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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FT explorer 허마일 Mar 09. 2020

사표의 마력

우오오오!! 힘이 솟아 오른다...!!

 하…진짜 뭣 같아서 못 다니겠어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자, 한잔하고 다 잊어.


 소주 한 잔에 분통함을 삼켜 넘기는 것이 더 모양 빠지는거 아닌가 싶지만 별수 있냐고요.

 돈이 없으면 가오도 없어지는 세상, 이런 세상에 회사를 다니는 이라면 누구나 가슴속 한 켠에서 꿈틀거리는 사직서의 태동을 느껴봤을 것이다. 부당한 대우, 억울한 처우, 권력에 쌈싸먹힌 예우. 이러한 난장이 일어나는 현장에선 마음에 폭우가 하루에도 몇백 번씩 들이치고, 가슴 속 사표는 그 짜고 쓴 빗물을 먹고 자란다.


 금속 가공 기술(선반이라 불리는 기계로 쇠를 깎는)로 7년 동안 공장에서 일하며 먹고 살았던 나 역시 그랬다. “눈깔이가 사시냐” 혹은 “이거 완전 새대가리구먼 짹짹” 같은 공장장의 사정 없는 혀부림에 여기저기 찔릴 때마다, 일격필살의 때를 노리며 조용히 기다리는 검객의 심정으로 아주 날카롭게… 쇠를 깎았다.

 누가 워크와 라이프, 밸런스를 운운하였는가! 공장, 집, 공장, 집, 공장, 공장, 공장, 공장 그 빌어먹을 공장장…!! 균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숨 막히는 삶에 나타날 한 줄기 빛을 기다리며 반짝반짝… 사포질을 했다. 나는 쇠도 잘 깎고 광도 잘 내요. 물론 커피도 잘 탑니다. 하하.


 회사에 다니는 우리는 왜 이렇게 실물이든 가상이든 사표를 가슴에 품게 되는 걸까. 어떤 거부할 수 없는 힘이 우리를  이끄는 걸까? 그 속에서 뿜어내는 마력을 나의 부족한 지론으로 정리해보았다.


- 가호의 방패 스킬

 1) 적은 월급에 주말도 없는 가혹한 근무시간 속에서 점점 희미해지다 없어져 버릴 것 같은 나를 지켜낼 수 있다.

 2) 나 스스로 강력한 불의와 불합리에 맞설 용기를 지닌 자라고 여기며 비록 작고 비루하지만 내 세상에 주인은 나라는 긍정적 자기암시를 할 수 있다.

 3) 갑과 을의 관계를 잠시나마 갑과 갑의 관계로 보이게 하는 착시 효과가 있다.

 4) 죽음을 기억하라. ‘메멘토모리’ 효과. 퇴사는 곧 죽음을 의미하는 이들에겐 김부장의 온갖 지랄에도 “미운 놈 떡 하나 준다던데, 날 얼마나 이뻐하면 되려 쌍욕을 듬뿍 주실까” 혹은 “월급뿐 아니라 욕으로도 배부를 수 있는 회사라니 너무 든든해!!” 라며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지닐 수 있게 된다.


-  현자의 지팡이 스킬

 1)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 더 나은 행복과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 깊고 진지한 고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2) 사표를 작성하면서 입사할 때의 초심을 다지고 그간의 회사에서의 부족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를 얻을 수 있으며 사내 관계에서의 작은 불화나 회사를 향한 섭섭함으로부터 관대해질 수 있다. (회사에 대한 사랑과 업무에 대한 열정을 일정 부분 불러일으킬 수 있음으로… 이 글을 보는 사장님들! 직원들에게 사직서를 쓰게 해보시라)


 나에겐 사표란, 신세계를 향해 항해한 콜럼버스의 갈망이며 마지막까지 순결을 지키려는 여인의 은장도와 같았다.

 마력의 힘으로 이를 악물고 버텨내 어린 나이에 직급을 달았다. 대리를 달자마자 두툼한 작업복 안 주머니에 정말 빠빳한 사직서를 인쇄해 날카로운 봉투에 담아 숨길 수 있게 되었다. (어디 일개 말단 사원이 사직서를 품을 수 있나요. 대리 정도는 되야 ‘다들 잘 있는 거지..? 보고 싶구려…’하며 타지에 두고온 아내와 자식의 사진을 꺼내 보는 심정으로 볼 수 있지. 안 그래요?)

 따듯하게 품은 사표에 그 어느 사무라이도 부럽지 않았지만, 역시나 이것은 지친 몸과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줄 오아시스요, 토템이자 부적 같은 것이지, 그리고 거기에 침을 잔뜩 발라 공장장의 이마에 철썩 붙여서 말 잘 듣는 강시로 만들고 “설탕 우유 빼고 달달한 라떼로 한 잔 부탁해”라고 심부름을 시키고는 깡총깡총 커피를 타오면 “야이 멍충아, 이게 라떼야? 눈깔이가 사시야?”라고 퍼붓는 상상을 하는 용도였지, 절대 꺼내 들 요량의 카드가 아니었다. 허나 모르옵니다. 독이 발린 표창이 되어 당신 책상 위에 꽂혔을지도…


 지금은 공장이 아닌 경로당, 요양원, 노인 유치원을 쏘다니며 할머니들과 노래하고 춤추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세상의 굴레와 속박을 끊고 행복을 찾아 떠났으니 이제 행복하지 않냐고 물으신다면, 여지없이 행복하다고 답하겠지만 대체! 이 눈물은…뭐란 말입니까!) 지금도 여전히 엄습하는 불안과 아니꼬운 타인의 시선들은 눈물겹게 따갑다. 이 따가움이 북북 긁적이면 시원해지는 간지러움으로 바뀌기를 바라는 마음에 그 사표의 마음이 그리웠나 보다.

 퇴사한 이에게도 사표의 마력이 작동할까요? 우리 다 같이 마법의 주문을 외우며 사직서를 써봅시다. 아브라카다브라.


**주의: 팬티 바람으로 쫓겨나는 수가 있으니 꼭꼭 숨겨놓고 상사에게 들키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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