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2학년, 9살이었던 어리고 순수했던 나의 모습 중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장면은 딱 한 가지다. 그때의 모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날 나는 감기가 심하게 걸려 몸이 아팠고, 또 하필 그날은 시험 전날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초등학교 2학년 아이에게 무슨 시험이 그렇게 의미가 있었나 싶다. 내가 타고나길 그랬는지, 아니면 가정환경이나 학교생활을 통해 길들여진 성향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당시 어린 나에게는 주어진 일을 최선을 다해 완수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엄마가 심부름을 시키면 중간에 한눈팔지 않고 오로지 그것만 집중해서 했고, 과제가 생기면 무조건 그것을 먼저 끝내고 놀았던 아이였으니 말이다.
그날 나에게 주어진 일은 시험을 잘 봐야 한다는 것이었고 이를 위해 나는 몸이 아픔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공부해야 했다. 밤 9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침대에 엎드려 책을 붙들고 시험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감정은 커가면서 숱하게 겪었던 감정과 일치했다. 그 감정은 이후 학창 시절에 있었던 매 시험마다 찾아왔고, 내 인생의 첫 면접날 또는 입사 후 중요한 회의 전과 같은 순간에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아홉 살 나이에 처음 배웠다. 삶에서 어떠한 중요한 일이 생기면 그것을 얻어내기 위해서 또 다른 희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일은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닌 일들이었는데 그 순간에는 항상 중요한 일들이 있어왔고, 그때마다 그것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는 관념은 그때부터 내 안에 자리 잡아가게 된 것 같다.
담임 선생님께서는 학교 일과가 끝나고 아무도 없는 교실에 나를 따로 부르셨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전교에서 3등을 했다고 하시며 칭찬하셨고, 문화상품권을 손에 쥐어주셨다. 내가 처음으로 잘한 일이었고,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었지만 나는 그때의 나를 생각하면 가여울 따름이다. 부모님께서는 주말마다 나를 데리고 전국 각지로 여행을 다니며 나에게 좋은 추억을 선물해 주셨고, 외동이었던 나는 친언니, 동생처럼 지내는 친구들과 함께 보낸 행복한 시간들이 많았을 텐데도 내 기억 속에 그 어떤 다른 장면도 남아있지 않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잘 본 것이 그 어린 나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인상 깊었던 일이었다. 내가 또래 다른 친구들의 시험 점수를 앞질렀다는 것이 가장 크게 칭찬받은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니 왠지 모르게 씁쓸했다. 그때 이후로 나에게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시험을 잘 보는 것이 '성취'해야 하는 일이 된 것 같다. 무엇이든 성취를 해야만 하고 그래야 내가 발전하는 삶을 살며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내 마음 안에 품어왔나 보다. 숱한 방황을 겪으며 목표를 하나씩 성취할 때마다 나는 더 행복해져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나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생각해보니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한 번 곰곰이 들쳐보면, 그 시절 나라는 아이가 어떤 것을 경험하고 느꼈는지를 통해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내가 겪고 있는 힘든 상황은 분명 마음속에서 내가 만들어낸 현실인데, 어떤 것이 원인이 되었는지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성취하는 삶을 살아서 나는 지금 행복한가에 대해 생각해보았을 때, 난 이제 성취라는 것이 지긋지긋하다. 무언가를 목표로 하고 성취하는 것 자체가 나에게는 늘 미래에 초점을 두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온전히 현재에 존재하며 행복을 느끼는 것이 더 가깝게 느껴진다. 나에게 목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목표는 나에게 성취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 목표를 성취한 나의 모습이 지금 나에게 없는, 나와는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그 목표를 달성하지 않으면 내가 미완성이었지만, 지금은 나 자체로 온전하다. 그 목표는 이미 내 안에 있기 때문에 나는 더 이상 미래가 아닌 현재에 살 수 있다. 난 이미 그것을 내 마음 안에서 이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