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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림 May 11. 2023

사는 데 필요한 것

    자기 확신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 같냐는 질문을 받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가 인용한 누군가의 인터뷰에 대해 내가 반론을 제기한 나머지 그 질문의 화살이 내게 되돌아온 것이었다. 필요할 때 냉큼 작동할 수 있는 기억상실증과 몇 개의 무용담만으로도 스스로를 기특히 여길 수 있는 낙관정도라고 대답하기엔 그때의 나는 제법 진지했다. 이를테면 파스타와 깔라마리 튀김을 세 접시나 해치우고 난 뒤 호지차와 피스타치오맛 젤라또 사이에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는 정도로 대답할 경중은 아니었단 뜻이다.


    그도 그럴 것이 요새 나는 여러 가지 일로 완전히 지쳐있는 데다가, 확신했던 순간들이 돌이켜보면 진짜 확신을 가질만한 일들이었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문득문득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반론을 제기했던 대답의 요지는 결국 ‘지독할 정도로 자기를 검열하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그 대답이야말로 확신으로 가기도 전에 파멸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선례인 동시에, 인터뷰를 위한 권위 있어 보이는 답변일 뿐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방송국 놈들은 원래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덧붙이면서.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게 맞는 말인지 나조차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덩그러니 놓인 프레젤을 와그작 와그작 씹어 먹으면서 눈앞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여러 불온한 사건으로 인해 한적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해방촌은 평일 저녁에도 북적였다.


        그건 담금질에서 나오는 거야.      


        시끌벅적하던 무리가 담배를 피우러 철새처럼 우르르 떼를 지어 밖으로 나가자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내가 대답했다.


    열 번 정도 맞다 보면 너무 아파서 이제 그만 좀 때리라고 울부짖고 싶어 지잖아. 근데 그게 백 번, 천 번 정도 반복되면 될 대로 되라가 돼버리거든. 바로 그 순간, 내려놓는 그 찰나에서 확신은 조금씩 피어나는 거야.


    바람이 시원했고 맥주도 달았으며 아무도 내 말에 귀 기울이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치게 확신에 찬 목소리로 내뱉은 면모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차분히 생각해 보니 그건 내가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삶에서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구석이 생겨버린 것 같을 때, 그래서 더 이상 손을 뻗어도 닿지 않을 만큼 아득해진 순간들을 마주했을 때, 그러나 당장 눈앞에 있는 길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때. 꼭 그런 순간들은 밤에만 찾아왔다. 낮엔 웃고 밤에 우는 날들을 반복하기엔 아직 젊으니까라고 다독이는 것도 크게 소용이 없었다. 원래 어둠은 유리 파편처럼 깊숙이 파고드는 성향이 있어서 한번 붙잡히면 쉽게 놓아주지 않기 때문이다.


    밤의 파도에 휩쓸려 시간을 배회하는 건 나만이 가진 습성은 아니었다. 이건 고도로 물질화되고 여백이라곤 존재하지 않는 SNS의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고질적인 병증 같은 것이었다. 특히 삶을 제멋대로 흐르게 놔둔 시큰둥한 성향이 자신을 어디로 이끄는지 알지 못한 채로 살아왔으며, 여행과 모험, 때론 재난으로도 여겨지는 사건들과 씨름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저 이곳에 와있을 뿐인 사람들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증상이기도 한데, 그 군상에 정확히 부합하는 인간이 바로 나였다. 그럴 때 내가 기댈 수 있는 건 잡담을 나눌 수 있는 친구와 몇 개의 재생목록, 혹은 크리미한 초콜릿, 그도 아니면 지난 세월이 망라된 일기장 18권이었을 뿐.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급히 써 내려간 글씨를 더듬어보면 무신경한 말 한마디 앞에서 싸늘해진 어린아이도 있었고, 누군가의 부재 앞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강인한 어른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걸 바라보고 있는 지금의 나도 있었다. 험난한 새벽을 보내더라도 다시 일어나 주섬주섬 커피를 찾아 마실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냉탕과 온탕을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오고 갈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지나가리라는 믿음. 어쨌든 무탈히 살아있으며 출근은 다가오고 있으므로.  

    

        언니.. 어쩌면 이 모든 것은 착각일지도 몰라.      


        그렇게 말하고는 남은 맥주를 마셨다, 오늘은 눕자마자 잠들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면서. 이어진 질문은 삶이 왜 이토록 고통스럽냐는 것이었고 나는 또 분명 아무 말이나 내뱉을 예정이었지만, 그렇기엔 그날 밤엔 모두가 웃고 있었다. 우리도 웃고 있을지도 몰랐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 계절이 조금 더 산뜻하게 느껴졌다. 적절한 착각, 사는데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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