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에서 사망신고를 받을 때
주민센터 근무가 처음이었던 나는 출생신고를 받을 때엔 내가 누군가에게 새로운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고 한 사람이 죽을 때까지 이고 지고 다닐 기록을 생성한다는 사실에 마냥 설레고, 누군가의 사망신고를 받을 때면 그의 죽음을 직접 본 것도 아닌데 마치 내 일인 양 숙연해지고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사망신고를 받을 땐 고인의 주민등록증도 함께 회수를 하는데,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채로 제 역할을 끝낸 신분증을 보면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어떤 분이 모친의 사망신고를 하면서 신분증을 내지 못하고 멈칫거렸다. 어차피 돌아가셨는데 쓰지도 못하는 거 가지고 있고 싶은데 안 되겠냐고. 잠시 갈등이 됐다. 나만 모른 척하면 되는데.
"죄송합니다. 저희도 절차가 그래서 어쩔 수가 없네요."
"...나한테 없는 우리 엄마 사진이라서 가지고 있고 싶었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혹시.. 이거 핸드폰으로 사진 찍으셔서 가지고 계시는 건 어떨까요?"
"아! 그렇게 하면 되겠네요!"
정말 다행스럽게도 쉬이 해결이 되어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난다. 사람이 하는 일인지라 사람의 감정과 업무 절차가 부딪히는 순간이 생길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가 참 난감했다. 나는 융통성을 발휘하기엔 너무 FM 같은 성격인 데다 삶의 지혜도 한창 부족한 아직 너무 어린 20대였으니까.
누군가 태어나고 누군가 죽는 일은 지금 이 순간 세계 어느 곳에서나 나와 상관없이도 얼마든지 일어나는 일인데 주민센터에서는 그 일이 조금은 피부로 와닿는다. 출생신고와 사망신고가 예고도 없이 이어서, 혹은 겹쳐서 들어오니까. 출생신고를 마치면 대개는 부부 둘만 있던 주민등록등본에 새로운 이름과 주민등록번호가 등재된다. 그리고 출생신고 기념으로 아이가 등재된 주민등록등본을 무료로 떼어준다. 가족관계등록부에 등재가 되는 것은 며칠 시간이 걸리니 등본으로 출생신고를 확인시켜 주는데, 그때 표현은 하지 않지만 등본을 받아 든 사람들의 눈빛이나 얼굴은 기쁨과 맞닿아 있다. 그걸 전달하는 나의 손도 즐거움이 가득 묻는다. 그런데 사망신고는 조금 다르다. 사망신고를 하게 되면 고인은 그 주소지에 말소자로 따로 등록이 된다. 따라서 당연한 얘기지만 함께 살던 가족이라도 사망신고 후엔 이름이 함께 있는 등본을 떼는 건 불가능하다.
그날은 나른한 햇살이 늘어지게 민원실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오후였다. 내 앞으로 사망신고를 하러 온 남매가 섰다. 30대로 보이는 핼쑥한 남매는 말이 없었고, 조용히 서류들을 작성했다. 일련의 업무처리가 끝나고 혹시 더 필요한 게 있는지 물었다. 여동생은 등본을 한 통 떼어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걸 한참 말없이 바라보다 오빠에게 말했다.
"이제...우리 둘 뿐이네 여기..."
그 덤덤한 말을 타고 날아온 그녀의 꾹꾹 눌러진 울음 때문에 나는 그들의 사정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참 이상한 일이다. 내가 받은 사망신고 건수가 셀 수도 없는데 몇 년이 지난 지금도 그녀의 목소리와 그 말이 잊히지 않는다.
그리고 또 기억에 남는 일은 남편을 사망신고하러 온 아내였다. 부부는 30대였다. 아직 아이가 어려도 너무 어렸다. 시간이 너무 지나 기억이 자세하진 않지만, 그때 내가 임신부였던지라 서류상 자녀의 나이를 보고 속으로 너무 놀랐던 기억이 있는데 아마 두돌이 갓 지난 정도였던 것 같다. 아내는 혼자 왔다. 신고서를 입력하다보니 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은 스스로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는 이렇게 젊은 나이에 아내와 아이를 두고 그런 선택을 해야 했을까. 남겨진 아내는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앉아있을까. 가끔 내가 어떤 표정과 말투를 지어야 하는지 고장이 날 것 같은 때가 있는데 이때가 그랬다. 감히 위로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아무런 감정도 없이 마치 사망신고는 그저 나의 일일뿐이라는 느낌으로 감정 없이 행동하는 게 죄스러운 기분이 들 때. 물론 그 사람들은 내게 정작 아무런 관심도 없겠지만.
어느 날은 복지팀을 통해 나에게 연락이 왔다. 병원에서 곧 돌아가실 분이 있는데 자녀분하고 연락이 안 되니 연락처를 알려달라는 말이었다. 요새는 개인정보 때문에 그럴 수는 없는 일이지만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일단 그 자녀분과 통화해보겠다고 전한 뒤 검색을 했다. 자녀 분은 거주불명자였다. 생각해 보니 얼마 전 동대본부에서 예비군 훈련 미이수 문제로 행방을 찾던 사람이기도 했다. 당연히 연락처는 수신 불가였다. 내 선에서는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며칠 뒤 다른 주임님이 접수한 서류 중에 그 사람 이름이 있었다. 사망자 재산조회 신청서를 작성하고 간 것이다.
"주임님! 이거 그때 그 분인데, 아버지 결국 돌아가셨나봐요.."
"아이고..그 사람이야? 상 당한 사람 같지 않게 기운 넘치길래 서류 받으면서도 좀 의아해서 기억나."
"네에? 그럼 상속받을 재산 때문에 즐거운 거예요?"
"뉘앙스로는 빚이 혹시 있을까봐 그런 것 같더라고. 뭐가 있는지 알아야 자식도 대처를 할 수 있으니까. 뭐..가족이라고 또 다 똑같이 가족이 아니니까."
그렇다. 세상엔 다양한 모습의 가족이 있고 각자의 사정들이 있다. 그러니 함부로 미루어 추측도, 판단도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래서 오래 일한 주임님들은 대개 표정도 동요도 없는가,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나도 언젠간 그렇게 무감해지는 날이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