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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muraeyo Aug 23. 2022

고쳐 쓰는 물건과 물건을 대하는 마음

  그날따라 바빴던가? 딴생각을 했던 걸까? 아니면 화가 나 있던 거였을까? 뭐가 어찌 되었든 평소와 달랐던 날이었다. 그런 날은 사실 미리 안다. 내 마음속이 다글다글한 날. 이런 날엔 더 조심해야 하는데, 알면서도 결국 사고를 쳤다. 덜그럭 덜그럭 설거지가 평소보다 유난스럽더니 아끼던 컵에 이가 빠져버렸다. 아, 이런. 내가 한 짓이니 화도 못 내겠고, 아끼는 컵을 못 쓰게 되어 버렸으니 속은 상하고... 하~~ 깊은 한숨만 나오던 저녁이었다. 남편이 “왜 그래?” 하려 달려와서 보더니 “조심하지, 그랬어.” 한다. 나도 안다. 조금만 조심해서 씻을 걸. 후회한들 이미 깨진 컵은 붙일 수도 없다. 혹시나 해서 나간 조각을 찾아보지만, 수챗구멍에 음식물과 섞여 들어가 버렸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아끼는 컵이지만 성한 모습이 아니니 그냥 버려야 하나 내심 속이 쓰렸는데, 남편이 한마디 더 한다. “이거 사포로 갈면 괜찮을 거 같은데?”

“사포로 갈아도 어차피 이가 빠진 컵을 어디에 써?”

남편은 내가 아끼는 컵이니 버리기 아까워서 했던 말일 텐데, 속상한 마음에 애꿎은 남편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남편은 사포를 가져와서 컵에 윗면을 썩썩 갈기 시작했다. 몇 번 갈았더니 날카로웠던 면이 둥글둥글해진다. 맨질맨질해진 컵을 내 쪽으로 내민다. 손잡이 위쪽 갈아내서 패어 있는 부분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어! 자기야 이거 그럭저럭 괜찮다. 일부러 디자인한 것도 같고...”조금 전까지도 뾰로통해했던 걸 잊어버리고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컵 하나 가지고도 마음이 탁구공처럼 이리저리 통통 튀던 날이었다.


  깨진 컵처럼 아끼는 물건들이 몇 있다. 딱히 비싸거나 그런 게 아니더라도. 물건을 발견했던 그곳에서의 기억이 좋아서, 나에게 준 누군가의 마음이 좋아서, 혹은 나의 취향을 남기고 싶어서 좋아하게 된 물건들. 이번에 컵을 깨뜨리고 나서는 좋아하게 되는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고쳐서 새롭게 내게 온 물건들.


  결혼 생활 10년이 넘고, 아이가 생기면서 집안에 물건이 점점 늘어난다. 때마다 정리해도 또다시 채워지는 물건들로 집에 있는 물건들의 기본량이 언제부터인가 줄어들지 않는다. 그 많은 물건 중에 일부는 쓰임이 있어 필요한 물건이고, 일부는 좋아해서 들이는 물건들이지만, 때로는 필요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쌓여 있는 물건들이 있다. 기분이 좋지 않아서 쇼핑으로 기분을 풀려고 덜컥 사버리거나, 가격이 저렴해서 사버린 그런 물건들. 그런 물건들은 살 때는 좋았지만, 볼 때마다 답답해진다. 그래서 되도록 그런 답답해지는 물건들은 들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즉흥적인 마음에 후회할 물건들을 들이지 않도록 물건을 살 때마다 다시 또 생각하고 생각한다. 여전히 마음 답답해지는 물건들이 종종 생기지만, 예전보다 점점 줄어들고 있으니 다행이다 싶다.


  깨뜨린 컵을 고쳐 쓴 이후로 우리 집에는 고쳐 쓰는 물건들이 점점 늘고 있다. 대량으로 생산되는 공장 제품이지만, 우리 집에 와서 쓰임을 덧대어 우리 집만의 맞춤 물건이 된다. 부서진 윗면을 잘라내 작은 선반이 된 서랍장이 그러하고, 전시용이라 책을 꽂기에는 자꾸 쓰러지는 선반에 나무를 덧대어 근사한 책장이 그렇다. 고쳐 쓰는 물건들에는 새로운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처음 우리 집에 온 날 외에 부서지거나 쓰임에 다했을 때 다시 우리 집에 맞추어 새로운 쓰임을 얻게 되는 날들의 이야기가 덧대어진다. 어딘가 마감은 부족한 듯하지만, 더해진 이야기가 있어 애정이 간다. 반듯하고 온전하지 않더라도, 비싸서 명품이라 불리는 물건이 아니더라도, 내 곁에 와서 내 몸과 마음에 맞추어진 물건들이 참 좋다. 그런 물건을 쓸 때마다 나는 종종 수다스러워질 테지.

“이 컵이 이렇게 된 게 말이지. 내가 예전에 설거지하다가…”

내게 오는 물건들이 늘어난 만큼 나는 꽤 수다스러운 할머니가 될 거 같다. ⓒmumuraeyo




                                           혹시 나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물건이 있나요?

                                          돈으로는 다시 살 수 없는 그런 물건이 있죠. 

                                   추억이 깃들인 물건들. 볼 때마다 떠오르는 누군가의 선물..

                                           당신의 이야기가 있는 물건은 어떤게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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