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남기고 간 생각들.
태풍이 지나간 후다. 제주도, 서해안, 부산 등 우리나라 해안 곳곳에 쓰레기들이 쌓여 있다는 소식이 연일 뉴스에 보도됐다. 냉장고며, 건축 자재, 부서진 스티로폼 어구, 생활 쓰레기까지… 일명 ‘태풍 쓰레기’라 불리는 온갖 쓰레기들이 ‘후폭풍’처럼 자연을 덮쳤다. 백사장 모래 범벅으로 아무렇게나 엉켜 있는 쓰레기 더미 사진을 보며, 태평양 한가운데 위치한 미드웨이 섬에 사는 그 동물이 떠올랐다.
알바트로스. 바람에 몸을 맡기고 수 개월을 날며 먹이 활동을 하는 이 새는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조각이 가득한 배 속의 사진으로 더 유명하다. 알바트로스 어미가 새끼에게 플라스틱 조각을 토해내어 주는 다큐멘터리 속 장면은 가볍고 하찮은 플라스틱 조각이 얼마나 포악하게 생태계에 파고들었는지 보여줬다. 쓰레기 섬, 바다.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이 인공물과 자연은 어떻게 뒤엉키게 된 걸까.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쓰레기 더미가 대신 답하고 있다.
바다 쓰레기는 해안가나 바다 위 어선에서 불법으로 투기하는 것뿐만 아니라, 장마철 폭우나 태풍에 의해 육지에서 바다로 흘러드는 것 또한 일컫는다. 도시 한가운데에서 소비된 쓰레기들이 바다에 버려지는 것이다. 크기가 작고 가벼운 비닐이나 플라스틱 조각은 평상시에도 바람에 날리거나 배수로를 통해 바다로 흘러들기도 한다. 내가 버린 플라스틱이 제대로 수거돼 처리되지 않을 경우 어떻게든 바다로 이동하고, 이는 파도처럼 또 우리를 덮친다.
플라스틱 쓰레기는 바닷속에서 잘게 쪼개져 해류를 타고 이동하면서 질병을 옮기고 생태계를 위협하기도 한다. 플라스틱 병뚜껑에 달라붙은 미생물 중에는 산호에 치명적인 질병을 옮기는 균도 있다. 미국의 한 연구팀이 조사한 결과, 111억 가지 이상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아시아 태평양 바닷속 산호 군락지의 1/3을 덮고 있으며, 산호가 플라스틱 쓰레기 조각에 접촉할 경우 질병 감염률은 4%에서 89%로 증가할 정도로 치명적이라고 한다. 바닷새 100만 마리, 고래나 바다표범과 같은 해양 포유동물 10만 마리. 매년 바다에 기대어 사는 이만큼의 생명이 바다 쓰레기에 의해 생을 마감한다.
15억 톤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바다에 있다. 세계경제포럼에 따르면 1분에 쓰레기 트럭 한 대씩 바다에 버려진다. 2050년이 되면 물고기 무게보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더 무거워진다. 우리나라 바다도 심각하다. 2016년 국가 해안쓰레기 모니터링 결과, 해안가에서 수거된 쓰레기 중 플라스틱류와 스티로폼을 합하면 70.9%나 된다. 소비하고 폐기하는 과정에서 쓰레기를 잘 회수하고 재활용하기 위한 시스템이 존재하지만, 바람이나 폭우, 태풍과 같은 자연현상 앞에서 인간의 시스템은 속수무책으로 허점을 드러낸다. 최대한 덜 만들고 덜 쓰는 사회로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내 앞에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연결돼 있고, 내가 버린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안다면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변화를 위해 행동해야 한다. 북극곰, 펭귄, 고래를 그리고 바다에 기대어 사는 수많은 생명을 지키고 싶다면, 이제는 용기를 내어 내 삶을 바꾸는 선택을 해야 한다. 지금부터라도 1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실천을 시작하면 어떨까.
*가톨릭 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