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수면아래 Jun 30. 2024

목이 부러진 콩나물 국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아흔일곱 번째

선풍기의 목이 한쪽으로 걸려서 딱딱하는 소리가 난다. 오래된 선풍기. 아침부터 집안은 열기로 가득하다.


목이 부러져서 살짝 올려놓고 그냥 쓰고 있다. 회전을 시키면 한쪽 끝으로 가서 딱딱 소리가 난다. 선풍기 바람을 좋아하지 않아서 항상 회전모드를 사용하지만 한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다. 모든 것이 새것 같은 우리 집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오래된 물건이다. 유일하진 않구나. 내가 있으니까.


그 사람이 와서 목을 부러 드렸다. 내가 그 사람의 집에서 다른 사람과 있던 날, 집 밖에서 울부짖던 그 사람.

내가 열어준 문으로 들어와서 나를 때리고, 말리던 다른 사람을 밀어버리고 선풍기를 집어던졌다. 찬장 서랍도 열어서 접시를 다 집어던지고 그나마 하나 있던 작은 밥상도 다리 하나를 부러뜨렸다


그리곤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어떻게 네가 나한테 그럴 수가 있냐고 어떻게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냐고.


그 사람은 뭔가를 착각하는 듯하다.  우리는 멋지게 헤어졌는데.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뉴요커처럼 웃으면서 서로 인사했는데 그날 밤에는 아침막장드라마로 돌아왔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김치로 싸대기를 때렸어야 했다. 뭐가 되었든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는 밤이었다. 같이 있던 사람은 어느 순간 나가서 없어졌고 한없이 울기만 하던 그 사람과 나는 새벽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있었다


술냄새가 옅어지자 그 사람은 일어나서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다가왔다. 난 보란 듯이 가장 좋은 옷으로  갈아입고 겉옷과 가방을 챙겨서 집을 나와 회사를 갔다. 내 어깨를 잡는 그의 손을 조용히 떼어놓았다. 그 사람과 한마디도 하고 싶지 않았다.


회사를 가는 길에 24시간 문을 여는 콩나물국밥집이 열려있었다 말쑥하게 차려입는 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는 것이 느껴졌다


주문한 콩나물 국밥은 5분도 걸리지 않아 내 테이블 위에 올려졌다. 겉절이 하고 마늘쫑 그리고 콩나물 국밥.

펄펄 끓는 뚝배기에 콩나물이 가득 들어있었다. 아주머니는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앞치마를

가져다주었다.


뜨거운 국을 호호 불러가며 먹기 시작했다. 콩나물국의 시원하지만 뜨거운 국물이 몸속으로 들어가자 땀이 나기 시작했다. 밥까지 먹을 기분은 정말 아니어서 국물만 계속 떠먹었다. 콩나물의 고소한 맛. 약간은 비리기도 한 피맛과도 다르지만 같은. 몸 안의 모든 피가 콩나물국물로 바뀌는 듯한 느낌, 정말 뜨거운 날이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열기가 가게 안까지 들어왔었다.


일어나자마자 집안 창문을 모두 열었는데도 열기가 뜨거워서 창고 구석에 있던 선풍기를 꺼냈었다. 십몇년이 된 그 선풍기는 여전히 잘 돌아갔다. 다만 한쪽방향의 끝까지 돌아가면 딱딱 소리를 내며 다른 방향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구석이 조금 떨어져 나간 선풍기 날개는 돌 때마다 이상한 바람 소리를 냈다. 부두웅부두웅.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이해를 못 하겠다. 부두웅부두웅.


선풍기 목에는 노란색 테이프가 너덜너덜 붙어 있다. 잊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이사할 때마다 가지고 다녔다. 부러진 목을 테이프로 붙여 흔들리지 않게 고정하고 혹여나 부서질까 봐 조심히 가지고 다녔다. 나와 만났던 수많은 사람들은 부모님이 물려주신 유물인 줄 알았다. 그렇다고 했다. 설명하기는 더 힘든 일이었다.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나에게 말을 하던 선풍기를 껐다. 넌 죽을 수 없어. 영원히 나와 함께할 거야.


아침부터 이런 열기라니 올여름은 어떻게 지나가야 할까. 무수한 유령들은 내게 차가운 냉기를 선사해 줄까.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 지하상가에 있는 콩나물 국밥집에 들어갔다. 곧 콩나물 국밥이 나왔고 난 아삭한 콩나물 머리부터 먹기 시작했다. 콩나물 국물이 내 피를 바꿔가기 시작한다.


더 이상 나에게 화를 내는 사람이 없다. 나를 보고 울며 절규하는 사람도 없다. 그러자 나의 자아들은 매일 같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자길 봐달라고 잊지 말라고 나쁜 기억이라도 찾아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조용히 넘기는 콩나물 국물에 씻겨 내려가길 바랐다.


오늘도 실패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아우성들을 안고 회사로 가는 엘레베이터를 탔다, 서늘한 에어컨 바람이 내 솜털들을 곤두서게 만들었다. 누군가 나에게 속삭이듯이 말했다


엄마 이제 나는 죽는 거야?


선풍기는 아침부터 그 말을 하고 있었나 보다. 부두웅부두웅.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는데 누굴 용서하지 않아야 하는 건지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그 작은 목소리만 날 따라다닌다. 부두웅부두웅.




작가의 이전글 칠흑같이 어두운 오징어의 맛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