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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면아래 Jun 19. 2024

햄버거의 왕

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아흔네 번째

마지막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혼재된 기억들은 자연스러워졌다. 머릿속에서 오고 가는 시간들을 굳이 구분하려 하지 않으니까 마음이 아프지 않다. 가라앉을 땐 숨을 멈추고 떠오를 땐 숨을 쉬면 된다는 걸 알았다. 내가 어떻게 하고싶다고 결심한다고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들어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게 가장 좋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8시가 훌쩍 넘어있었다. 이미 회사에 도착하고 일할 시간이었는데. 밤에 열어놓은 창문으로 아이들의 부산한 소리들이 들린다. 친구를 찾는 소리, 엄마를 부르는 소리. 아이들은 무채색의 세상에 색깔을 입힌다. 경험하지 못하면 알 수 없는 그 세상. 마치 TV에서 나오는 소리 같이 다른 세상에서 들려오는 색채의 소리.


요즘 아이들은 도시락을 싸가지 않는다는데 무엇을 먹을까 궁금해졌다. 가끔 뉴스에 보면 어린아이들 입맛이 서구화돼서 김치나 밥보다 피자, 햄버거를 더 좋아한다는 뉴스가 나오곤 한다. 삼사십 년 전에도 그런 뉴스가 나왔는데 그때 어린이였던 내 친구들은 지금은 김치나 국밥 없으면 못 사는 어른들이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도 피자나 햄버거 같은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좋아하지 않았다기보다는 제대로 된 맛있는 피자나 햄버거를 먹을 기회가 없었다. 좀 머리가 커서 처음 먹어본 햄버거는 생각만큼 맛있지가 않았다. 그때도 난 순대국밥 같은 걸 더 좋아했다.


제대로 햄버거를 먹어본 건 서울에 올라와서였다. 서울에는 다양한 햄버거 가게들이 있었다. 특히나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보던 햄버거 가게들이었으니 어떻게 기대가 안될 수 있겠는가. 이름조차 햄버거의 왕 아니던가. 두 군 거리는 마음을 가지고 안에 들어갔는데 메뉴가 너무 많아 정신이 없었다. 같이 들어간 친구가 내 것까지 주문한 후 우리는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 친구는 주문한 음식을 받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진짜 놀랬던 것은 햄버거가 충격적으로 크다는 것이었다. 고향에 있던 그 햄버거 가게는 손바닥 반만 했는데 이건 그 두 배는 되어 보였다. 종이 포장을 풀고 먹으려고 하니 너무 크고 두꺼워서 한입에 먹히질 않았다. 친구가 햄버거를 손가락으로 눌러서 살짝 얇게 만들어서 먹는 것을 보여주었다. 아하 그런 방법이 있구나. 한입 물었을 때 느껴지는 향은 내가 알던 햄버거가 아니었다. 고소한 빵과 달콤한 소고기패티가 웬만한 요리 부럽지 않은 맛이었다. 허겁지겁 다 먹고 나니 입 주변에 햄버거 소스가 잔뜩 묻어 있었다. 친구는 내 모습을 보고 깔깔대며 웃었다. 조금 창피한 마음에 얼른 입가를 닦아냈다. 나도 같이 한참을 웃었던 게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다양한 햄버거를 먹어보았지만 역시나 내 입맛에는 햄버거왕이 제일 잘 맞는 듯하다.  수많은 프랜차이즈나 수제버거들이 나오고 사람들은 줄을 서며 열광하지만 나는 잠시 흔들릴 때는 있어도 금방 다시 돌아오곤 했다.


햄버거를 오래 먹다 보니 먹을 때마다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곤 한다  햄버거를 같이 주문해서 깔깔거리며 먹던 친구는 이제 친구도, 아는 사이도 아닌 사람이 되어 버렸고, 처음 햄버거를 주문하지 못해서 쩔쩔매던 젊은이는 많이 늙어서 햄버거가게에 혼자 있으면 이상해 보일 나이가 되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더워 콜라를 먹고 싶었다. 외근지에서 지나가다 그 햄버거 가게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익숙한 키오스크에 사람들 몇몇이 주문을 하고 있었고 난 뒤에서 차례를 기다렸다.


내 차례가 되고 최근 즐겨 먹는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가게 안에는 젊은 연인들, 어린 학생들, 아이와 같이 온 부모 등등 누군가와 같이 햄버거를 먹으러 온 젊은 세대들로 가득했다. 구석 창가의 2인용 자리에 앉아서 주문을 기다리고 있는데 가게 안이 웃음소리로 가득해졌다. 고등학생들로 보이는 친구들이 햄버거를 먹으면서 뭐가 그리 웃기는지 깔깔거리고 있었다.


부럽다. 젊어서 큰 소리로 웃으면 생기 있고 주변을 밝게 만드는데 나이 들어 깔깔거리면 왜 주책맞다는 눈치를 받게 되는 걸까. 그리고 그런 것을 넘어 이제는 이런 곳에서 친구들과 깔깔거릴 일이 없어졌다. 기껏해야 밥집 같은 술집에서 만나 옛날 얘기를 하며 현재 세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진지하게 토론을 한다. 그 진지함이 세상 무엇 하나도 바꿀 수 없을진대 늙은이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한 얘기를 하고 또 한다. 나는 그 세계가 싫어서 따로 떨어져 나왔고 친구들도 더 이상 날 부르지 않는다.


난 홀로 떨어져 색채가 가득한 세상 구석에 조용히 회색빛으로 앉아있다. 들킬까 봐, 쫓겨날까 봐 숨죽이면서 이 공간에 녹아들기를 강하게 원하고 있다. 그립다. 이유 없이 웃던 그날들이, 그 친구들이, 그 시대가 그리고 그 색채의 존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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