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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Jul 03. 2024

생명의 맛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아흔여든 번째

드디어 바다에 다 왔다. 가까운 바다인데도 운전을 할 수 없어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다시 한참을 걸어서 바다에 왔다.


바닷가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흐린 날이라고 해서 사람 없이 한적한 바닷가를 생각한 나의 착각이었다. 그래 여름이었지.


파라솔로 가득한 해변가를 따라 계속 걸었다. 무얼 하러 난 이곳에 온 걸까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하지만 출발할 때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파라솔이 끝나고 한적한 바닷가가 나왔다. 앉아도 내가 주목받지 않는 그런 자리였다. 이제 비는 오기 시작했지만 더운 날었다. 가방 안에 물이 있나 찾아보았다. 


그런 게 있을 리가 없잖아. 


내 가방 안에는 작은 풍선이 하나 들어 있었다. 지름이 한 20cm 정도 되려나. 두 세 뼘 정도 되는 그런 작은 풍선이었다. 영화 보고 난 뒤 선물로 받은 것인지 유명한 만화영화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먼지가 잔뜩 묻은 더러운 풍선. 나는 풍선을 입으로 불어 동그랗게 만들었다. 그리고 손으로 먼지를 닦아내었다. 이런 곳에 가족과 같이 오지 않으면 이상한 나이로 보일 나는 풍선을 가슴에 안고 쪼그리고 앉았다.


사람들의 웅성대는 소리, 개 짖는 소리, 끊임없이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주기적으로 그 소리를 파묻어 버리는 파도 소리. 모든 것들이 유리벽밖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바로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노란색 티셔츠를 입은 아이들이 티비 화면처럼 보인다. 밖에 있기엔 덥지만 물속에서는 아직 추운 날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너무나 즐겁게 바다로 뛰어들고 파도에 몸을 맡기고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그들 눈에 이 바다는 아름다울까. 


해가 뜨지 않아서 어두침침한 서해 바다는 무거운 심연처럼 보인다. 아이들만 없으면 거대한 어둠이었을 그런 바다. 나는 항상 탁한 그 바다가 무섭다. 그 알 수 없는 깊이. 계속 보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다. 그러면서도 바다를 보고 있으면 특히나 이렇게 검은 바다를 보고 있으면 걸어가 보고 싶어 진다. 하지만 그럴 용기가 없다. 달콤한 유혹이 있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어두운 색은 항상 날 밀어낸다 


아무리 비가 오는 흐린 날이 라고 했지만 여름이었다. 나는 청바지에 긴팔을 입고 모자를 쓰고 혼자서 동그란 공을 하나 들고 해변가에 앉아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끔 날 쳐다봤다. 하지만 누군가와 같이 왔다가 혼자 앉아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난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느 순간 내 발목은 물에 잠겨 있었다. 나는 내 의지와는 다르게 한 발짝 한 발짝씩 바다로 끌려 들어갔다. 기억이 났다. 이 공을 가지고 온 이유가. 항상 바다에 들어가다가 무서워서 다시 나왔다. 가슴까지 물이 차면 허둥지둥 다시 해변가로 나왔다. 그래서 오늘은 풍선을 가지고 왔다. 천천히 물에 들어가서 풍선을 잡고 두둥실 떠내려갈 생각이었다. 그래서 발이 닿지 않는 깊은 곳으로 가서 살짝 힘을 풀면 될 거라 생각했다 


가슴에 풍선을 품고 얼마나 걸었을까 발이 바닥에서 떨어졌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파도에 몸을 맡겨 떠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풍선에서 팔을 놓쳐 물에 잠시 가라앉았다. 코가 찡하도록 쓴 소금물이 머리속으로 밀려들어왔다. 허겁지겁 다시 물 밖으로 나와 풍선을 단단히 잡았다. 눈물과 콧물이 쏟아져 나왔다. 


멀리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조금씩 조금씩 멀어져 간다. 풍선을 꼭 끌어안고 가만히 있는데도 바다는 나를 끌어당긴다. 하지만 손을 놓지 못한다. 더욱더 꼭 끌어안고 난 멀어져 간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해변가에 사람들이 거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다시 해변가로 갈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나와 시꺼먼 바다만 있었다. 무서웠다. 이 알 수 없는 것으로 빨려 들어갈까 봐. 손을 놓을 수가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하는 겁쟁이가 풍선을 안고 왜 바다로 왔을까. 눈물이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흐르고 손이 덜덜 떨렸다. 파도가 살짝 칠 때마다 폭포를 타고 지옥으로 떨어질 것 같았다. 내 몸안의 모든 물이 눈과 코를 통해 나오고 있었다. 


순간 어떤 사람이 노란색 튜브를 타고 나에게 다가왔다. 난 소리쳤다. 도와달라고. 살려달라고.  그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사람은 튜브를 타고 계속 나에게 일직선으로 다가왔다. 나는 파도 때문에 몸이 계속 돌아서 수평선을 봤다 해변가를 봤다 하면서 떠다니고 있었다. 어느 순간 노란색 튜브를 탄 그 사람은 내 바로 코앞까지가 있었다.


자 당황하지 말고 내 손을 잡아요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풍선을 두 손을 꼭 잡았다. 손을 뻗을 수가 없었다. 눈물때문에 그 사람의 손이 보이지 않았다. 그랬더니 그 사람이 그래요 공을 꽉 잡아요. 절대로 놓으면 안 돼요. 그러더니 내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나를 해변으로 데리고 갔다. 영원과 같은 시간이 흘러 나는 해변까지 이끌려 왔다.


해변가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주변을 몰려들었다. 그들이 보기엔 물놀이하다가 표류된 사람으로 보였을까? 이 여름에 청바지에 긴팔을 입고 풍선을 안고 바다에서 물놀이하는 사람? 그 사람에게 인사를 해야 되는데, 바닥에 주저앉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누군가 나에게 물 한 병을 건네어주었다. 그사람인지 다른 사람인지 알 수가 없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 될 것 같았는데 그 사람은 어느 순간 사라지고 난 혼자 풍선과 같이 해변 끝에 앉아 있었다. 생수 한 병과 계속 들이치는 파도에 끝에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내가 가져온 풍선은 다시 파도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난 그냥 해변가에 앉아서 바다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누군가가 준 작은 생수 뚜껑을 손으로 돌렸다. 물에서는 단맛이 났다. 너무나 달콤한 생수의 맛. 입안 가득한 짠맛에 천국과도 같은 단맛이 밀려들어 온다. 


나는 다시 살아남았다. 내일은 진짜 꼭 다시 병원에 가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람들이 날 바라보고 있을까 봐 계속 수평선만 바라보고 앉아있었다. 내일은 정말 병원에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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