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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Nov 21. 2020

※ 이 글은 소설의 형식을 빌려썼습니다. 실제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어린이 집은 복지관 3층에 있다. 1층과 2층은 장애 아동을 위한 치료실이다. 인지치료, 작업 지료, 감각통합치료 등이 이루어진다. 아이는 어린이 집에 있다가 치료를 받으러 내려간다. 어린이 집으로 선생님이 왔다. 아이는 선생님의 손을 잡고 1층에 있는 치료실로 내려갔다. 아이의 표정은 미세하게 굳어있었으나 그 누구도 눈치 채지 못했다. 엄마였으면 알아챌 수 있었을 테다. 아니, 엄마가 옆에 있었다면 아이는 엄마에게 말했을 거다. 참지 않았을 거다. 수업 중에 선생님에게 똥이 마렵다는 신호를 보냈다. 선생은 알지 못했다. 아니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 수업이 끝난 후 아이는 냄새를 풍기며 나왔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엄마는 단번에 알았다. 아이가 똥을 쌌다는 사실을.


"아이가 똥 싼 거 아니에요?"

"네?, 똥 마렵다는 소리 안 했는데?"

"아니 잠깐만요."


엄마는 아이의 바지 안을 들여다봤다. 똥은 이미 굳었고, 단단히 팬티와 엉덩이를 이어주고 있었다.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는 선생이었다. 애써 감추려 하는 불쾌한 표정을, 엄마는 느꼈다. 엄마는 불쾌감을 느꼈지만,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똥  걸 몰랐다는 게 말이 되는지 따져 들고 싶었다.


치료는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된 공간에서 진행된다. CCTV도 없고, 창문도 가려놓는다. 엄마가 수업을 잘하고 있는지 들여다볼 수 없다. 아이가 엄마를 보면 수업에 집중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그럴 리가. 엄마가 계속 쳐다보는 것도 아니고. 그럼 CCTV라도 달아야 하는 거 아닐까? 장애가 없는 아이들의 수업이었어도 그랬을까? 어쨌든, 선생의 심기를 건드리면 수업 중에 아이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두려워 꾹 참았다.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어린이 집 화장실로 갔다. 옷을 벗기고 아이를 씻겼다. 딱딱하게 굳은 똥. 심장이 먹먹하다 못해 무거워져 명치를 찌른다. 웅성웅성. 밖에서 소리가 들린다.


"어! 무슨 냄새야? 안에 누구 있나?"

아이들이었다. 엄마는 흠칫 놀랐다. 떨어지는 땀을 무시한 채 아이들에게 최대한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 지금 쭌이가 똥을 싸서 안에 있어"

아이는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친구들 목소리가 들리자 기분이 좋았다. 웃고 소리 지르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쭌이가 똥 싸서 그런 거래~"

"쭌이 한 건 했네~! 우린 먼저 간다~!"

간다는 친구들의 말에 결국 쭌이는 엄마를 뚫고 밖으로 나갔다.


"야~ 쭌이~ 팬티는 입고 나와라~ ㅋㅋ"

친구들은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황급히 쭌이를 잡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쉽지 않았다. 땀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게 흘러나왔다.


쭌이네 집은 과소비와는 거리가 멀다. 아빠가 가끔 생각 없이 물건을 사긴 하지만 귀여운 수준이다. 자동차에 대한 욕심도, 명품에 대한 욕심도 없다. 끌고 다니는 자동차도 2008년 식이고 여기저기 긁힌 자국이 많지만 고치지 않는다.


쭌이는 엄마 젖을 잘 빨지 못했다. 당연히 분유도 잘 먹지 못했다. 젖병을 빨긴 빨지만 누나나 다른 아이들처럼 쭉쭉 분유를 빨아먹지는 못했다. '빨대컵'도 마찬가지였다.



'빨대컵'이 아이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발달 장애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부드러운 빨대, 딱딱한 빨대, 입 모양처럼 생긴 주둥이를 물면 나오는 컵, 버튼을 누르면 뚜껑이 열리며 빨대가 튀어나온 컵, 약국에서 주는 물약 통, 주사기, 숟가락. 쭌이와 맞는 빨대 컵을 찾기 위해 수없이 시도했고 시도한 만큼 확실해졌다. 쭌이는 발달장애가 있구나.


쭌이의 아빠는 육아휴직을 했다. 아내는 네 육아휴직의 목표는 쭌이 똥오줌 가리기다, 이것만 성공해도 네 육아휴직의 50%는 성공이야,라고 말했다. 야심 차게 도전했지만 쉽지 않았다. 이불에 매일  똥과 오줌이 묻었다. 1년에 한 번 할까 말까 한 이불빨래를 매일 했다.


'변기'가 아이와 잘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빨대컵'을 사듯 '변기'를 사기 시작했다. 누나가 쓰던 노란색 변기를 쭌이가 마음에 들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애든 어른이든 신상을 좋아할 테지. 뽀로로 변기를 새로 샀다. 엉덩이가 잘 맞지 않아서 일까, 조금 작은 사이즈의 변기를 샀다. 너무 끼어서 그럴까, 큰 사이즈의 변기를 샀다. 온 가족이 사용하는 변기를 사용하면 되지 않을까 싶어 변기에 끼우는 변기를 샀다.


엄마의 지인이 고민을 듣고 변기 하나를 추천했다. 양변기 미니어처. 생긴 것처럼 근사했다. 쭌이는 이 변기로 스스로 똥을 싸기 시작했다.


쭌이 가족은 여행을 갈 때, 다른 건 다 놓고 가도 이 변기는 챙겼다. 이미 출발해서 100km를 갔더라도 이 변기를 챙기기 않았다면 돌아왔다. 호텔 로비에서도, 콘도 로비에서도 트렁크 위에 이 하얀색 플라스틱 변기가 항상 올려져 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변기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갑자기 왜 이 생각이 나는 걸까. 이마에 땀을 훔치며 생각했다. 떨어지는 자존감을 부여잡았다. 그래. 그래도 이제 쭌이는 기저귀는 차지 않으니까. 위안을 해보려 했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차가운 어린이집 타일 위에 아까 불쾌한 표정을 한 선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보지만 떠나가질 않는다. 씨발년. 욕이라도 한 번 해 주고 싶지만 꿀꺽 삼켰다.


아이를 씻기고 밖으로 나왔다. 이 상황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는 기분이 좋아졌다. 당연히 그렇겠지. 딱딱히 굳어있는 똥을 엉덩이에 달고 얼마나 찝찝하고 불편했겠냐. 그런 줄도 모르고 집중 못한다고 애나 혼낸 건 아닌가 모르겠다.


치료실에 CCTV 의무화 청원이라도 한 번 넣어 볼까 생각해 봤지만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마당에 너무 힘들고 귀찮다. 다른 누군가가 좀 해줬으면 좋겠다. 하루 종일 아이와 붙어 있다 보면 내가 누구인지도 모를 지경이 되고 하니까. 아이 손을 잡고 하늘을 한 번 쳐다봤다. 젠장. 너무 밝다. 신랑이 퇴근이나 빨리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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