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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화 당신을 이해시키는 것은 나의 직업이 아니다

이해받기를 포기한 대가로 얻은, 미움의 질량에 관하여

by 남발

국제 심판이라는 명함은 화려해 보이지만, 그 실체는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호텔의 무채색 복도와 통과한 게이트의 번호, 그리고 캐리어의 닳아버린 조그마한 바퀴들 같은 것들이 종합된 삶에 가깝다. 우리의 삶은 ‘여행’이 아니라 ‘이동’이며, ‘만남’이 아니라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의 축적이다. 한 도시의 공기를 충분히 들이마시기도 전에 다음 도시의 날씨를 확인해야 하는, 정박하지 못하는 그림자들의 연극. 결국 이 직업은 정박(anchoring)이 허락되지 않는 삶이다. 우리는 환대받는 손님도, 그렇다고 그곳의 주인도 아닌, 오직 판결을 위해 잠시 소환되었다가 연기처럼 사라져야 하는 이방인 같은 거랄까.

이 부유(浮遊)하는 삶을 지탱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아주 차갑고 단단한 문장들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내 습관이 되었을 수도 있는데, 시합 갈 때마다 늘 의식처럼 하는 게 집 근처 도서관에 가서 책을 양껏 빌려보는 것, 이게 나에게 휴식이 되는 이유는 쉽게 나 자신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오늘의 이야기도 거기에서 시작한다. 이 한 구절은 서늘하다 못해 시리기까지 했다.

KakaoTalk_20260421_090037658.jpg “네 상사는 친구가 아니고, 회사는 가족이 아니다. 네 할 일만 하고, 돈만 받고, 집에 가라.”

이 문장을 마주했을 때 나는 실소를 머금었다. 비단 내 일만 그렇지 않겠지만 여기도 그렇다. 조직은 우리를 필요로 하지만 결코 사랑하지 않는다. 국제 연맹이라는 거대한 기구는 내게 ‘품격’과 ‘공정성’을 요구하지만, 내가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을 때 그것을 감싸 안아줄 ‘가족’의 따뜻함 같은 건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에게 나는 대체 가능한, 고성능 센서가 장착된 부품일 뿐이다.

심판을 처음 시작하거나 혹은 바쁘게 배정받고 커리어를 쌓는 동안에 이 같은 조언은 망각하거나 최소한 부정하고 싶을 수도 있지만, 이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내 직업은 비로소 투명해진다. 이것은 '가치 있는 헌신'이 아니라, 기꺼이 미움받기로 결정한 고독의 시간에 대한 '값비싼 거래'이다. 내가 받는 페이는 '내 판정의 정확도에 대한 대가'라기보다, 그 정확도를 유지하기 위해 내가 포기한 인간적인 연대와 가족과의 일상, 그리고 나에게 쏟아지는 증오를 묵묵히 흡수하는 ‘감정 노동’의 총합인 것이다.

이 차가운 거래의 끝에는 오직 ‘집’(home)으로의 귀환만이 구원처럼 남아있다.

20220724_081448_IMG_6768.PNG “너를 절대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네 직업은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친구'도, '가족'도 아닌 이들에게 끊임없이 이해받기를 원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두 번째 글귀는 그 본성에 대한 날카로운 비수 같았다. 코트 위에서, 혹은 매트 위에서 선수가 내지르는 절규 속에는 ‘내가 얼마나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지 알아달라’는 서사가 숨어 있다. 하지만 심판이라는 자리는 그 서사를 '이해'하는 순간 붕괴된다. 이해는 공감의 영역이지만, 판정은 고립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을 이해시키기 위해 심판석에 올라가거나, 그들의 땀 냄새가 진동하는 코트에 선 것이 아니기에 그들이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나의 '직업'은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기준'을 내가 쥐고 있다는 사실을, 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잔인한 진실을 매 순간 공표하는 일이니까.

그래서 이 일은 필연적으로 미움을 생산한다. 테니스가 아닌 종목의 심판들도 이 고독의 패턴을 벗어날 수 없다. 축구의 VAR, 야구의 스트라이크 판정, 하물며 펜싱의 동시타 판정까지. 심판은 끊임없이 규칙이라는 자를 들이대고, 그 자가 가리키는 눈금에 따라 누군가의 인생을 비극으로 바꾼다. 그들의 삶이 걸려 있기에, 그 미움은 날카롭고 구체적이다.

KakaoTalk_20260421_090520700.jpg “절대 잊지 마라, 그들이 너를 미워하는 이유는 네가 더 낫다는 것을 그들이 알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세 번째 이미지 속 네온사인은 내게 유치하지만 강력한 진통제 같은 역할을 한다.

이 문장은 나르시시즘의 끝판왕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나에게는 직업적 고독의 void(공허)를 메우기 위한 생존 기제다. 사실 이건 우리나라 심판들 사이의 내 모습을 환기시킨다는 게 솔직한 설명일 것 같다. 한국인들만의 그런 특유의(?) 집단정서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들이 쏟아내는 질투와 이유를 알 수 없는 미움들이 너무 뜨거워 내 살을 파고들 때, 나는 이 문장을 주문처럼 되뇐다. 그 미움과 질투심은 내가 지금껏 외로움과 맞바꾼 직업 수행에 대한 훈장이며, 내가 그들의 삶을 흔들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명이라고. 어쩌면 나는 누군가에게 끝내 이해받지 못하는 존재로 남음으로써, 이 세상의 아주 작은 질서 하나를 간신히 붙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그어놓은 선이 완벽할 리 없다. 하지만 그 불안전한 선조차 없다면, 저들은 서로를 물어뜯으며 자멸할 것이다. 내가 욕을 먹고, 침 뱉음을 당하면서도 끝내 자리를 지키는 건, 내가 대단한 정의감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이 엉망진창인 현실 속에서 '최소한의 약속'이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고, 또한 나로 인해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가족에 대한 예의와 부재의 시간들을 지키고 싶기 때문이다.

늘 다시 시작되는 낯선 도시의 소음들. 나는 그저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티켓을 쥔, 이름 없는 여행자 중 한 명일 뿐이다. 만약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는 펍(pub)에 앉아 있는 나에게 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대답 대신 테이블 위에 놓인 무거운 영수증을 가리킬 것 같다. 인생은 결국 이해받지 못할 결정들을 내리며, 그 고독의 값을 지불하고, 다시 내일의 문을 여는 과정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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