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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플콩 Apr 28. 2022

아빠와 연필

스-윽, 스-윽, 아빠가 연필 깎는 소리.

20년 하고도 몇 년 전의 우리 집.

나의 입학식을 앞둔 우리 집엔 연필깎이가 없었다.

거실 한가운데에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 어깨를 둥글이고 정갈하게 연필을 깎아 내던 나의 아빠.

그 옆에 무릎을 꿇고 두 팔은 땅을 짚으며 목을 쭉 빼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나와 동생 그리고 설거지를 하는 엄마.

'아빠는 연필을 엄청 잘 깎아.', '최고야!' 라며 아빠의 기를 팍팍 살려주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런 연필이 부끄러워지게 되었다.


연필깎이로 깎은 둥글고 일정한 친구들의 연필과

투박하고 귀엽지 못하게 길쭉이도 깎여있는 내 연필이 비교되었다.

다행스럽게도 '지선이 연필은 엄마 아빠가 깎아준 거야?'라고 물으며멋지다 신기하다. 를 연발하는 친구들이었지만 나는 친구들의 연필이 부러웠다.

아빠가 연필을 깎아주실 때면 괜히 옆에서 한 마디씩 얹기 시작했다.

너무 길어, 나무 부분을 이렇게 깊게 깎으면 어떻게 해 등등. 내 투덜거리는 말 덕분인지 곧 우리 집에도 연필깎이가 생겼다.


고등학생이 된 나는 이제 아빠의 차가 부끄러웠다.

잦은 늦잠을 자는 나를 위해 아빠는 농장에서 일하던 도중에도 차를 몰고 학교에 태워다 주셨다.

그런 정성을 알지도 못하는 나는 늘 학교 앞이 아닌 학교 아래 아무도 없는 언덕길에서 내려 뛰어 올라가곤 했다.

사춘기 소녀인 나에겐 아빠의 지저분한 구형 트럭이 부끄러웠다.

누군가 보게 된다면 놀림거리가 될 것만 같았다.

다 아셨을 텐데 내색 없이 항상 그 자리에 내려주며 잘 다녀오란 덤덤한 인사를 건네셨다.


성인이 되고 직장인이 되던 해 여름휴가를 위해 회사에서 제공하는 복지 중 하나인 연수원을 예약했다.

트럭을 타고 먼 길, 험한 길을 가는 게 걱정이었지만 우리 네 가족은 별 탈 없이 연수원에 도착했다.

문제는 입구에서였다.

파란색 트럭은 본 출입 관리원이 앞을 막아섰다.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에 회사 이름과 내 이름을 불러주었는데도 그 직원은 명단을 한참이나 뒤적이면서 계속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어디서 오셨다고요?'

뒷좌석에 앉아 있던 나는 잘 안 들렸나 싶어 사원증을 보여주며 예약하고 왔어요라고 큰소리를 내었다.

'! 그러셨어요?' 하며 문이 열렸고 식구들 모두 '우와 직원들만 오는 곳이라 그런가 보안이 철저하네?'라는 소리를 하며 낄낄 웃었다.


그리고 곧 도착한 이모네 식구들에게 '여기 보안 철저하지 않아?'라고 물으니

'엥 전혀, 오자마자 바로 문 열고 이름 물어보던데?'라는 답변을 받았다.

난 또 대수롭지 않게 '우리 차가 트럭이라 업체에서 온 줄 알았나 보다.'라고 웃어넘겼지만 아빠 마음은 안 그러셨나 보다.


한 달 뒤 차를 바꾸셨다.

왜 바꿨냐 물으니 엄마는 '너 괜히 회사에 트럭 타고 가서 붙잡혔다는 소문날까 봐 신경 쓰인데.'라고 하셨다.

다시 10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늘 그때의 일들이 목에 걸린 생선가시처럼 찝찝하게 남아있다.

아빠, 열심히 최선을 다해 키웠는데 딸이 그런 내색 할 때 마음이 어땠어요?

라고는 물어보지 못할 것 같다.

이제는 아이가 생긴 나는 나를 상황에 이입해 상상해 볼 뿐이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프다.


괜히 아빠 옆에 앉아 연필과 커터칼을 들이 민다.

'나는 아무리 연습해도 아빠처럼 못해.'

'아빠가 깎아준 연필이 오래 쓰기 좋아.'

그럼 또 껄껄 웃으시며 서걱서걱 정성스레 연필을 깎아주신다.

그 연필을 나의 아들이 쥐고 동그라미  한 개와 점 두 개를 찍어 할아버지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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