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가지 요리, 100개의 마음. 여든네 번째
홍대에 내가 아는 일본식 라멘 가게가 있었다. 90년대 말 일본 문화가 전면 개방되면서 서울의 핫플레이스에는 일본 음식점들이 많이 생겼다. 그곳도 그런 곳 중에 하나였다. 지금 유행하는 완전 일본풍의 가게는 아니지만 한국 음식점은 아닌 것이 확실한 외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게 앞에 커다란 라멘그릇 모형이 있었고 라멘 그릇 위로 연결된 면과 그 위에 대형 젓가락이 있었다. 그리고 젓가락은 계속 상하로 움직이며 커다란 라멘그릇에 있는 면을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사람들은 지나가다 멈추어 서서 그 움직이는 초대형 라멘 그릇을 쳐다보았다.
그 가게는 당시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 알던 선배가 주방장으로 일하는 가게였었다. 사실 인사를 해본 적이 없어 주방장인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그렇다고 생각했다. 내 연인은 그곳을 소개해 준 것을 항상 자랑스러워했다. 자주 그곳에 갔서 이것저것 먹었던 우리는 나중에는 잘 먹는 메뉴가 정해져서 그것만 먹게 되었다. 미소라멘, 미니 챠수덮밥, 야채고로케 였다.
미소라멘은 일본 된장인 미소가 기본이 되는 라멘으로 육수에 일본식 된장을 살살 풀어 끌여서 내어준다. 미니차슈덮밥은 작은 공기 사발에 밥을 담고 양념된 구운 삼겹살인 차슈를 잘게 쪼개어 밥 위에 뿌려주는 단순한 덮밥이다. 그리고 고로케는 다들 아는 그 고로케이다. 라멘만으로는 살짝 부족했던 우리는(아니 그 사람은) 라멘을 두 개 시키고 미니챠수덮밥과 야채고로케 하나씩을 시켜서 나누어 먹었다.
사람 많고 정신없던 홍대 거리. 부글거리며 타오르던 밤들. 내 사랑했던 그 사람과 나는 자주 그 가게에 갔다. 가게에 들어가서 내가 자리를 잡을 때 그 사람은 항상 주방 쪽으로 가서 선배와 인사를 하고 가끔 알 수 없는 웃음을 터트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주방에서 일하는 선배의 웃는 얼굴과 그 사람의 뒷모습이 마치 드라마 속의 한 장면같이 머릿속에 각인이 되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서비스로 무엇인가를 더 받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행위는 그 사람을 꽤나 만족스럽게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이나 그때나 마찬가지로 유행은 어느덧 끝나고 우리는 다른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게 무엇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그 라멘가게는 완전히 잊혀졌다.
시간이 한참을 지나고 혼자 홍대에 약속이 있어서 길을 가고 있는데 그 가게 앞을 지나게 되었다. 가게 앞에 있는 커다란 라멘 모형은 일부가 부서져서 젓가락만 허공에서 조금 움직이고 있었고 낙엽과 쓰레기가 라멘 그릇 안에 가득 들어 있었다. 간판은 관리가 안된 지 한참이 된 듯하였고 유리창에 붙은 메뉴와 광고지들은 제 모양을 유지하지 못하고 너덜 거리고 있었다. 가게 안에 불은 켜져 있었었지만 사람은 아마도 없었다. 잠깐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어쩐지 저쪽에서 날 바라보았을 때가 무서워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내가 망하게 한 가게도 아닌데 이상하게 그 잔상이 오래도록 남았다. 그로부터 또 한참을 지난 후에 다시 그 골목을 지나갈 때 그 가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미소라멘에 대한 내 기억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최근 한국어가 하나도 안 써져 있는 일본식 인테리어를 한 라멘집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또 사라지고 있다. 대부분 돼지고기 육수를 기본으로 하는 돈코츠라멘을 팔고 있었고 미소라멘을 찾기 어려웠다. 그나마 있는 미소라멘들은 구색 맞추기로 돈코츠라면 육수에 된장을 조금 풀어 미소라멘이라며 내어 주었다.
좋아했던 것도 아니지만 막상 찾았을 때 없으면 아쉬움과 그리움 밀려오곤 한다. 몇 번이나 미소라멘을 찾아서 돌아다녔지만 딱히 만족스럽지 않았다. 심지어 일본에 출장 갔을 때 먹었던 미소라멘조차 내가 알던 미소 라멘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미소라멘은 정말 미소라멘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그때 그곳에서 팔던 것이 무엇이던 간에 세월과 함께 잃어버렸다. 아마도 그 사람의 미소였을까? 그리고 그런 것은 다시 찾으면 안 된다. 사람도 음식도 추억도 지난 간 모든 것은 지나간 채로 남겨놓아야 한다. 그 사람은 왜 나와 결혼을 했었을까. 어차피 떠날 것이었으면서. 모든 것은 기억과 함께 쇠퇴하면서 변해간다. 날 사랑한다고 했었는데 변치 않을 거라고. 희미해지는 기억은 삶의 마지막 선물 같다.
그런 단순한 사실을 몇십 군데 라멘집을 전전하면서야 다시금 깨달았다. 몇 번이나 그런 적이 있었다. 현실이 만족스럽지 않을 때마다, 현재가 희미해질 때마다 난 과거 속의 무엇인가를 찾아 헤매고 계속 실패한다. 찾은 듯하다가도 다시 잊어버린다. 다음에도 난 이 사실을 잊고 또 헤매일 것이다. 하지만 뭐가 상관있을까. 상심으로라도 채워지는 게 텅 빈 것보다 낫다. 헤매고 또 헤매어서 텅 빈 곳에 계속 발자국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