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아흔여섯 번째
그 사람과 아이가 손을 잡고 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따라가고 있었다. 점점 거리가 멀어지길래 난 그들을 불렀다. 하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몸 안에서 울리는 큰 소리는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들에게 닿지 않았다.
잠깐 기다려 같이 가야지
겨우 나온 삐져 나온 소리를 붙잡고 다시 이야기했다. 마침내 그들은 발걸음을 멈추었다. 눈코입도 없는 작은 얼굴을 가진 작은 아이가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퍼뜩 잠에서 깨어났다. 버스를 타고 있는데 어디로 가는 버스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내 옆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난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떤 여자가 내 옆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여기는 주사를 맞는 곳이에요라고 말했다. 내가 말했다. 주사요? 저 지금 버스 안인데요. 간호사는 웃으면서 다시 말했다. 주사 다 들어갈 때까지 조금 쉬세요. 링거 떨어질 때쯤에 제가 다시 올게요. 큰 덩치의 웃음 좋은 간호사가 날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니에요. 그럼 전 자리 옮길게요. 안전벨트가 꽉 조여져 있다. 난 자리를 옮길 수가 없었다. 나는 황급히 간호사의 옷을 잡았다. 조금은 진지한 얼굴로 돌아서는 간호사에게 나는 물었다
여기 어디로 가는 버스예요?
다시 내가 눈을 떴을 때 난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간호사는 없었다. 내 옆에는 주름진 커튼이 반쯤 쳐져 있었다. 하얀 천장, 노르스름한 커튼, 침대들, 사람들.
나는 여기 왜 누워 있는 걸까. 분명 나는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작은 협탁에는 내 가방이 놓여 있었다. 어디선가 오징어 냄새가 났다. 꼬리꼬리한 그 냄새. 그리고 큰 소리가 들렸다. 저리 가라고 이것들아 저리 가라고. 우당탕하는 소리, 간호사들의 속삭이는 듯 강인한 목소리가 공간 전체에 퍼져나갔다.
일어나려고 했는데 손발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천정을 보면서 팔다리에 힘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공간은 조용해졌다. 그래도 난 가만히 누워서 기다렸다. 돌아와야 할 것은 힘뿐만이 아니었다. 기억이 돌아와야 어디로든 갈 수가 있다. 분명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버스를 타고 가고 있었는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시 들리는 소란스러움.
이 술은 어디서 나신 거예요. 6시 안 돼요. 내 거라고. 뭔가 계속 넘어지는 소리. 그 와중에도 오징어 냄새는 다시 코에 쏙 들어왔다.
어렸을 때 어물전을 한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사업을 전전하시던 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시장 한구석에 마른 해산물을 파는 어물전을 내었다. 갑작스러운 가게 일에 우리 가족은 조금 의아해했다. 물류사업을 하시던 분인데 어물전은 전혀 어울리지가 않았다. 아버지는 어물전을 하면서 마른 멸치나 명태 등 많은 해산물을 가지고 왔고 어머니는 여러가지 반찬으로 만들어 주셨다. 오징어를 구워 먹으면 정말 맛있는데 아버지는 오징어는 가지고 오지 않으셨다. 왜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푸념은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일을 하러 가는 건지 뭘 하러 가는 건지 매일 그 가게에 나갔다. 난 그 가게가 싫었다. 비릿한 냄새가 났다. 그 냄새가 내 보통의 삶을 바닥으로 끌어내렸다. 온몸에서 비린내가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어물전에 항상 멍하니 앉아 게시던 아버지의 모습. 어딜 보는지 알 수없던 그 눈빛이 잊히지 않는다.
지금 여기 오징어는 없을 텐데.
그래 기억이 났다. 난 아버지의 묘에 가고 있었다. 몇 년을 가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한탄을 듣다 못해 다녀오겠노라 했었다. 갑자 끊어지는 기억 때문에 운전을 할 수 없어 버스를 타기로 결심했다.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다시 버스를 타고. 한 참을 가다가 어쩐 일인지 이곳으로 와 버렸다.
아버지의 묘는 공장으로 둘러싸인 산중턱에 있다. 마을버스를 타기 전에 작은 가게에서 마른 오징어 하나를 샀다. 비닐에 담긴 말린 오징어 여러 마리중에 하나를 꺼내서 내게 주었다. 소주도 한병 주세요. 그래 그 냄새는 내 가방 안에서 나는 냄새였다.
그래서 쓰러져 있어서 응급차로 옮겨왔어요. 몸은 좀 괜찮아요? 수액을 다 맞을 때까지 누워계시는 게 좋아요.
왼손등에서 뭔가 뽑아져 나와 링거까지 연결되어 있다. 투명하고 긴 호스. 난 다시 눈을 감았다. 밖이 깜깜해질 때까지 기다렸다. 간호사가 와서 링거를 보았다.
이제 괜찮아지셨죠? 현기증이 오신 것 같은데 몸 조심하세요. 수납은 입구에서 하시면 되고요.
비틀거리면서 일어났다.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수납을 하고 나왔다. 내가 모르는 동네였다. 난 어디서 어떻게 쓰러져서 이곳에 오게 된 걸까. 그리고 우리 아버지는 어디 있는 걸까. 병원 주변은 온통 산이다.
난 갈 곳을 잃었다. 모든 갈 곳을 잃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하려고 했지만 핸드폰은 보이지 않았다. 오징어 냄새가 나는 가방과 깜깜한 길만 있었다. 사람도 없고 택시도 없고 자동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좁은 길을 조금씩 조금씩 걸어갔는데, 멀리서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그래 일단 이거라도 타고 나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버스를 기다렸다.
오지 않는 버스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온몸이 추워졌다. 가방을 꼭 끌어안고 주변을 살펴보니 뒤 유리창에 노선도가 붙어 있었다. 한참을 노선도를 보며 생각했다. 마침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잊어버렸다.
아빠, 요즘은 어디에 계세요? 난 어디로 가야 할까요? 언제쯤이면 여기서 나갈 수 있어요?
칠흑같이 어두운 밤, 버스는 오지 않고 오징어 냄새는 코 속에서 사라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