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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죽지만 사랑만은 예외다

가족을 떠나보내며

by 레일라


이 작은 죽음들은, 그것들이 발생한 후에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완전하게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인상적이다. 잃은 것을 놓아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실의 아픔을 끌어안는 것이다. 관계가 끝났는가? 그럼 관계의 죽음을 실컷 애도하라. 일자리를 잃었는가? 일자리의 죽음을 애도하라. 아픔을 피하지도, 겁쟁이가 되지도, 체험을 과소평가하지도 말고, 충분히 아파하라… 새로운 상황으로 들어갈 때 그 상황을 가장 잘 영위하는 방법은 그 또한 끝날 것임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죽음이 물었다, 소중한 것을 지키고 있느냐고> - 아나 아란치스




집에서, 나만을 기다리고 있던 작은 생명체가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믿기지가 않는다. 19년 중 15년을 나와 함께 한, 그리고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없는 밀도의 삶을 함께 한 반려동물을 떠나보냈다. 장례를 치르고 집 앞의 화단에 묻어주고 나서 발바닥 도장이 찍힌 액자(장례식장에서 만들어준)를 껴안고 매일같이 울었지만, 왠지 사진첩을 열어보지는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믿기지가 않아서였을 것이다.



용기를 내서 일주일 만에 사진 앨범을 열어본다. 그가 건강했을 때의 사진, 동영상들이 살아 움직였다. 얼마나 그가 집에서 나를 기다렸고 (매일같이) 얼마나 나를 가족으로 생각하고, 나를 사랑했는지를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상실의 아픔이 나를 찌르고 지나간다. 이래서 열어보기 싫었어, 를 중얼거리면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보고 싶을 때, 내 마음속에 살아있는 그를 떠올리고 추억할 때, 나는 볼 수 있는 매개체가 있어서.



사실 나는 ‘내가’ 그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얼마나 보내기 힘들었는지 따위의 사실과 기분에 매몰되어 있었는다. 실상 그가 내게 전해준, 알려준, 깨닫게 해 준 것들이 훨씬 크고 깊고,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세다는 걸 망각하고 있었다. 나는 아마 그 힘으로 여태까지 버텨왔을 텐데. 내가 '못해준' 것들에 대한 아쉬움, 그를 가족으로 만난 게 2012년이고-졸업, 유학, 귀국, 이사 등 그동안 그의 보호자로서는 부족한 모습 투성이었을 것이기에 드는 죄책감. 이런 것들에 나는 함몰되어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반려동물의 가족들이 공감하는 부분이지 않을까. 그 긴 세월동안 야근에, 미팅에, 그를 몇 시간 방치한 적도, 내 몸마음 돌보지 못해 그를 챙기지 못한 적도, 남에게 부탁한 적도 많았다. 내게 가족의 자격이 있는가? 를 물었을 때 나는 자신 있게 긍정으로만 그 세월 속에 그를 돌봐왔노라 이야기할 수 없었다. '최선'을 다했는지 나 자신을 자책하는 마음도, 지금 와서는 무슨 소용일까 싶을 정도로 아리고 애틋하게 느껴진다. 나는 계속해서 나만을 보고 말을 하고, 나의 자격을 묻고 있다.






그는 “먀-”라고 나를 부르기를 좋아했다. 이름을 부르면 꼭 ‘먀~’ 하고 대답해 주고, 마지막에 호스피스를 권고받아 집에서 누워만 있을 때도, 내가 이름을 부르거나 내 인기척이 느껴지면 ‘먀’라고 가늘게 작게라도 답해주었다. 그럼 나는 그 작은 뺨과 이마에 뽀뽀를 해주곤 했다. 건강할 때는, 혼자 잘 있다가도 나를 불러 꼭 안아달라고 한다거나, 자신을 봐달라고 침대 위로 뛰어올라가기도 했다. 그는 말이 많은 편이었다. 늘 자기 표현을 확실하게 했다.



그는 내 팔베개를 하고 내 품에서 자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였다. 함께 자버릇해서 그런지, 항상 내 체온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다가도 새벽엔 혼자 다른 곳에 가기도 했지만 아침엔 돌아와서 대부분 내 머리맡, 내 품에 조용히 누워있기를 즐겨했다. 부드럽고 따듯하고 말랑한 고양이. 푹신하고, 섬세한 존재. 가만히 보고 있으면 숨을 쉬느라 배가 위아래로 오르는 게 보였고, 귀도 쫑긋했다. 매년 병원에 갔지만 조금 마른 편이라는 이야기 외에는 딱히 듣지 못할 정도로 건강한 편이었다.



그런 그는 15살때즘부터 신부전이 있다는 판정을 받았고, 때문에 나는 권고받은 레날 사료를 주어 왔다. 점점 이빨상태가 좋지 않은 것 같아 대략 2년 정도 전부터는 사료알을 빻아서 습식 레날 사료와 섞어주기 시작했다. 겨울엔 따듯한 물, 여름엔 보통의 온도의 물로 섞여서 약간 질척하게 그릇에 담아주었다. 다른 간식은 여러 가지 시도해 봤지만 이빨 건강 간식(닭고기맛)과 츄르 한 두 종류 외에는 입에 잘 대지 않았다. 많이 먹는 고양이는 아니었고, 마른 고양이 또한 아니었지만, 그래도 일정 몸무게는 유지하는 편이었다. 어느 날은 싹 비우고, 어느 날은 조금 남기고. 자기 전에 밥을 충분히 주고 눕지 않으면 새벽에 유독 입맛이 도는지 그릇을 싹 비우고 나서 나에게로 올라와 잠을 깨우기도 했다.



