은발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나는 아직도 이미지와 본질을 혼돈하고 있었다.
은발은 내 나이의 이미지일 뿐이고 본질은 나의 노년일 텐데 나는 1년 동안 은발을 가꾸는 데에만 신경을 썼지 내 노년의 변화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지금껏 젊은 친구들과 현장에서 일해왔기 때문에 더러 내 나이를 잊고 살기도 했고 또 더러 내 나이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며 살아오기도 한 내 지나온 삶의 부작용, 또는 이미지와 본질의 부조화를 직면했다.
이미지와 본질이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말하곤 한다.
이미지보다 본질이 앞서면 "애늙은이" 같다고 하거나 본질이 이미지를 따라오지 못하면 "철없다"라고 한다.
바로 내가 나의 철없음을 보아버린 것이다.
나의 은발은 허세였던 것이다.
우리의 생체는 '항상성'이라는 매우 뛰어난 조절기능을 가지고 있기에 어떤 부조화가 일어나면 자동으로 일정한 수준의 조화로움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이미지로 기울든 본질로 기울든 적절한 타협점을 찾게 마련인데 나 역시 이 상황을 한 매듭으로 삼아 정리해 둘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새까맣게 염색을 했다.
아직 노년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음을 인정했다. 본질에 대한 깊은 사색이 더 필요하다는 나의 철없음을 인정하면서.
그래도 이런 당황스러운 때에는 슬쩍 다른 사람의 의견에 묻어가는 유연한 지혜를 가지고 있으니 차라리 철없음이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랴.
누구의 말처럼 나도 60살이 처음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