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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Oct 11. 2024

버킷리스트를 적어보자!

아침에 일어났어. 딱 한 시간 동안만 먹을 수 있어. 그 외 시간에는 아무것도 먹을 수 없어. 금액이나 영양 상태에 상관없이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면 넌 뭘 먹을래?
집이야? 아니면 나가서?
나가서 먹는다면?
그럼 양념 돼지갈비
집이라면?
삼겹살 구워야지.


자! 그럼 또 하나!


아침에 일어났어. 딱 3시간 동안만 활동을 할 수 있어. 그 외 시간에는 아무것도 못해. 물리적, 재무적 한계는 전혀 없어. 뭐 할 거야?
음… 그러게… 뭐 하지? 뮤지컬 볼까?


정은이가 하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을 마구마구 끌어내고 싶다. 끌어내는 것을 도와주고 싶다. 끌어낸 후에는 내가 지원해 줄 수 있는 건 지원해 주고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함께 하고 싶다.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다.


그래서 버킷리스트를 적어보는 시간을 준비했다.


엄마, 아빠, 정은이 그리고 나. 우린 이렇게 4 가족이다. 내가 결혼을 한 이후로 4명이 여행을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함께 여행을 가기로 계획했지만, 수술 일정이 잡혔다 취소되는 바람에 여의도의 호텔에서 하루 묵으며 함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난생처음 오마카세를 먹고, 함께 호텔로 이동해서 짐을 풀었다. 함께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하고 저녁을 먹었다. 자칫 우울할 수도 있었지만 오랜만에 하는 가족 여행에 우리는 모두 웃으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는 데 그간 왜 하지 않았나…, 왜 닥쳐서야 일을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한 친구가 엄마에게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하는데, 얘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타 들어가야 하더라고요.”

가족 여행마저도 발등에 불이 떨어져 타 들어가야만 박력 있게 밀어붙이는 나였다.


어쨌든, 그 여행의 밤에 버킷리스트를 써보자고 제안했다.


하고  싶은 것, 재미있는 것, 되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배우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을 브레인스토밍 하듯이 100개를 적어보기로 했다. 버킷리스트를 쓴다는 것에 어색해하고, 목록을 100개나 적어야 한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지만 준비해 온 사람의 성의를 생각해서 한 번 해보기로 했다.


100개를 채우는 건 사실 어렵다. 그러나 100개를 채우려고 마구마구 브레인스토밍을 하다 보면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한 것들이 튀어나오면 또 다른 무언가를 함께 데리고 나오는 경우도 있다. 100개를 채우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사실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한 30~40개  정도는 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정은이는 20개 정도를 적었다. 그만큼 자기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본 시간이 적었다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에 조금 속상하기도 했다.


아빠와 단 둘이 데이트.
공예 클래스 듣기.
혼자 유럽 여행 가기.
재봉틀 사기.
엄마 아빠랑 네일숍 가기.
카페 다시 열기.


정은이가 버킷리스트로 적은 것의 일부다. (대부분의 남매가 그렇듯) 아무리 찾아봐도 오빠와 무언가를 함께 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없더라. (잠시 충격을 받았지만 이겨내! 이겨내!)


재봉틀은 내가 사주기로 했는데, 한 달이 넘게 지났는 데 아직 사주지 못했다. 어서 사줘야겠다. 네일숍도 오늘이라도 당장 갈 수 있는 거 아닌가?


버킷리스트를 적어보는 이 활동이 큰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난 뭘 하고 싶지?’라는 생각을 시작할 수 있는 마중물이 되었으면 좋겠다. 물론 이런 생각도 든다. 이게 과연 정은이를 위한 일인가?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싶다는 내 욕망을 채우는 일 아닌가? 본인은 그냥 살고 싶은 데 주변에서 ‘하고 싶은 걸 생각해 내! 그래야만 해!’라고 압박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 모르겠다. 근데 나에 대해 조금 더 아는 건 중요한 것 같다. 이건 꽤나 맞는 것 같다. 이런 고민을 하고 버킷리스트를 적어나가다 보면, 아… 나는 버킷리스트 따위를 적지 않고 그냥 사는 게 버킷리스트구나…라고 깨달을 수도 있으니까. 일단 “오빠, 제발 이러지 마! 부담스러워.”라고 말하기 전 까지는 최선을 다해보자. 이 글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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