그는 수속성 고양이는 아니었지만, 따듯한 물이 몸에 닿는 것 자체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따듯한 물과 부드러운 고양이 전용 수세미로 문질러주고, 털을 빗겨주고 할 때는 기분이 나쁘지 않은지 가만히 있는 편이었다. 다만 물기를 꼭 짜고, 말리고, 털고 하는 일은 "싫어!" 라고 확실하게 표현했다. 그는 장묘종이었고, 항상 길이를 엇비슷하게 잘라주고 관리하긴 했지만 그래도 긴 편이었기에 늘 말리는 일이 문제였다. 물기를 어느 정도 제거하고(수건으로) 드라이기로 말려야 하는데 그걸 싫어했기에 따라다니며, 애원하며 말려야 했다. 감기는 드물게 간절기에 걸린 적이 있다. 유학 중에 어머니가 봐주실 때였는데, 병원에 가서 약을 타오셨고 일주일 정도 먹이니 괜찮아졌다고 하셨다. 콧물이 나는 것 같아 병원에 데려가니 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어쩌다가 한번 아파도 크게 속 썩인 적 없었던 효녀 고양이였는데. 떠나기 전 6개월 전, 고무줄을 씹어 삼켜 개복수술을 한 것과 그 덕에 알게 된 가슴에 있는 종양. 이 두 가지가 함께 찾아와 마지막을 급작스럽게 힘들게 했지만, 그전까지는 튼튼하고 사랑스러운, 건강한 고양이었다. 그 점이 참 고맙다.



나는 뭘 좋아했지? 나는 그의 이마에 뽀뽀를 연속으로 하는 일을 좋아했다. 쪽쪽 쪽쪽. 아이고 예뻐. 내 새끼. 사랑해. 꼭 말해주곤 했다. 밥 먹었어? 더 먹자. 몸집이 작은 편이었던 그에게 말습관으로 늘 밥을 권유하는 것 마저. 이런 걸 보면 나는 지금도 밥 먹었어를 입에 달고 사는, 우리 엄마를 닮았나 보다.






이 모든 것들이 지나간다. 내가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된다. 밥을 더 주고 싶어도, 간식을 먹이고 싶어도, 놀아주고 싶어도, 만져주고 예뻐해 주고, 뽀뽀해주고 싶어도 더 이상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이래서, 어른들이 ‘해 줄 수 있을 때, 할 수 있을 때 감사하라’ 고 하시는 거구나. 할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할 텐데. 그 작은 뺨을 쓰다듬어 주는 것도, 엉덩이를 토닥거려 주는 것도, 편히 자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말랑한 발바닥을 만지는 것도.



똑띠 고양이라고 알려져 있는 귀 끝의 긴 털, 작고 보드라운 몸집, 늘 안아달라 강아지처럼 애교를 부리고 왼쪽 어깨에 안겨있기를 좋아하고, 늘 날리는 털과 미세하게 고약한 입냄새마저. 이 모든 걸 다시 보고 느낄 수 있다면. 내 모든 일상이 어그러지고 너에게만 집중되어 있던 마지막 투병 3주 동안 힘들다고 생각했던 나 자신에게 말해줄 텐데. 곧 보고 싶어도, 해주고 싶어도 할 수 없고, 볼 수 없을 테니 좀 더 눈에 담고, 천천히, 너의 시간을 더욱 가까이 살라고 말이다. 꼭 붙잡으라고.



아나 아란치스는 <죽음이 물었다>에서, 모든 것은 죽지만 사랑만은 예외라고 했다. 나는 완화치료를 연구하고 행해온 그의 글들을 마음에 담기로 했다. 가족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모든 관계는 끝이 있다. 즐겁든 그렇지 못하든 우리는 우리의 삶을 100% 사는데, 그렇지 못했던 지난 시간들이 발목을 잡는다. 그럼에도 끝이 있기에 감사한 관계도 경험하고, 끝이 있기에 원망스러운 관계도 안녕을 고한다. 그 과정에서 거기에 존재하는 의미를 계속해서 물었다. 대체 나에게 왜 이런 일들이, 왜 이런 얼굴들을, 왜 이런 상황을 마주하게 하냐고. 나는 사랑을 주고, 받고, 쫓은 죄밖에 없지 않냐고.



그는 말했다. 삶을 잘 사는 가장 쉬운 방법은 일상 속에서 다섯 가지를 지키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그 다섯 가지는 글로 적기엔 진부하지만 실제로 지키고 살아내기에는 어려운 일들이었다. 슬픔을 삼키며 하나, 둘, 셋,..그의 글을 읽고 또 읽는다. 슬픔에 잠기는 건 잘못이 아닌, 건강한 애도 과정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여러 관계들의 종료와 또 연장 속에서 슬픔과 연민 그리고 공감을 경험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그저 중얼거리게 된다. 잃은 것을 놓아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실의 아픔을 끌어안는 것이라고. 나는 지금 그 누구보다 친밀하고 가까웠던 존재를 떠나보내고 있다. 잘 보내주고 싶은 마음, 그 아픔을 꼭 껴안고 살아내야지 혼잣말을 한다. 모든 것은 죽지만 사랑만은 예외니까.



위험을 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보다는 위험에 용감히 맞설 수 있게 해 달라는 기도를 올리게 하소서.
고통을 멎게 해달라고 애원하기보다는 고통을 이겨내게 해달라고 애원하게 하소서.
인생의 싸움터에서 동지를 찾기보다는 자신의 힘을 찾게 하소서.
두려움에서 구원되기를 갈망하기보다는 스스로 자유를 얻어낼 인내심을 소망하게 하소서.
저의 성공 안에서만 신의 자비를 느끼는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실패 안에서 신의 손길을 느끼게 하소서.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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