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슨 노트 - 1
'미디어 리터러시는 중요한 정도가 아니라, 인생의 결정적인 요소가 될 것이다. 미디어 리터러시의 학습 정도에 따라 내 자녀가 대중문화매체의 도구가 될 것인지, 대중문화매체를 도구로 사용할 것인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린다 엘러비 (NBC 뉴스 앵커)
현 미디어 (유튜브,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 SNS) 플랫폼에서는 우리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대하고 다양한 콘텐츠가 매일, 매 시간마다 생산된다. 12명의 저자가 쓴 교실을 포함한 모든 교육 공간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을 중심에 두는 새로운 성교육을 말하는 책 <포괄정 성교육>에서는 “대여섯 살만 돼도 거의 모든 아동이 미디어를 접한다. 5-6세용 색조 화장품이 나오고, 미취학 아동이 광고에서 성적 대상화되고, 온갖 정보가 미디어를 통해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사회에 살고 있는 아동, 청소년의 조기 성애화를 걱정한다는 것은 모순이다.”라고 말할 정도로 이미 인터넷에는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셀 수 없는 이미지, 영상들이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차고 넘치며, 특히나 청소년들에게 아주 밀접하게 노출되어 있다.
현재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나는 교사로 일을 하고 있다. 음악과 사회 과목을 가르치는 나는 그 둘의 공통분모를 수업에 종종 꺼내어 마주 본다. 수업에서는 우리 문화가 공유하는 의미들에 대해 인식하고 사회의 주요 흐름을 이해하고 각자 개인적인 반응을 개발하도록 돕는 것, 우리 문화의 부정적 측면들을 분별하고 거기에 대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 자신과 이웃, 과거, 우리 문화와 타문화, 그리고 창조 세계와의 관계를 탐구하고 조사하면서 자신과 주변 세상과의 관계성을 파악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 등을 한 학기 교육과정의 ‘목표’로 삼는다. 이처럼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 타인에 대한 공감, 성실, 인내 및 공정성과 함께 음악적 ‘창의성’을 다루는 음악/리터러시 수업 커리큘럼을 연구한 바탕으로 지난 학기 동안 교실에서 다양한 나이대의 학생들의 얼굴을 마주해 왔다.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15초~1분 길이 숏폼-숏츠(Youtube Shorts) , 틱톡(TikTok), 릴스(Reels) 등의 영상에 담긴 폭력, 선정적 소재 등 자극적인 요소들의 유해성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청소년정책연구원 배상률 연구위원은 “1분 이내 짧은 영상은 웃음을 위주로 제작되다 보니 대개 맥락 없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며 “맥락을 이해하는 등의 노력 없이도 영상을 시청할 수 있는 환경이 디지털 리터러시와 문해력 저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자극적인 콘텐츠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울증, 불안, ADHD 등 정신건강이 악화할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대게 숏폼 콘텐츠는 한번 클릭하면 끄지 않는 이상 무제한으로 재생되며, 이는 스크린 타임(Screen Time)을 조절하기 어려운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일 수 있다.
틱톡에서는 산소 부족으로 기절할 때까지 숨을 참는 모습을 담는 블랙아웃 챌린지(Blackout Challenge), 여성들이 바닥에 누워 개 포즈를 취하고 엉덩이를 흔드는 모습을 담는 더기 챌린지(Doggy Challenge) 등 중독성 강한 음악에 단순한 동작이 반복되는 자극적인 영상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아이들 대부분 영유아기에는 양육자의 영향이 제일 클 수 있지만, 초등학교 입학 후에는 또래 집단이나 학교 교육,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게 된다. 이처럼 수많은 온갖 유해한 미디어에 노출된 아동, 청소년들은 온전하지 않은 성적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하게 되며, 인스타그램에서 접하는 음악의 가사, 또는 영상 속에 심어진 성적대상적인 시선들과 의도들을 자연스럽게 듣고 보고 학습하고 따라 하고 영향을 받는 동시 결국 이를 재생산하게 되는 위치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배경을 두고 교육과정을 어떤 방향으로 일구어야 할까? 아무리 교육자들이 교실 내에서 ‘비판적인 시선’과 ‘바른 성’ 그리고 ‘미디어의 이해’ 등을 중점으로 커리큘럼을 짜고 이야기해도 교실 밖을 벗어나기만 하면 청소년기 학생들에게 미치는 무분별한 콘텐츠들을 전부 막아낼 수는 없다. 음악/영상 등 전반적인 현 미디어를 다루고 비판하는 리터러시를 수업에서 다루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전경란 저자는 <미디어 리터러시의 이해>에서 “이러한 논의들 속에서 최근의 리터러시 이론은 리터러시 개념을 지식 습득과 지식 창조의 원동력이자 학교 중심의 가치를 넘어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현상으로(Bloome, 1987:37), 또한 개인의 인지적 기능과 전략으로 보기보다는 구체적인 현실 상황에서 실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실천적 지식으로 본다(Lankshear & Knobel, 2003).”라고 말하고 있다.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인 벨 훅스의 책 <비판적 사고 가르치기>의 ‘증오의 과거를 가르치기’ 챕터에선 에선 이런 내용이 나온다.
