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한 베짱이 Oct 24. 2021

전복이 익어가는 시간

결과에 집착하려 애쓰지 않기

비건을 지향한 이후로는 가본 적이 없지만 그 전에는 가끔 비싼 오마카세 초밥집에 가곤 했다.


오마카세는 '맡긴다'라는 뜻의 일본어인 'おまかせ'에서 유래됐다. 대접받을 메뉴의 종류 및 그 요리 방식을 셰프에게 모두 맡기는 형식의 식당 또는 메뉴를 말한다. 점심시간에 팀장의 눈치를 보며 조금 일찍 사무실을 빠져나온다. 잰걸음으로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초밥이 몇 개 나오는지는 모르겠다. 광어, 참치, 성게알 등 좋은 초밥이 줄지어 나온다. 그 초밥집의 시그니처는 전복 초밥이다. 항상 오마카세의 마지막을 장식한다. 밥 위에 올려진 전복을 바라보고 그 위에 아쉬움을 발라 입에 넣고 나면 행복이 찾아온다.


전복이 너무 맛있어 어떻게 만드는 건지 물어봤다. 주방장은 싱긋 웃으며 "쪄요"라고 간단히 말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은 그리 간단하진 않았다. 3시간 동안 정종을 끓여 찐다. 전복 위에는 다시마와 무를 올려놓는다.


일요일. 첫째와 나가서 정종, 전복을 샀다. 굴밥을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 굴도 조금 샀다. 집으로 돌아와 전복을 깨끗이 씻었다. 교체할 때가 된 내 칫솔을 희생하기로 했다. 찜 솥에 정종을 1리터 붓는다. 센 불로 끓인다. 정종이 끓고 날아가는 알코올에 코 끝이 찡하다. 깨끗이 씻은 하얀 전복을 올리고, 다시마로 전복을 덮는다. 얇게 썰은 무로 다시마를 덮는다. 불을 줄이고 타이머를 3시간에 맞춘다.


굴은 소금물을 이용해 씻고 3~4차례 찬 물에 헹군다. 손이 시리지만 참는다. 밥 위에 굴을 올리고 채 썬 무를 올린다. 다시마 2~3장을 쌀에 꽂는다. 물은 조금 적게. 전복찜이 완성되기 30분 전에 굴밥을 불 위에 올린다.

완성된 전복찜과 굴밥이 상 위에 올라간다. 항상 제일 긴장되는 순간이다.

"음... 맛있긴 한데... 3시간 동안 힘들게 쪄서 먹을 정도는 아닌 것 같아..."

"아빠! 이거 더 없어?"

"전복? 그치! 맛있지?"

"아니.. 이거 말고 버터구이!"

"아... 버터구이... 그거 남은 걸로 조금만 한 거야. 더 없어"



트랙을 달리는 인생

태어났더니 내 앞엔 트랙이 펼쳐져 있었다. 누가 만들었는지도 모를 그 트랙을 아장아장 달리기 시작했다. 누구보다 빨리 걷고, 누구보다 말을 빨리하고, 누구보다 한글을 빨리 떼기 위해 트랙을 달렸다. 초중고등학교를 지나면서 트랙은 더욱 선명해졌다.


대학을 가면 피니시 라인이 있을 줄 알았지만 트랙은 더 길어지고 넓어졌다. 일자리를 잡기 위해 달렸다. 트랙에서 벗어나면 인생이 고달파질 것만 같았다.


일자리를 잡은 후에도 여전히 골인 지점은 없다. 학교를 다닐 때는 잠시 앉아 담소를 나누며 쉬기라도 했었는데 이젠 그럴 여유도 없다. 그래도 결혼을 하면 두 팔을 들고 환호하며 피니시 라인을 지날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는 이유는 골인 지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얼마나 더 달리면 끝나는지 알기에 끝까지 달릴 수 있다고 믿었다.


아니었다. 그들이 달릴 수 있는 이유는 피니시 라인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달리는 그 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달리기 전도, 달린 후도 아닌, 달리는 그 순간에 집중하고 있기에 완주할 수 있다.



과정을 즐기는 일

찐이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때 '느린 아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발달장애 소통과 지원연구소> 김성남 소장은 페이스 북에 '느린 아이'라는 표현은 '언젠가는 장애가 없는 아이들과 같아지게 될 거라는 기대가 내포된 표현'이다. '그 말속엔 그 발달장애를 그 아이의, 그 사람의 정체성으로 인정하기 싫은 속내가 담겨있다'라고 말한다.


찐이는 느린 아이가 아니다. 다른 아이의 발달 속도를 따라잡는 것이 삶의 목적이 아니다. 자신만의 속도로 성장하는 그 과정 자체에 집중하고 즐긴다. 나는 단지 배를 채우기 위해 3시간 동안 전복찜을 만들지 않았다. 반응이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그럼 어떤가. 요리하는 과정이 나에겐 행복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을 즐기고, 아침에 일어나 달리는 순간을 즐기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을 즐기고, 아내와 함께 하는 낮과 밤을 즐긴다. 회사로 가는 지하철에서 보는 넷플릭스를 즐기고, 회사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즐기고, 일에 몰입하는 순간을 즐긴다. 사람과의 대화를 즐기고 혼자만의 시간을 즐긴다.


<오징어 게임>의 깐부로 유명해진 오영수 배우가 <놀면 뭐하니>에 나와 이런 말을 했다.

“젊을 때는 꽃을 보면 꺾어 오지만 늙으면 그 자리에 둔다. 그리고 다시 가서 본다. 그렇게 살고 싶다”


목적지만을 생각하며 달려가다 보면 바로 옆에 핀 꽃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무언가를 이뤄내면 성취감을 맛보지만 이내 사라지고 더 큰 성취감을 원하게 된다. 결과에만 길들여지면 행복은 잠시 내 안에 머물다 사라질 뿐이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집착으로 현재의 행복을 보류하고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의 행복을 반납하곤 한다.


결과에 집착하려 애쓰지 말자. 그럼에도 짜꾸 결과가 목적이 되어버린다면 전복이 익어가는 시간을 생각해 본다. 꺾어 오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둔 꽃을 떠올려 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