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새벽 5시. 알람이 울리기 전 눈을 떠 조용히 방문을 열고 나온다. 잠을 깨기 위해 간단히 세안을 하고 따뜻한 물을 한 잔 마신다. 책상에 앉아 노트를 펼쳐 모닝페이지를 작성하며 이런저런 마음속 응어리를 풀어낸다.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신문을 읽고 영어 공부를 하고 있자니 일어난 남편의 출근 준비 소리가 들려온다. 왜인지 내가 깨어 있을 땐 남편의 출근 준비가 참 요란도 하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 비비며 일어난 아이가 엄마를 찾으면서 여유로운 새벽 시간이 끝이 난다.
오전 10시 창밖으로 푸르디푸른 나무와 유유히 지나가는 차들을 내려다보며 아메리카노 또는 아이스티 둘 중 고민하다 얼음을 잔뜩 넣은 아이스티를 마신다. 테이블에 앉아 펼친 책, 차분히 읽어 내려가다 마주한 아름다운 문장에 감동한다.
집 안을 쭉 둘러보니 단정히 잘 정리된 모습이 만족스럽다. 세탁을 마쳤다는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면 젖은 빨래를 탈탈 털어 햇볕에 널어둔다. 괜스레 냉장고를 열었다 닫는다. 청소를 끝낸 집의 모습이 참 단정하다. SNS에 올릴 사진 한 장 찰칵 찍어 건져내면 완벽한 마무리.
하원 한 아이를 데리고 공원에서 공을 차며 놀다가 카페에 들러 준비해 간 텀블러에 커피를 담아 마신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를 씻긴 후, 오후 8시 30분 잠자리에 누워 준비해 둔 책을 읽어준다. 잠든 아이의 얼굴을 확인하곤 나도 곧 잠이 든다.
어딘가 짜여진 각본 같지만 이런 게 행복이라며 움켜쥐고 싶었던 오늘.
기시감과 함께 눈이 떠진 아침. 핸드폰 전원 버튼을 눌러 확인한 시간은 10시 10분. 곤히 자는 아이를 흔들어 깨운다. 잠이 덜 깬 아이와의 실랑이 후 어찌어찌 등원을 시켰다. 나에게 남은 자유는 2시간.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니 난장판이 되어있다. 벗어놓은 옷가지와 사용한 수건들, 아무렇게나 먹고 버린 과자봉지, 널브러진 장난감 보기도 싫은 싱크대.
한숨을 크게 내쉬며 손만 겨우 씻고 소파에 누워 작디작은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당장 필요한 생필품 구매도 미루고 퍽 그럴듯한 가십거리로 시간을 낭비한다. 슬쩍 시계를 보니 아이의 하원 시간.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선다. 어제 잠들기 전 분명 내일은 집을 치우고 아이랑 이것저것 하려고 다짐했던 것 같은데 오늘도 다를 바 없는 하루를 보냈다.
저녁을 먹고 잠시 앉아있는 사이 남편이 묻는다.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하면 무엇을 하고 싶어?" "....." 한참을 생각해도 모르겠다. "나는 아이맥 살 거야! 필요는 없는데 예뻐서 사고 싶어. 이 정도면 그냥 당장 가서 살까?" 라는 실없는 소리에 웃음이 났지만 정작 나는 뭘 하고 싶은지 떠오르지 않는다. 대답을 재촉하는 남편에게 "그냥 적당히 있다가 죽지 않을까?"라는 허무한 대답을 해버렸다.
12시쯤 졸린 눈을 비비면서도 동영상플레이어를 놓지 못하는 아이에게 으름장을 놓아 억지로 재운다. 그리곤 또 별 생각 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내가 놓치고도 무엇을 놓친 지 모르는 그럭저럭 지나가 버린 오늘.