대중매체는 메시지를 단순화하려고 한다. 그래서 다양성을 포함한 대부분의 복잡한 학문적 문제들은 대중매체를 통해서 정확하고 완전하게 전달되지 않는다.
지나친 노출, 폭력 또는 설정이 가미된 영상물은 소비하지 않는 것이 개인적인 원칙이다. 소비자가 향유할 수 있는 권리와 선택권은 다르고, 그 영상물이 짙은 폭력성을 띄고 있다고 해서 소비할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은 미디어 산업 속 혐오대상, 범죄 대상, 성적 대상화가 되어왔는지 짚어보면 대중과 제작자 사이에 존재하는 것은 과연 무얼까 되묻게 된다. 윤리? 법? 창작자의 권리? 우리 주변에서 클릭 한 번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 드라마, TV 속 모든 '여성'을 향한 클리셰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는 남성들이 그들 사이에서 여성을 트로피 취급을 하거나 물물교환을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기는 점 등 (셀 수도 없는) 문제의식 없는 구현 방식에 오랫동안 노출되어 왔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시청자는 극 중 인물에게 드러나는 심리나 행동 묘사를 통해 그 캐릭터에게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이야기를 어떤 방식으로 구현할 것인지, 카메라 워킹을 어떻게 하고 이 장면에선 이 부분을 극대화시킬 것인지 등, 모든 장면과 대사와 서사는 그물망처럼 촘촘하고 세밀하게 계획되어 있다. 제작자가 어떤 편집과 구성으로 대중에게 내놓아지는지 그 메시지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고민한 것들이 결과물에 그대로 담기게 되기 때문에 시각을 다양화하는 것은 중요한데, 이러한 고민이 과연 어디까지가 올바른가를 생각해 보면 안타깝게도 남성 중심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애초부터 문제가 차고 넘치는 현실이다.
내가 어떠한 인풋 in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나를 구성하는 것들은 달라진다.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의 박연준 작가는 남이 보여주는 것만을 보고 자극적으로 편집된 텍스트와 이미지에 노출된 덕에 읽는 능력을 잃어버린다고 했다. 결론적으론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또는 능력을 잃어버린다는 맥락에서 쓰인 글인데, 내가 알지도 못하는 타자들의 영향 아래 내 삶이 놓인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타깝게도 매일 그렇게 살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 내가 무엇을 흡수할 것인지 선택은 할 수 있지만, 그 선택지는 너무나 광활하고 무차별하다. 핸드폰 화면 속을 들여다보며 살아가는 나의 일상만 해도 가중되는 선택지에 쉽게 피로해진다.
스마트폰, 패드, 컴퓨터라는 작은 기계에 의존하게 된 나는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을 겁내게 되었고, 무작위로 생생하게 전해지는 영향 아래 인형처럼 흔들린다. 생각해 보면 나의 정체성의 많은 할을 이루는 것은 현재까지 위대한 업적을 이뤄낸 위인들 이야기나 나라를 구한 영웅담이 아니다. 어릴 때 본 TV 속 가스 라이팅 당하고 경쟁을 부추기거나 여성을 다각도로 멸시하는 구도의 장면(문제의식 없이 노출되었었음을 지금은 알지만 당시엔 몰랐기에), 남성 여성은 '원래' 이래야 해,라고 후려치던 가부장적인 사고(보통은 어른들에 의해 듣게 된다) 등이다. 내가 보고 듣고 읽는 것 중 무엇을 흡수할 건지 선택할 수 있었다면 지금쯤 무언가 달라졌을까. 올바르고 그른 것을 구분해 내가 가릴 수 있었다면, 좀 나아졌을까?
글과 음악 또한 창작하는 분야에 속한다. 나의 말과 목소리가 알지 못하는 타인에게 가 닿아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가늠할 수 없지만, 긍정적이며 희망적이길 바란다. 내가 무엇을 구현해 내며 어떠한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글을 쓰던, 그 콘텐츠를 읽고 듣는 상대방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길 바란다. 모두 가능한 한 다양하고 많은 시각을 염두해 창작 과정을 거치려 노력하는 것, 고민하는 것 또한 멈추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