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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 Aug 31. 2020

창작의 고통은 근원

창작의 근원은 고통?



*제목이 이 모양인 것 미리 사과드립니다. 본문의 글과 관계있는 해프닝입니다. 



나는 고통스러울 때 글이 잘 써지더라. 아마 막 써져서 그런 것 아닐까 싶다. 막 써진다는 말은, 그때의 감정에 따라 아주 솔직하고 거침없는 막말이 터져서 수정하거나 다음의 말을 생각할 필요 없이 빠르게 써내려감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사실은 고심하고 플롯을 잘 짜서 쓰는 글보다 이럴 때 써내린 글이 훨씬 마음에 드는 때가 많다. 단점이라면 컴퓨터 수업이 초등학교 정규수업에 편성되어있던 세대지만 독수리 타자라 오타가 많이 나긴 한다. 글이 잘 써지는 고통스러운 상황이라 함은 이렇다 : 남자친구가 바람을 피웠을 때, 아주 깊은 우울에 빠져서 눈물이 펑펑 날 때, 어떠한 사회적 이유로 세상에 매우 화가 났을 때 / 뜨거운 사랑의 감정이 막 움터 몸둘 바 모르겠어 발 동동 구르는 때, 기뻐서 으아악 소리를 지르고 싶을 때, 혹은 밤을 새서 머리가 텅 빈 것 같은데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이 복잡히 떠오를 때. 


지금의 나는 마지막 상황이다. 밤을 샜다. 내가 감각할 수 있는 건 두 눈과 빛나는 모니터 뿐이다. 몸뚱이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아 이따금 머리를 흔들어 본다. '창작의 근원은 고통'이라는 표현은 내가 거의 매번 글을 쓸 때마다 몸부림치며 외침하는 것이다. 제목을 쓰고 보니 헛나온 말이 웃겨서 그대로 발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 밤을 새게 된 발단은 이렇다. 요즈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던 생활패턴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어 새벽에 잠들고 늦은 오전에 일어나게 되다가, 아침에 자고 오후에 일어나게 되다가, 결국은 아무 때에 자고 아무 때에 일어나는 막나가는 인생으로 치닫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오늘은 오전 8시쯤 잠들었어야 하는데, 며칠 몸살감기에 시달려 병원을 갈 수 있는 가장 빠른 시간인 월요일 오전 8시 반을 기다려 병원을 다녀오는 길에, 오랫만의 외출이 너무 반가워 커피도 한 잔 하고 천천히 동네 산책을 했기 때문이다. 병원 가던 길에 지나가는 할머니한테 예쁘다는 말도 들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 할머니도 예뻤다. 그리고 병원 간호사 선생님이 주사 놓기 전에 엉덩이도 얼마나 찰지게 때리시던지 이때까지 맞아본 엉덩이 중 최고였다. 주사 맞는 느낌도 안 들었다. 난 기분 좋으면 잠이 깬다... 사실 막상 월요일이 되니 병세가 많이 호전된 느낌도 들었다. 한적한 공원에 가서 책도 읽으려고 가방에 위화의 '제 7일'을 넣고 나갔지만 동네 한 바퀴 도니 식은땀이 주룩 흐르고 무릎에 힘이 풀려 후다닥 집으로 돌아왔다. 좀 괜찮아 진 거 같아서 괜히 깝쳤다. 돌아오자마자 청바지를 벗어던지고 꿀물을 타서 아침약을 먹고 엄마한테 전화해 징징거렸다. 약을 많이도 주셨다. 몸살감기약 아침 점심 저녁 세 끼에 취침 전에 먹는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를 포함하면 하루에 열네 알씩 먹어야 한다니... 무서우니 당분간 오메가3와 비타민과 유산균은 생략이다. 입에 넣는 동그란 캡슐을 최대한 줄여야지. 약 먹기 귀찮으니 빨리 나아야 한다.


흠. 글이 두서없이 아무말 대잔치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되돌아보지 않을 테다. 지금의 내 머릿속을 깨끗하게 비워내는 중이다. 나는 남들을 위한 이 사회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돈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을 떠나 필수적인 것이지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것으로 가치를 만들어낸다. 남들을 위한 글을 쓰고, 남들이 입을 옷을 만들고, 남들이 먹을 커피를 내려 돈을 번다. 왜 내가 먹을 커피, 내가 입을 바지, 내가 재밌는 글을 쓰는 건 아무도 돈을 안 줘? 왜인지 알긴 아는데 이해 안된다고 우길 거다. 고집불통으로 사는 게 행복하다.


짜피 돈 한 푼 안들어오는 내 글은 나를 위한 가치로만 쓰겠다. 고통스러울 때 글이 잘 써지는 이유는 사실 창작의 근원은 고통이라서가 아니다. 글이 고통의 배설이기 때문이다. 배설을 통해 사람은 해결을 보는 거고, 난 시원한 배설 중이고, 카타르시스! 자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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